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은 최선을, 동의는 냉정하게
오랫동안 유지해온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동업'이라 해도 좋을 것 같네요. 실은 꽤 오랫동안 파트너십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고 파트너는 최대한 성의껏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바뀌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최종적으로 파트너십을 종료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했죠. 그 결정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있었습니다. 파트너의 메일 내용이었는데요. 파트너십을 계속하고 싶다는 말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저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저 역시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이 간단해졌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데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아니, 오히려 계속 희생을 지속해야 하는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는 파트너의 관점을 존중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해하지만 공감되지 않을 수 있나요?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되는데 동의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요?
네, 둘 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 생각합니다. 이해하니까, 공감하니까 당연히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각자 '주관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이 주관의 세계에서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은 '내 생각' 뿐입니다. 우리는 이 주관적인 생각에 대해 상대방도 같을거라 전제합니다. '자기중심성'이 작동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겪어봐서 압니다. 내 입장에서는 맞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죠.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입장에 서본다면 이해와 공감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해와 공감을 하게 되면 내 생각이 바뀌어서 동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죠. 그것은 엄연히 내 고유의 영역이니까요.
팀원들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팀원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 그것이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기꺼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보통 "이해하면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한 착각이죠. 서로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상대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갈등의 과정'을 기꺼이 겪어야 합니다. 이 경우의 갈등은 성과와 팀워크에 있어 긍정적인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팀원 A와 팀원 B는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 방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팀원 A: "A안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요? 우리가 더 많은 잠재 고객을 빠르게 타겟팅할 수 있으니까요."
팀원 B: "아니죠. B안으로 가야죠.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해야 되요."
팀원 A: "음.. 저는 동의가 되지 않는데요. 왜 B안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설명을 해주실래요?"
팀원 B: "제 생각에는 우리 브랜드의 장기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잠재 고객 타겟팅도 좋은 의견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장기적 성장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핵심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시간이 걸리지만 장기적 성장을 담보한다고 생각해요."
팀원 A: "장기적 성장의 중요성에는 물론 동의해요. 하지만 올해 KPI를 생각해서라도 빠른 성장을 이뤄야 해요."
팀원 B: "일리가 있네요. 그럼 두 방법을 믹스해 볼까요? 우선 A안의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실행해 보고, 흐름이 잡히면 브랜드 이미지 강화 플랜을 곧바로 논의하죠."
팀원 A: "그러죠. 하지만 나는 여전히 A안에만 집중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팀원 절반 이상이 합의안에 동의했으니 저도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
정답이 상대적으로 정해져 있는 (회장님 방침?) 과거의 업무 방식에서는 갈등없이 '일심동체'가 좋은 팀의 특징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변화가 상수인 지금의 시대에는 갈등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갈등을 잘 조율하는 것이 좋은 팀의 특징입니다. 많은 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들이죠. 그러니 여전히 '일심동체'가 좋은 팀의 조건이라고 착각하면 현실과 많이 부딪치게 됩니다.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지겠죠.
팀장의 성과 평가는 이해와 공감에 기반해야 합니다. 다만 중요한 조건! 그것이 꼭 동의로 연결될 필요는 없겠죠. 팀장은 구성원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요구를 동의하고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수도 없구요. 팀장의 역할은 공정한 평가를 하는 것이니까요.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팀장은 성과 평가를 시작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과 평가 면담을 위해 시간을 내주어서 고마워요. 이번 면담에서는 지난 기간 동안의 성과를 함께 돌아보고, 앞으로의 목표를 설정하며, 개선할 부분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저는 OO님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요구에 동의하거나 들어주지는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의 역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OO님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여러분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혹시 OO님이 최종 성과 평가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HR 및 관련 부서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OO님의 권리니까요.)
서로가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한다면 앞으로의 방향성을 중심으로 대화가 가능하리라 기대합니다.”
단순히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고 시작해야 성과 평가의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원래 목적은 팀원이 이번 결과를 통해 학습을 하고 성장해서 다음에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이겠죠?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이해와 공감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반대로 동의 여부는 철저하게 나의 권한임을 알고,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해, 공감, 동의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지만, 이 세 가지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해와 공감은 소통의 기본이지만, 동의는 선택입니다. 일상에서부터 중요한 비즈니스 협상까지,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니 일상에서부터 이렇게 말해 보세요.
"그래, 너의 뜻은 OOOO하다는 걸로 이해하면 될까? (상대의 긍정) 그렇구나, 내가 너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침묵하고)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운데, 그 이유를 말해봐도 좋을까?"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경청 모드'가 되기 쉽습니다. 종종.. 내가 하는 조언이 분명히 좋고 유익한 내용임에도 상대에게 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소리로 인식되죠. 상대의 입장, 상대의 생각을 먼저 묻지 않고 내 판단만을 기반으로 말을 시작했으니까요. 진짜 소통은 내 할말을 속시원히 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이 상대에게 '들어가' 영향을 주고, 또 상대의 말이 나에게 '들어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