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루틴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스스로 만드는 감옥이다.

게으름을 탓하지 말고, 환경을 바꿔라

by 한창훈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 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


나이가 있는 분들은 노랫가락이 느껴질 것이다. (안 느껴지는 분은 젊으신거다. ㅎㅎ) 난 개인적으로 사계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루틴이 깨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를 처음 갔을 때 알았다. 이래서 오픈카가 필요한 거였구나. 나는 서울 도심에서 오픈카를 보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짠하다. 매연을 들이키고 막히는 도로에서 오픈카가 얼마나 답답할까. 캘리포니아 해변의 탁 트인 태평양 뷰와 날씨를 경험하니 오픈카가 땡기겠구나 싶었다. 쾌적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이곳. 거기라면 운동도, 일도 루틴을 만들어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탠포드의 앤드류 후버만 박사가 말하는 아침의 햇빛 루틴도 캘리포니아라면 쌉가능!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는 계절에 맞춰 라이프 스타일이 적잖이 바뀐다. 일단 너무 춥고 너무 더우면 밖에서 운동을 하기가 싫어진다. 열과 땀이 많은 편이라 겨울에 운동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미세먼지가 심해진 이후로 그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한달 살기를 할 때는 여유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날씨가 한국의 늦가을 정도였기에 달리기를 하기에 아주 좋았다. 환경이 루틴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다.


바쁜 부모님, 집에 남겨진 형제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는 해외에 나가셨고, 어머니는 항상 어딘가로 나가 다양한 일을 하셨다. 집에는 주로 형과 나, 둘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언제나 커다란 라면 박스가 있었다. 형제에게 이렇게 좋은 환경(?)이 있을까? 라면을 끓여 먹고, 놀면서 과자 처럼 생라면에 스프를 찍어 먹었다. 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너무 좋다. 동네 애들을 집에 불러 다같이 부루마불 등의 보드게임을 하며 라면을 먹었다. 질릴만도 하지만 라면은 중독성이 있다. 지금은 건강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집에서 뭐 먹을까 고민할 때는 항상 라면이 1, 2 순위로 떠오른다. 루틴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평생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루틴이라는 것은 관성, 본성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어릴적부터 형성된 습관은 좋건 나쁘건 ‘형성되어’진다. 오랜 세월 걸쳐 길들여진 ‘라면’에 대한 입맛은 건강식으로 쉽게 교체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드러눕기, 야식 먹기 등은 본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무래도 편한 쪽을 선택하니까. 하지만 운동을 습관화하고 식단을 바꿔가며 알게 된다. 운동이 새로운 루틴이 되면 운동 안한 날이 더 찌뿌둥하다. 식단을 바꾸고 나면 생 당근, 오이 등이 상당히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본성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해서 관성의 법칙이 세월과 함께 더해지면 더 건강하고 좋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진짜로 원하는 것을 먼저 정하자.


나는 영어권에 유학을 가지 않았지만 영어 실력은 괜찮은 편이다. 토플은 아이비리그 입학 기준 근처이고 (조금 못 미친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미팅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정도다. 대기업에서 해외 영업, 마케팅 업무를 큰 문제없이 할 정도였다. (물론 원어민처럼 잘하는 동료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가끔 주위에서 묻는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나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평소 말해주고 싶었던 쉽고 효과적인 노하우를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가 알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저 ‘관심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된 후로 나는 짧게만 답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의 짧은 대답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계속하거나, 메모를 하는 분들을 만난다. 그 분들은 높은 확률로 실행을 한다. 설령 결과가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의지력을 믿지 말라! 연구 결과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다. 의지력 하나만으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이며, 나는 그 극소수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애초에 극소수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 더 맞겠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선 그게 관심의 수준인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를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그걸 ‘목적’이라고 하자. 목적이 명확해 지면 이제 구체적인 목표 (혹은 기준)를 정해야 한다.


의지력이 아니라, 환경 설정이다!


이후에 남은 것은 행동을 강제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은 휴대폰 알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활동을 ‘편하고 쉽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최근에 나는 달리기를 루틴으로 만들었다. 기존에도 틈나면 달리기는 했지만 일이 바쁘다보면 2,3주를 쉬기도 했기 때문이다. 먼저 최소 목표는 주 2회는 동네 한바퀴 돌기 (1.6km). 귀차니스트인 나 자신을 알기에 설정한 첫번째 환경. 신발에 깨끗한 양말 미리 넣어두기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중요하다. 달리자고 생각할 때 바로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다. 문 밖을 나가기만 하면 90%이상 성공이다. 그리고 캘린더 앱에 매일 리마인드가 뜨게 해놓는다. 그리고 뛰기 시작할 때 다른 앱으로 목표를 설정한다. 요즘은 5km를 뛰는데, 앱에서 1km마다 알림을 주고, 보너스(?)로 중간 지점, 마무리 근처에서 격려의 말을 해준다. 별것 아닌듯 싶지만 효과가 있다. 또 가족과 함께 하는 ‘피크민 블룸’이라는 걷기 게임 앱의 도움도 받는다. (최근 핫해졌다.) 걸을수록 포인트와 레벨이 올라가며 여러가지 재밌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목표를 소박하게 잡은 덕분에 늘 목표를 초과 달성한다. 가끔 5km가 힘들다 싶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편의점에서 사먹기로 결심 (몸에 좋은건 아니니까) 완주를 한다. 일단 루틴을 만드는게 우선이니까.


루틴이 깨지면, 게으름 이외의 문제를 찾아본다.


루틴이 깨질때가 있다. 한번 깨지면 그대로 몇 주, 몇 달이 간다. 아예 한동안 잊혀지기도 한다. 심지어 리마인드 설정을 해놨는데도 그런다. 매일 숙제 안한 학생같은 불편한 마음만 있다. 그래서 루틴이 깨질 때의 반응 방식을 바꿨다. 일단 ‘그럴 수 있지’, 다음은 ‘이유가 뭘까?’, ‘어떻게 할까?’ 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셀프로 죄책감을 덜어준다. 가볍게 생각해야 다시 도전을 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유를 찾는다. 이유는 절대로 ‘나의 게으름’에서 찾지 않는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나는 환경에 따라 게으를 수도, 부지런할 수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할까에서는 외부 변수에 대응할 환경을 보완하는 것이다. 일이 너무 많다거나, 가족의 요청이 있거나, 날씨가 바뀌거나.. 외부 변수는 많다. 그 외부 변수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안되면 목표 수준을 과감히 낮추거나 아예 지워버린다. 그게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지 않게 해주니까. 결국 루틴을 만들어 지키는 것도 내가 즐겁게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루틴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스스로 만드는 감옥이다.


주위에 가끔 말한다. 나는 초딩 입맛이라고. 일단 튀긴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도 좋아한다. 맵고 뜨거운 것을 좋아하며 빨리 먹는다. 게다가 원래는 많이 먹는다. 술까지 즐겼다면 정말 위험했겠다 싶을 정도.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식단을 조절한다. 아침에는 야채와 견과류를 먹고, 일상 식사에서도 샐러드 종류를 먼저 먹으려 노력한다. 왜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몸 자체가 나빠지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까. 운동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원초적이고 소박한 목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체력이 좋았던 적이 많지 않았고, 잠이 많은 편이기에 늘 경각심을 갖고 무리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지금 이 정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루틴은 스스로를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keyword
이전 08화모두가 스승이다: 누구에게나 숨겨진 ‘한 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