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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eong May 22. 2016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슬픈 날

과거를 자랑하지 말아라.
자랑할 것이 과거밖에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기억나?"


잠드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찬란한 날들도 있고, 숨 쉬는 소리조차 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날들도 있다. 영광의 시간은 항상 짧다. 버스 정류장처럼 자랑스러운 순간들이 일생에 걸쳐서 드문드문 펼쳐져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의지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좀 편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빛나던 순간만이 내 인생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유혹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조차 피곤하다.


우리들에게도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진짜 돼지가 우물에서 허우적대던 날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때. 뭘 해도 괜찮고, 미래도 있다고 믿있던 시기. 그런 상징적인 시기. 대학교 동창들과 모여 옛날이야기를 할 때라던가, 신입사원 동기들끼리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는데 하는 순간. 이런 추억 팔기는 순간적인 위안을 준다. 그 시절 '나'로 돌아가면, 대부분의 과거가 그렇듯, 현재에는 없는 가능성을 품고 있을 것만 같고, 또 그랬었다고 믿고 싶어 진다. 잠깐 홀린 듯한 시간이 지나면 숙취가 온다. 씁쓸할지도 모른다. 나이는 먹었고, 지금 상황은 항상 꿈꿨단 날들보다는 부족하다. 이런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릿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은 슬픈 날이다. 과거가 안주거리가 되고, 유일한 위안을 주는 날. 자랑할 것이 과거밖에 없을 때 우리는 처량해진다는 말. 그런 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하루를 꼼꼼히 충실히 살아가는 게 순간적으로 영웅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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