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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테일 Mar 24. 2022

그 해 만났던 슬픔과 희망

#귀여운거그려서20년살아남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휴일도 아닌 평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산에 가면

약간 수상하게(?) 쳐다봅니다.

2009년에 저는

매일 산에 올랐습니다.


——


아직 나가 살지 않던 시절,

저희집 뒤로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산이 있었습니다.

뒷편으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집에서 나오면 5분안에 등산로로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그 산은 꽤 길게 연결되어 있어

짧게 다녀올수도 있고 좀 길게 다녀올수도 있는

그런 산이었습니다.

몸이 가장 길게 아팠던 시절로부터

조금씩 나아져가던 제 건강은

그 이후로도 몇 개월씩

혹은 며칠씩 저를 가둬두곤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지기 위해

운동을 했는데 산에 가는 것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 해는 하루를 산에 가는 것으로 시작했죠.

밤새 일하고 새벽에 자서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빠르면 1시, 늦으면 2시쯤 작은 텀블러에 물을 넣고

제가 언젠가 만들었던 주머니에 담아 아파트 뒤로 연결던 산으로 향했습니다.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정도를 다녀오는데

오전도 아니고 그 시간에 산을 오르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점 한정적입니다.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고

아주 가끔 젊은 분을 보는데

딱 봐도 건강이 안좋은 그런 분들입니다.

아마도 저처럼 조금이라도

회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산을 오르는 것이겠죠.

아침일찍도 아닌

늘 그 시간에 다니니

자주봐서 익숙한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저희집 뒷 산도 봉우리 이름이 있었습니다.

제가 1시간 코스로 빠르게 다녀오는 봉우리가 있고

거의 2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로

다녀오는 곳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2시간 걸릴 곳으로 다녀왔는데

오르는 도중에 어르신 두분이 쉼터에 앉아 얘기하는 것이 들렸습니다.


“왜 그랬데??”


“죄를 지었으니까 지가 죽었지”


그 소리에 잠시 걸음이 멈춰졌습니다.

​도저히 그냥 다음 걸음을 옮길수가 없었어요


“그 분이..그렇게 나쁜 사람이..아닙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나가다 왠 이상한 사람이

자기들 대화에 툭 끼어들었으니,

그것도 평일 대낮에 산에서 젊은 놈이,

이상하고 이상했을겁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저는 두 어르신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고 빠르게 내려왔습니다.

내려가는 걸음하나하나에

슬픔이 찍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평생 모르는 사람의 대화에

그렇게 불쑥 끼어들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꿇고 살으라’ 했을 때

그게 도저히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분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


그 해에 저는 거의 매일 산을 올랐습니다.

산에서 만났던 사람중에 저처럼 꾸준히 오는데

어려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때 걸음이 자유롭지 못해 잡아주는 분이 계셨고

몸이 불편해 천천히 걸음을 하던 분이였습니다.

2010년에 제가 이사가기 전,

마지막으로 산에서 만난 그 분은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009년에서 2010년으로 지나는 그 시간

제가 산에서 만났던 가장 큰 슬픔과

가장 큰 희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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