혼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그래서 결국, 나는 누군가를 찾았다.
혼자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그래서 결국, 나는 혼자가 되었다.
인생이 위의 네 문장처럼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며 흘러갔다.
비록 각각의 문장에서 흘려보낸 시간은 다를지라도,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저 문장 어느 곳을 헤매고 잇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이도 저 문장 어느 한편에 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혼자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피하고 싶은 것이 되기도 한다.
한때,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일주일 중 5일은 함께하고 2일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저 네 문장의 챗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설사 내 옆의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해도 그것은 이뤄질 수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이 필요한 5일과 그 사람이 내가 필요한 5일이 항상 같을 수는 없으니까...
계속해서 저 네 문장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무엇하나 자신이 없어졌다. 혼자가 아닌 내 모습도, 혼자인 내 모습도 모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나에게 닥쳐올 다음을 생각하며 걱정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챗바퀴는 더 느리게 굴러갔다. 그래서 다음 문장을 시작하는 것도 늦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었음을 늦게나마 깨닫는다.
그러나 다시 그 상황이 오면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니, 어쩌면 인정은 포기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챗바퀴를 멈출 수 없다면 반대로 최대한 빨리 돌려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빠르게 돌리고 돌리다 보면 챗바퀴가 고장날수도 있다.
혹은, 어쩌면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그런 내 모습에 연민을 느껴 챗바퀴를 멈춰줄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과 혼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전한다.
그 자리에서 흔들며 가만히 있기보다는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낫다. 그래야 다음 문장이 더 빨리 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