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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판. 시비거는 사람 vs. 사업가와 고시생

수시로 시비거는 사람 vs. 이스라엘을 오가는 사업가, 사업고시 합격자

by 한창훈

고수익 알바? 노가다


IMF 여파가 한창이었던 1998년. 나는 일본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엑스트라 연기자, 통신 설비 가설, 화장품 샘플 돌리기, 이삿짐 센터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 중에서도 고강도, 고수익에 속했던 노가다 (일용직 노동) 를 가장 오래했다. 땀을 흘려 정직하게 버는 돈이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노가다를 권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철근을 손으로 억지로 뽑다가 안경알이 깨진적이 있다. 까딱했으면 눈을 찍었을 거라는 뜻이다. 물건을 기중기 도르래에 걸었는데 목장갑이 벗겨지며 말려 올라갔다. 손가락이 말려 올라갔을 수 있었단 뜻이다. 아파트 현장에서 열심히 노란 섬유질 같은 것을 치웠는데 알고보니 석면이었다. 그 외에 공업용 순간접착제에 손이 닿기도 했고 (순간 손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발바닥에 못이 찔릴 뻔 하기도 하고, 허리나 어딘가를 부상당할 상황은 언제나 있었다.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중 하나라도 일어났다면.. 정말 큰일이었을게다.


일용직은.. 일회용 인력


그런 위험한 현장에서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사실 ‘일용직’은 일회용이다. 그래서일까. 인력 사무소 사람들과도, 함께 일하는 인부들과도 그렇게 많이 친해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아르바이트로 하는 대학생이었고, 다른 분들은 경력이 오래된 분들로 뭐랄까.. 신분이 달랐다. 내가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분들의 말투와 행동이었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놀라웠던 것은 경마장을 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경마장을 가고, 다 털리고 나서 월, 화에는 사무실에 몰려온다. 당시 마른 체형에 근육도 별로 없었던 나는 주말에 주로 기회를 얻었다. 어차피 일용직으로 버는데 한계가 있으니 경마라도 해서 벌어보자는 심리가 있지 않나 싶다. 로또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몇몇분은 자존심이 셌다. 조금만 뭐라고 하면 자존심 상해 못해먹겠다며 박차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고 피해의식이 많았다. 체념하는 말을 달고 다니는 분들도 있었다. 그게 되겠냐, 저건 이래서 문제다, 그걸 어느 세월에 하겠냐, 그렇게 잘하면 니가 하든가.. 문제는, 앞에서 침묵하고 뒤에서 구시렁댄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니 하루에 끝내기는 하지만, 그런 말을 밥먹듯 하는 분들과 일하면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시생과 사업가


인연이 닿아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게 되었던 두분이 있었다. 한 분은 사법고시에 패스한 분이었다. 뭐랄까.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은 스토리를 가진 분이었다. 책을 읽고 외우고, 노가다를 하면서 읽었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계속 복기하면서 공부했다고 했다. 합격하고 나서 시간이 남아서 일하러 왔다고 했다. 아마 그분은 지금 훌륭한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한분은 이스라엘을 오가며 보석 유통을 하는 분이었다. 이전의 사업이 망했을 때 노가다를 3년 넘게 했다고 했다. 그 돈을 모아서 다시 재기해서 지금의 사업을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에 주로 머무는데 한국 출장을 왔다가 일주일의 시간이 남아서 운동할 겸 왔다고 했다.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는 분이다.


끌어내리려 애쓴다.


나는 일용직 노동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일단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고, 기본적으로 성실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기술자가 된 분도 많이 보았고, 기술자를 모아서 건물을 올려 건물주가 된 분도 보았다. 그러나 이 바닥에도 80:20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들은 많게 잡아야 20%라고 본다. 80%에 해당하는 분들은 그냥 ‘달리 할 게 없어서’ 일을 했다. 그 분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신념’의 힌트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나는 부자가 될 능력이 없다. 등등의 세계관, 신념이 가득하다. 그 분들은 술을 마시면 스스로의 부정적 신념을 진리인 것처럼 확신에 차서 말한다. 그리고 그 신념을 벗어나려는 사람을 욕하면서 기어이 끌어내리고자 (정말로) 애를 쓴다. ‘원래 그런거다’ 하는 식으로. 이후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수준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다양한 수준의 신념들을 만나는 것과도 같았다. 삶의 배경을 통해, 경험을 통해 신념이 만들어지고, 결국 그 신념이 사람들의 인생 방향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신념체계, 한번은 돌아보자.


그러니. 인생에서 한번쯤은 내가 어떤 신념 체계를 갖고 있는지,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다른 신념체계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신념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다면 주저말고 (힘들더라도) 기꺼이 바꿔가야 한다. 주위에서 기를 써서 말린다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도 한번 가보시라. 유유상종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서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그런 보이지 않는 족쇄를 벗어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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