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지침서 02 - 고양이와 멸치
위로를 해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멸치 대가리면 된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나의 위로를 위해 때론 맥심 커피 한잔이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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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8살 때였던 것 같았다.. 시장에 무언가를 사러 갔다. 아빠 손을 잡고 복잡한 시장에 갔다. 한국에 이마트가 없던 시절이었다. 좁은 시장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발견하였다. 지금은 동물병원이 있고 "귀족 고양이"를 위한 분양 판매가 이루어지지만 그때는 그런 거 없었다. 1980년대에는 그런 거 없었다. 약도 귀했는 데 뭐.
새끼 고양이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서웠을 까?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말이다. 당신이 낯설고 당황했던 적이 있던가? 우리 모두 있지 않나?
내가 낯설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던 기억..
새 학기, 이직한 직장, 소개팅 뭐 이럴 때가 어색하지 않은 가?
내 경우는 새 학기의 첫날 3월 2일이다. 한국은 3월부터 학기를 시작하고, 3월 1일은 1919년 독립투쟁을 했던 날을 기리는 날이라 공휴일이다. 그래서 2일 날 시작이다. 한국의 3월은 사실 쌀쌀하다.
나는 늘 혼자였다.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어색했다. 친구도 없었던 나는 3월 한 주간은 혼자 지내고 혼자 밥 먹고 살았던 것 같다. 그나마 친구 한 두 명을 만들어 놓으면 다음 연도에는 반이 갈라진다. 그래서 늘 친구가 없었다. 전학 간 것도 아닌 데 늘 새 학기는 낯설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 1까지 그랬다. 왕따는 아니었지만 그저 친구가 없었다.
새끼 고양이는 집에 오면 본능적으로 어디를 숨는 다.
지금은 붙박이장으로 되어 있지만 그때는 장롱 밑이나 찬장(반찬 그릇 놓는 장) 밑에 숨어있는 다. 고양이의 눈은 낯섦과 두려움으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꺼내려고 빗자루를 장 밑으로 넣어보기도 했다. 때로는 총채를 쓴다. 총채는 먼지떨이를 말하는 데 길쭉해서 고양이를 꺼낼 수 있다. 간혼 깊게 숨어 꺼낼 수 없을 때가 있다.
엄마 없이 얼마나 무서웠을 까?
이 새로운 곳에서 고양이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를 고민할 까? 본능적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낄 것이다.
이 고양이에게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는 방법을 무엇일까?
어린 고양이를 위로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버지는 장롱 앞에 멸치를 두었다. 고양이와 멸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고양이는 멸치를 먹으려고 기어 나왔다. 멸치 대가리를 3개 먹고 나면 얼굴은 편해진다. 위로를 받는 얼굴이다.
나는 총채나 빗자루를 동원해서 물리력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멸치 대가리였다.
그 멸치대가리로 고양이는 자기가 살 공간과 사람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내 잠든다. 따뜻하게 위로받은 얼굴이었다.
위로는 안심 아닌가? 주변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작은 감정"도 좋다. 때로는 맥심 커피 하나에도 위로를 받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가 작은 멸치대가리로 위로를 받듯이 위로는 큰 게 아니다. 이 모든 게 따뜻한 손으로 컵을 집고, 멸치를 집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멸치와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따듯한 손길이구나.
나 역시 대단한 위로를 원하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그리고 내가 남에게 위로하는 방법도 아직 서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