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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무너뜨린 것은 ‘낙관주의’였다

당신도 ‘지멋대로 생각’에 빠져있다

by 한창훈

회사를 다니면서 코칭 훈련을 받았다.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지인이 코칭을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다. 설명회를 가보니 코칭이 아직 한국에서는 초창기이며, 코칭의 효과는 컨설팅 보다도 몇 십배가 높다는 말을 했다.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하는 분은 코칭이 시작된 미국에서도 몇 안된다는 MCC (Master Certified Coach) 였다. 올바른 코칭을 한국에 뿌리내려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겠다는 그분의 말에 감동했다. 그리고 당시 66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문제가 있었다. 회사 생활과의 병행이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야근이 많았고, 수업을 일부분만 들으니 자격 취득보다도 내 만족도가 떨어졌다. 나름의 오랜 고심 끝에 나는 ‘코치라는 직업’을 갖겠다고 결심하고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관련된 책도 정말 많이 읽었다. 과정을 다 듣고, 추가로 공부도 하면서 이제는 코치로서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무료 코칭을 받을 분들을 찾았다. 개인 코칭, 그룹 코칭을 열심히 했다. 대부분이 무료에 가까웠다. 경험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1년, 2년이 되었다. 나는 점점 한계와 모순을 느끼기 시작했다. 직업으로 이 일이 유지되려면 기업 코칭을 해야했다. 그런데 코칭을 도입하는 회사는 여전히 드물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회사를 오래 다니지도 않았고, 강력한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코칭의 철학과 작동 원리로 본다면 코칭은 나이와 경력이 많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나이와 경력이 선입견으로 작동해서 역효과가 날수도 있다. 하지만 코칭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시점에 세상이 ‘코칭의 철학과 작동원리’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냉정하게 볼 때 나는 코치로서 인격적인 성숙도, 코칭 능력도 한참 모자란 초보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직업으로 코칭을 하겠다고 회사를 나온 것이 얼마나 무모한 선택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현실을 무시한 대가


그런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올 즈음에 아이가 태어났고, 퇴직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나는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외벌이 가장이 되어 있었다. 나와 같이 코칭 훈련을 받은 분들의 절반 이상은 교사, 목사님, 상담사 였다. 이미 직업이 있는 상황에서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온 분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배우자가 안정된 수입을 벌어오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일을 찾으러 온 분들이었다. 나와 같은 경우는 얼마 없었다. 지금의 내 상황을 이해할 사람도, 해결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다행히 코칭이 아닌 강의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전에 해외 영업을 하던 경험, 스터디 모임을 운영한 경험, 영어 스피치 모임을 했던 경험을 배경으로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게 되었다. 점차 좋은 반응이 나왔다. 그것이 몇 년이나 쌓이고 나서, 내 강의에 만족한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나를 코치로 불러주었다. 처음에 마음 먹었던 ‘코치라는 직업’의 기회를 몇 년이 지나서야 얻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91%가 ‘멋대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200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흥미로운, 그러나 엄중한 메시지를 담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인의 91%가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있어보이는 말로 바꾸면 ‘인지적 오류’다.


일단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인지적 오류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사람들이 내 의견을 묻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거나(임의적 추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선택적 추상화) 등을 말한다.또 내가 다가가자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를 멈추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개인화), 세상 모든 일은 옳고 그름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것(이분법 사고),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것(파국화)도 인지적 오류의 사례다.


나의 무모했던 낙관주의


코칭을 선택하고 패기있게 사표를 냈던 당시의 나는 무모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다. 나의 능력 자체를 과대 평가했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퇴직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아이가 태어나서 불안해지니, 인지적 오류는 더 커졌다. 가장 처음으로 온 것은 파국화였다. 말 그대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코칭을 받은 분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지나쳐져서 임의적 추론을 할 때가 생겼다. 다만, 코칭을 배운 덕분에 내가 그런 오류에 빠진다는 것은 금세 눈치채고 바꾸려는 노력은 할 수 있었다. 또 코칭 덕분에 이분법적 사고, 개인화의 함정에는 이전보다 면역력이 크게 올라있었다. 실제로 코칭을 배운 분들 중에는 본인이 스스로 인생을 깨달은 것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어려움 때문에 당시에는 그저 힘들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뭐, 생각하는게 원래 지멋대로인데 뭐가 문제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습관이 타인, 그리고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향이 극에 달해서 ‘묻지마 살인’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2007년에 보고서가 나왔는데, 현재는 어떨까?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할까? 첫째는 자가진단을 해서 스스로 그런 함정에 깊이 빠져 있지 않은지를 봐야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 그들이 알아차리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다. 첫번째, 자가진단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말들은 본인이 많이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임의적 추론 “표정을 보니 꿍꿍이가 있구만"

선택적 추상화 “보나마나 뻔한 것 아니겠어?”

개인화 “나만 뭐가 문제가 있는건가?”

이분법적 사고 “좋지 않다면 나쁜거네?”

파국화 “다 망했어, 다 망쳤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그런 말을 쓰지는 않는지 물어보면 된다. 이 때 해당되는 것이 있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화내며 해명하려 들지 않기를 권한다. 피드백은 그냥 피드백으로 들으면 된다.

다음으로는 내 주위의 사람 중에 이런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것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그 사람과 관계하는 나의 정신건강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가볍게 생각하고 접근해야 쉽게 바뀌지 않는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게 된다.


임의적 추론 “표정을 보니 꿍꿍이가 있구만" → 어떤거 같은데요? 다르게 볼 수는 없나요?

선택적 추상화 “보나마나 뻔한 것 아니겠어?” → 만약에 반대라면 어떻게 될까요?

개인화 “나만 뭐가 문제가 있는건가?” →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까요?

이분법적 사고 “좋지 않다면 나쁜거네?” →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은 없었나요?

파국화 “다 망했어, 다 망쳤어” → 그래도 다행인 것 하나는 있지 않나요?


여기서의 포인트는 질문이다. 상대의 인지적 왜곡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말을 하는 순간, 어떻게 말을 하더라도 배틀 모드가 된다. 니가 맞니 내가 맞니 싸우다가 결국 같이 그의 부정적 사고 회로에 같이 휘말린다. ‘기껏 도와주려고 했더니만!’ 으로 마무리하면 정말 폭탄의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인지적 왜곡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실패 예약이다. 내 생각이 인지적 왜곡에 빠져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점차 개선시켜 나갈수 있다. 그게 해결의 시작이자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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