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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덴부와 셜리 Sep 22. 2022

고양이가 알려준 헤어질 때에 예의 법

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 지침서 04

고양이를 못 잊어 이 글을 쓰는 게 아냐. 고양이의 세계가 따로 있겠지. 사실  난, 나의 세상에만 관심이 있어. 내가 사는 세상도 힘들 거든




헤어질 때에 예의




고양이가 사라졌다.


마당에서 놀던 고양이는 가끔 밤늦게 들어 오곤 한다. 어릴 적 나는 잘 때는 혼자였는 데, 내 겨드랑이에 고양이가 자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사라지고는 며칠 동안 안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분명 우리 식구 9명이 저녁을 먹을 때는 있었는 데,..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지하창고에 고이 누워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셨다. 아마 어제 저녁 잠깐 나타난 것은 우리 식구와 인사를 하기 위해 나타난 거 같았다. 분명 그런 거 같았다.


아버지는 “아마도 쥐약을 먹은 거 같다.”라고 하셨다. 그때는 쥐가 많았고, 사람이 먹을 쌀도 모자라는 판에 쥐들이 먹는 다고 대대적인 쥐 퇴치 운동을 할 때였다. 막걸리도 밀가루로 만들어야만 했다. 쌀이 귀했기 때문이다.   “쌀막걸리”가 나오는 건 최근이니까. 그때는 막걸리를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술이 유통되었다. 그러니 지역 막걸리가 다 쇠퇴했지만 말이다.


쥐약을 먹은 고양이가 얼마나 아팠을 가. 그런데 고요히 지하 창고를 찾아가 쓰러져 있었다. 이미 숨은 오래전에 끊어진 듯했다. 그 고양이는 고등어 무늬가 아닌 노란색 무늬의 고양이었다. 보통 고등어 무늬를 많이 키웠는 데, 그 고양이는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오히려 헤어질 때만 기억이 난다.



이렇게 기억날 수 있는 것은 그 고양이가 헤어질 때에 예의를 다한 것이기 때문 아닐까.


난 헤어질 때 예의를 다하였나? 직장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말이다. 그렇지 못한 거 같다. 하긴 아름다운 이별이 어딨어. 이별은 다 더럽지.

하지만 헤어질 때 예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양이처럼 도망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쓸쓸히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나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힘든 척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사라졌고, 조용한 곳에서 혼자 누워 잠들었다.


나는 늘 도망갔고, 조용히 가지 못하고 울렸고, 시끄러운 고성 속에서 이별을 맞이 한 걸까… 왜 고양이처럼 이별하지 못했을 까.



고양이가 돌아간 세계는 어떨까?


나는 공부를 못했지만 논어를 배우는 과목이 필수인 대학 전공을 택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의역하면 이런 거다.

 

“공자님. 천국이 어떻소?”

“내가 이 생도 잘 몰라서 헤매는 데, 하늘나라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


그렇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도 잘 모른다.

미안한데 고양이가 돌아간 세계에 대해 지금은 궁금하지 않다. 어릴 적에는 잠깐 슬펐을지 모르나 세상 풍파를 겪은 어른이 되고서는 관심 밖이다.  오로지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도 아직 몰라서 헤매고 있는 데 어찌 고양이가 돌아간 세계까지 궁금할까.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 되어도 성숙하지 않았던 것일까? 난 타인의 세계에 대한 관심도 배려도 없는 사람이 되버린 걸까? 어떻게 헤어지건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버린 걸까?



넌 너의 세상도 버겁지만 잘 헤쳐나갈 수 있어.


나 역시 나의 세상도 버겁고 헤매고 있다. 그런데 두렵거나 그러지는 않다. 고양이가 살아간 세계도 있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고양이가 알려주는 생활지침들을 이제야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고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얼마나 예의를 갖추었을 까?

사람과 이별하고, 일을 정리할 때 나는 얼마나 성의를 다했을 까?


모든 게 만남과 이별이 있으니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중요하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니까.

이별에 예의가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깔끔하고 상큼해 지니까.


안녕… 고양아. 잘 지내렴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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