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지침서 15
누구나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지. 마치 칼라 TV처럼 화려하게 말이야
과거의 찬란한 색상이 지금 바래져도, 그 바랜 색 자체가 이쁠 때가 있지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는 평범한 만큼 이쁘다. 또는 갈색으로 된 고등어 무늬도 키웠었다. 하얀 고양이나 <마녀 배달부 키키>의 고양이처럼 까만 고양이는 키우지 않았다. 없었기도 했고 까만 고양이는 왠지 그 당시 무서운 느낌이었다.
지금은 고양이가 여러 종류도 있고 색깔도 다채로워졌다. 글로벌 시대여서 그런 건가? 발육도 좋아졌다. 고양이가 이렇게 컸던가? 고양이를 한 동안 안 키우다가 최근 친구 집에서 고양이를 보았다. 나는 재규어를 키우는 줄.
나는 그저 평범한 고양이를 키웠지만, 그들의 색깔은 모두 다채로웠다. 흰털이 더 많은 고등어 무늬, 검은 털이 더 많은 고등어 무늬 이런 식 말이다. 모두가 이뻤다. 고양이의 눈도, 털도 모든 칼라가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뻤다.
예전에는 고양이가 TV 위에 올라가곤 했다. 지금은 얇고 가늘지만 그때는 박스형이었다. 고양이가 가끔 올라가곤 했다. 고양이가 올라간 TV도 흑백 TV에서 칼라 TV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대통령은 영화 <헌트>에서 배우 정우성이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그 대통령'이다. 대통령 당선, 아니 '통과' 후 통행금지도 풀렸다. 한국은 칼라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는 배우 안소영의 <애마부인>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TV뿐만 아니라 도시도 형형색색 칼라와 되어가고 있었다.
친척집에 갔는 데, SONY 칼라 테레비를 봤다. 그땐 텔레비전을 테리비라 했다. 한국이 칼라 tv 채널을 송출하기 시작할 때이다. 그때 sony의 색상은 화려했다. 그 테레비는 친척 누나가 보내주었다고 했다. 긴자에서 일한다고 했는 데, 그땐 몰랐다.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그러나 많은 동생들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고 미 8군 근처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돈으로 동생들 학비를 댔다고 들었다. 동생들이 5명이었던가? 그러다 미 8군의 스위스계 미국인을 만나고,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각자 헤어졌다고 들었다. 아마 스위스를 같이 가자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했나 그랬다고 들었다. 친척 누나는 일본에서 번 돈으로 동생들 학비 보내고, 서울에 집도 장만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칼라 텔레비전을 보낸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은 세계경제 2위로 대국이었다. 돈이 넘쳐났다. 한국에는 일본어과가 대학마다 있었고, 일본어 학원도 많았다. 그래서 긴자에서 ‘지하’에 쪼그맣게 ‘장사’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백과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것을 커서 알았다.
그때는 일본이 경제 최고조여서 클럽에서 팁 규모도 어마어마했다고 들었다. 지금의 한국돈으로 팁 2천만 원이나 3천만 원 정도는 우습다고 했을 때였다. 젊은이들 노는 시부야가 그 정도인데, 대기업 사장급이나 고위 간부들이 자주 찾는 긴자는 말할 것 없다고 했다. 그렇게 일본에서 돈을 벌어 서울에 집도 사서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이번엔 테레비를 보낸 것이었다.
어떻게 대학을 다니다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남자를 만나 이역만리로 갔을 까? 그리고 당대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인 긴자에 가서 ‘장사’를 했을 까? 얼마나 힘들었을 까? 아닌가? 도시처럼 화려했을까? 누나는 인생의 화양연화처럼 화려하게 살았을 지도...
어떻게 긴자에서 일했는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 최근 엄마한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할 때, 엄마는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어쨌든 친척 누나도 이제 늙었다. 누나도 청춘을 그렇게 일본에서 보냈다. 누나의 찬란했던 시절은 언제였을 까?
모두가 나이 들어가고 긴자도 그렇게 나이 들어갔다. 나의 고양이들도 이미 사라져 갔다.
최근 상사에서 일했던 일본분을 뵈었다. 점심에 긴자에서 초밥을 먹었다. 본인 젊었을 때는 이 초밥집은 점심에도 감히 못 왔다고 했다.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그때도 2천엔 정도였고, 지금도 2천엔 정도 한다. 30년 전 40년 전이니까 점심 초밥이 지금 돈으로 한 20만 원 했던 거다.
인생의 항로는 늘 예상 밖이다. 그러나 부침도 있고 올라갈 때도 있는 게 인생일까? 한 순간이지만 짧아도 화양연화처럼 인생의 화려한 순간은 있다.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지금은 낡은 사진처럼 바랬어도 말이다. 찰나지만 그런 화양연화 같은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도 중요한 거 같다.
가을이다. 찬바람이 부니 더더욱 쓸쓸해진다. 그래서 더욱 화양연화 같은 내 순간을 꺼내 본다.
카카오톡이 안돼서 브런치로 글을 쓰기 쉽지 않았다. 복구는 불과 이틀이어도 날씨는 초가을에서 늦가을로 변해버렸다. 감기 조심하세요.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