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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야.” – 그 말이 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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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

“별거 아니야.” – 그 말이, 오히려 더 아팠다.





어느 날, 내담자는 약간의 침묵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들 그러더라고요. 그냥 넘기라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빛바랜 기억 하나가 속에서 울렸다.

나 역시, 그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익숙한 말이다.


‘그 일쯤이야’

‘다 그런 거야’

‘그냥 무시해’

— 마치 정서를 덮어버리려는 눅눅한 담요처럼, 말들은 가볍고 덧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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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말을 들은 마음은, 그 울림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오며, 수없이 ‘별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다. 때로는 부모에게, 때로는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때로는 친구나 동료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말이다.


그 말은 마치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물어도라는 허락처럼 다가온다. 마치 감정이 거추장스럽고, 치워야 할 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감정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미처 다하지 못한 울음을 기억해 낸다.


“그때, 사실 나 힘들었어.”

“그 말이, 나한텐 아팠어.”


이 단순한 말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눌려 있었는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하다. 정서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봐져야 하는 것이다. ‘별거 아닌 일’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마음은 분명히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말해질 때 비로소 방향을 찾는다.



내담자의 말 앞에서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감정이란 결코 ‘별거 아닌 것’이 아니라고. 그 조용한 울림을, 누구도 대신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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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 땐 다 그래.”

“지나고 나면 별거 아냐.”

“그걸로 그렇게 힘들어해?”

ㅡ 이 짧은 문장들은 내 마음을 작고 하찮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걸까?’

타인에게서 시작한 그 말들이

나에게서 피어날 때 마음의 문은 점점 무거워진다.

하지만 감정은 논리로 꺾이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라는 명령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은 먼저, 그저 소리를 낸다.

“나 좀 들어줘.”


상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건 사소한 건데요…”라며 머뭇거리는 그에게

나는 조용히 말한다.
“전혀 사소하지 않아요.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중요할 수 있어요.”






힘듦을 말한다는 건
해결책이나 결론을 구걸하는 일이 아니다.
그 감정이 존중받아도 되는 마음이라는 걸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남이 아닌 나 자신에서 올 수록 더욱 깊고 포근하다.


“별거 아니야”라는 말에 꺾였던 순간이 있다면,
당신은 예민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정직했던, 진솔했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진솔함이 결국
당신을 다시 숨 쉬게 할 것이다.

가장 당신답게, 가장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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