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앨버타주
다음 날 새벽 6시, 날이 밝자 밖에서 빵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의 아는 동생이라는 정 아저씨는 조금이라도 빨리 오기 위해 에드먼턴에서 무려 새벽 4시에 출발했다고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누군가 이렇게 노력해 준다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어제 캐네디언 할아버지 부부께서 빌려준 100불과 감사의 노트를 짧게 남겨 모텔 아주머니께 맡겨 놓고, 단출하게 남은 남편의 짐과 자전거를 차에 실어 에드먼턴으로 출발했다.
우리를 에드먼턴으로 데려다주신 것도 감사한데 집에 남는 방이 있다며 편히 지내라고 말씀해주신 정 아저씨. 며칠 전 그 식료품점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단 한번 스쳤을 뿐인 인연이 이렇게 발전하다니. 어제의 도난사건은 잠시 잊은 채, 한국교민들 사이에서 함께 삼겹살을 먹으며 지친 마음과 몸을 달랬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사람들도 반가웠고, 한국말을 하는 나 자신도 좋았으며, 한국음식은 더더욱 따봉이었다. 그렇게 정신없고도, 즐거웠던 하루를 보내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다행히 에드먼턴에 도착했고, 따뜻한 집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이 듦과 동시에- 옷이며, 자전거까지 처음부터 다시 하나씩 준비해야 한다는 게 새삼스레 실감이 났다. 억울함, 분노, 짜증, 슬픔, 눈물... 온갖 감정이 한 번에 휘몰아쳤다. 경찰에 신고한 것만 믿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백만가지 감정에 휘둘린 채, 잠도 오지 않는 새벽 내내 장문의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에드먼턴 경찰, 자전거 동호회, 에드먼턴 방송사 등 내 얘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곳이라 느껴지는 곳에 모두 메시지를 보냈다. 누구든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기를, 누구라도 이 얘기를 퍼뜨려 경찰이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주기를.
메시지를 보내고도 하루, 이틀...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답답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던 어느 날. “띠링-“ 생전 울리지 않던, 내 메신저가 울렸다. 바로 캐나다의 공중파, CBC 에드먼턴이었다. Joey라는 기자는 메시지를 몇번 주고 받다 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너무 안타까운 얘기라며 상세한 경위를 물어왔다.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 기자는, 이 나쁜 놈이 꼭 잡히길 바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전화로 짧은 인터뷰를 한 다음날 아침. 기자 Joey 에게서 어제 인터뷰 한 내용이 오늘 기사로 났으니 확인해 보라는 내용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아니, 이렇게 빠를 줄이야. 서둘러 CBC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내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올라와있었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 자전거를 도둑맞아 에드먼턴에 발이 묶이다.”라는 다소 부끄러운 제목과 함께. 아아. 기쁘면서도 볼따구가 화끈해지는 이 부끄러움은 뭐지. 게다가 정 아저씨는 오늘 아침 라디오 뉴스에도 전화 인터뷰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전화통화를 녹음해 그대로 내보낸 모양이었다.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 죽을 맛이었다.
내참. 한국도 아닌, 이 멀고 먼 캐나다에서 신문과 라디오에 출연해보다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평범하디 평범하게,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얌전히 여행하고 싶었는데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스펙터클 서스펜스 장르물로 변해버린 내 여행 팔자도 보통은 아니구나. 어쨌거나 신문에 나왔으니 뭔가 수사에 진전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필요한 물건을 사러 몰에 갈 참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내 핸드폰에 불이 나 있었다. 계속해서 끝도 없이 새로운 메시지가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서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대부분 라디오에서 내 얘기를 듣고 캐나다인으로서 너무 부끄럽다는, 미안하다는 메시지였다. 묵을 곳은 있는지, 필요한 것이 있는지 등을 물으며 본인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연락을 달라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들이었다. 아...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곱디 고운, 비단 같은 마음씨와 친절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이 점점 따스해져 왔다. 하나, 하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던 중, 믿기지 않는 메시지를 하나 발견했다.
“안녕! 오늘 아침 라디오에 나온 너의 얘기를 들었어. 우리는 재스퍼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야. 다섯 명이서 돈을 모아 너에게 자전거를 사주자는 의견을 모았는데, 우리 선물을 받아주겠니? 만약 원한다면, 네가 탔던 자전거와 사이즈, 페달 종류 등을 알려줘. 너희가 다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안 그래도 자전거를 어디서, 어떤 걸로 다시 사야 되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한국에서도 내 작은 키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 특별 주문을 해야했던 자전거였기 때문. 감동의 쓰나미가 물 밀듯 밀려들어왔다. 그렇지만, 자전거가 한두 푼도 아니고, 덥석 “네! 좋아요! 사주세요!” 하며 받아들이기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한나절쯤을 깊이 생각해 본 우리는 결국 이 분들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모든 게 없어진 이 상황에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우리 힘으로 준비하기엔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금적 여유가 제일 없었다. 게다가 이 분들도 쉽게 이런 결정을 한 게 아닐 텐데, 우리가 섣불리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 에드먼턴 자전거 동호회에서 보내준 고마운 메시지가 있었다. 모두들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모금활동 페이지를 만들어 달라는 권유의 메시지였다.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어렵사리 페이지를 개설하고, 우리가 다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패니어와 캠핑용품, 옷가지 등을 살 수 있는 모금액을 설정했다. 이 페이지는 캐나다와 미국, 심지어 한국까지 퍼졌고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해주었다. 단 하루 만에 기부금은 내가 설정해 둔 모금액을 훨씬 넘었다.
이 모든 일이 기적 같았다. 내 생애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일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이 상황과 우리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모두 기적처럼 느껴졌다. 자전거를 잃고 모든 짐을 잃는 최악의 사건과, 그 어느 곳에서도 쉽사리 경험할 수 없을 이 낯선 이들의 친절을 받는 최고의 사건이 단 며칠 사이에 폭풍처럼 우리를 휩쓸었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캐나다, 그리고 에드먼턴. 이 큰 사건을 겪고도, 여전히 에드먼턴과 캐나다가 그리운 건 엄청난 추억을 만들어 준,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들과의 인연이 있어서이다. 아, 다시 잃어버리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기적은 인생에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