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 지침서 13
즐겁지 뭐. 고양이한테 탁구공을 주거나, 엄마의 실타래를 던져 주면 말이야. 고양이는 너무 신나게 놀아. 그뿐이야.
따뜻한 방안, 아랫목에 이불이 있다. 한국 최고의 발명품 ‘안방의 보일러’가 보급되기 전, 연탄으로 난방을 할 때는 아궁이와 연결된 방바닥은 뜨겁다. 그곳이 아랫목이다. 윗목은 차다. 그 아랫목에는 이불속에는 스테인리스 밥통도 있다. 전기밥솥이 없어서 그렇게 보온을 했다. 여기서 목은 ‘장소’를 뜻한다. ‘목 좋은 상점’의 그 ‘목’이다. 일본 주소 표기법에 ‘목’이 들어가니까 일본식 표현일까?
내가 고양이를 키울 때는 개발도상국에서 막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한국이었고, 동네마다 연탄배달집이 있던 시절이었다. 미국의 나이키 신발 제조를 부산공장에서 맡아서 할 때이다.
방 안에 사운드는 라디오 소리.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전파의 영향으로 라디오는 지지직 거린다. 그리고 고양이 옆에 엄마도 앉아 있다. 엄마는 실로 스웨터나 목도리를 짜곤 했다. 그러다가 옷을 짜던 실이 또르르 굴러가면 그땐 고양이가 달려든다. 고양이는 동그란 실을 양발로 차며 논다.
가끔 내가 방 안에서 탁구공을 던져주면, 고양이는 그렇게 재미나게 논다. 아마도 고양이는 겨울에는 추워서 참새 사냥이나 쥐잡기를 잘 안 해서 심심하던 참이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양발로 치고 놀 때는 사실 쥐새끼를 잡을 때이다. 쥐를 한 번에 콱 물지는 않는다. 쥐도 살려고 도망가기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고양이가 자신의 발톱으로 쥐를 가격한 후, 양발로 축구하듯 친다. 이리저리 쥐는 고양이에게 심하게 차이면 정신을 잃는 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이리저리 축구하듯 치인 쥐는 결국 기절한다. 그때 고양이는 쥐의 목덜미를 문다. 그다음 장면은 납량특집이다.
요새 아파트의 고양이들은 쥐 잡는 걸 잊어먹어도 그들의 DNA에는 사냥법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줄에 묶은 실타래 장난감이나 쥐 모양의 장난감으로 놀고는 한다.
쥐는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굴러온 실타래나 탁구공만 보면 튀어나와 잠깐 논다. 오래 못 논다. 금방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그게 행복한 거다. 너무 오래 놀 필요도 없다. 그리고 실타래나 탁구공을 소유하러 들지 않는 다.
강아지는 늑대의 습성이 있어서 땅에 묻으려 하거나 이불속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숨긴다. 그러나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는 소유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는 다. 잠깐 놀고 싶을 땐 놀면 된다. 배고프면 집에 사는 사람이 밥을 줄 것이고, 모자란 단백질과 타우린 등 영양분은 쥐새끼를 잡으면 됐다. 하지만 집착하는 것은 있다. 겨울에 아랫목 이불 위이다. 아랫목은 서열이 있것만, 고양이는 인간의 서열을 무시한다.
달성하고 싶은 욕망, 가지고 있어야 되는 집착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원동력이 나에게 노력, 행동, 성찰, 학습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 심하면 집착은 원한이 되고, 갈망은 갈증으로 변한다.
무엇이든 두려워말고 해 보고 도전해보면 된다. 안되면 말고 또 다른 거 시도하고 시도하고 그러면 된다. 꼭 해야 하고 이루어 내야 한다는 열망의 단점이 있다. 가끔 그런 성취하려는 열망이 아예 ‘시작도 못하고 끝내는’ 경우이다. 왜냐면 “오르지 못할 거면 시작도 안 했다.’라는 문구가 그동안의 시대를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10대 때 관통하던 정신 역시 비슷한 문구들이었다. 예를 들면 ‘ 안되면 되게 하라.’와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가 내 10대를 관통하는 시대의 슬로건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김일성 목을 따자’ 구호부터 ‘안되면 되게 하라’는 슬로건은 어디에서 쉽게 보던 시절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크레파스에 포스터 문구 “목을 따자”라는 것즘은 쉽게 쓰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쉬면 안 되고, 도전하면 해야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래서 행복은 조바심이었다.
지금은 자유로운 바람의 시대이다. 그건 도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잃어버려도 되고 베풀어도 되니까.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도전하고 시도한다.
안되면 말고는 중요하다. 옆사람이 무엇인가 이루면 질투할 필요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바람은 어디든 떠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비교할 필요도 없다.
얻은 성취는 남에게 베풀어 내 몸을 가볍게 하면 된다. 그래야 떠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가볍게 가볍게 떠나보자.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