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 지침서 03
누군가 너의 이름 부르지 않는 다 해도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넌 너대로 충분히 이쁘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고양이를 키웠다. 아니 늘 함께 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주 이사 갔던 어릴 적, 이사 갔던 그 집에는 늘 고양이가 혼자 살고 있었다. 이사 갈 때마다 고양이가 있었다. 전에 살던 집주인이 두고 온 게 아니라 고양이는 아마 따라가지 안 았을 것이다.
아니 그냥 고양이는 원래 살던 곳에 있었을 뿐이다. 고양이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집을 따라간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이사를 하고 처음 만난 고양이는 우리 식구들과 대면 대면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오시면 10명이 살던 우리 식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고양이를 받아들였다. 그냥 이불 위에서 자고 깨어나면 마당으로 나가 꽃밭에서 응가를 자연스럽게 누고 그랬다. 우리들은 대면식도 없었고 이별식도 없었다. 그냥 우리 식구들과 고양이가 북적거리고 살았다. 원래 식구였던 것처럼..
그게 무슨 말일까.. 왜 고양이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을까… 어릴 적 8살 때 나의 생각은 아마도 고양이의 나라가 있는 듯했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사서 키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크면 창문가에 앉아 크게 울곤 했다. 그때 저 멀리 다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럼 그 다음날 키우던 고양이는 사라져 버렸다. 작별 인사도 없었다. 또한 우리 집 식구들도 고양이는 고양이의 나라에서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오늘도 집에 오지 않았구나 하며 잊혀 갔다.
어릴 적 키우던 고양이들의 이름은 늘 나비였다. 엄마는 무조건 고양이를 보면 나비라고 했으니까 모든 고양이는 나비였다.
나는 문득, 오직 한 마리의 고양이가 얼굴과 털 색깔을 바꾸며 우리 옆에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을까?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진입하기 바쁜 한국이어서 고양이까지 이름 붙일 정신이 없었을 까?
엄마 아빠가 어디 외출을 가고 TV에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새로운 대통령 각하가 나왔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억이 나는구나. 어른들이 투표하러 간 적이 없던 것 같은 데 … 어쨌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던 시대이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을 투표권도 없던 시대였구나. 그땐 국가가 산업발전을 위해서 일해야 하니까 고양이 이름을 붙이지 못했나? 고양이 이름을 붙이면 헌병이나 기무사, 중앙정보부에서 나타나서 연행하고 체포해 갔을 까? 아니겠지.
고양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쁘니까. 졸리면 이불 위에 올라가 자면 그뿐이다. 우리가 준 밥도 잘 먹는 다. 배고프면 널려있는 쥐새끼들 잡아먹거나 귀뚜라미 같은 것을 간식으로 먹겠지 뭐
고양이가 스스로 이쁠 수 있는 것은 독립적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우리 서로 그렇게 크게 원하는 것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만 고양이는 푹신한 이불이 있으면 되고, 어렸던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잠이 잘 오니까.
우리는 그렇게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의존하면서 잠이 든 날이 많았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않았다. 넌 너대로 이쁘고 난 나대로 충분히 이쁨 받았기 때문이다. 서로 독립적이기에 이름이 필요 없었던 것 아닐까.
아니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늘 함께, 옆에 있었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니 이런 기억들을 잊어버렸다.
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것이라면 이것 아닐까. 너의 이름을 누군가 부르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초조해하지 말거라. 외로워 말거라. 넌 충분히 이쁘니까.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내 이름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