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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렐라 Jan 06. 2019

모든 것을 도둑맞았다 - 자전거 도난사건 2

캐나다, 앨버타주 

내 자전거가, 내 모든 짐을 실어둔 그 자전거가 없어졌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아마도 불과 몇 초였겠지만, 모든 게 슬로모션으로 지나가 한참이 걸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자전거와, 여권, 카메라, 노트북, 옷, 돈, 카드...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모든 게, 이 여행을 위해 준비한 물건들이 모두 없어진 거구나.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과, 내 몸뚱이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이걸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한 그 순간, 남편이 탄 차가 내 옆에 도착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남편은 있는 힘껏 신이 나 있었다. 


"물결아!!! 나 타이어 터졌는데 이분들이 데려다주셨어! 고맙다고 말 좀 해줘!" 

"없어졌어!!!!! 없어졌다고!!!!! 여기 세워뒀는데!! 없어졌어!!!!!"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뭐가 없어졌다는 거야, 쟤가 뭐라고 하는 거야, 라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몇 초 후, 그제야 남편도 깨달은 것 같았다. 내가 달랑 핸드폰만 들고 서 있다는 걸, 내 옆에 자전거가 없다는 걸. 입 밖으로 자전거가 없어졌다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자 마침내 내 머리가 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눈에 눈물이 고였고, 발은 동동 굴렀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남편을 태워 함께 온 할아버지 부부는 영문을 몰라 잠시 멈춰있었지만, 남편의 몇 마디로 상황을 단박에 이해한 것 같았다. 


문제의 고속도로 주변으로는 중고차 샵과, 집이 한 채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자 그 집에 있던 캐네디언도 놀라서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의 얘기를 들은 후 모두 함께 주변을 한참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차에 실어서 가져갔나'하는 추측을 할 수밖에... 이제 남은 건 경찰에 신고하는 일뿐이었다. 유심이 없어 전화를 할 수 없던 우리를 대신해 할아버지 부부께서 경찰에 신고를 해 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리 지르며 울고만 있었다. 이들은 나를 토닥이고 진정시키며, 우선 차에 우리를 태워 10분쯤 떨어진 Wabamun이라는 작은 마을의 모텔 앞에 내려주었다. 그리곤, 우리에게 100불짜리 지폐를 선뜻 내미셨다. 

“돈도 다 잃어버렸지? 우선 이걸로 이 모텔에서 하루 쉬고, 내일 내가 에드먼턴 가는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정말 미안했고, 너무 감사해서, 받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사를 정중히 드린 후, 받은 돈으로 모텔에 우선 체크인을 했다. 모텔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려니 그제야 더더욱 정신이 들었다. 지금 샤워를 마치고 이 화장실에서 나가면, 나는 갈아입을 티셔츠 한 장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양치할 칫솔도 없고, 속옷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온몸으로 실감이 났다. 덜덜 떨며 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떨궜다. 겨우 샤워를 마치고, 남편의 옷을 대충 걸친 후 남편 손에 억지로 이끌려 나왔다. 우선 비상시에 쓸 용도로 챙겨 왔던 남편의 카드로 돈을 뽑고, 허름한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 먹히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었다. 뭘 먹고 있는지, 무슨 맛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남편이 하라는 대로 입에 억지로 넣었다. 


무슨 정신으로 먹었는지도 모를, 중국집의 음식


씻고, 밥 먹고, 정신을 좀 차리고 나니 더욱 막막해졌다. 일단, 큰 도시인 에드먼턴이라도 가야 한국으로 돌아가든, 다시 재정비를 하든 뭔가를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가야 하나.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 핸드폰의 페이스북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에드먼턴에 잘 도착했나요?" 

이틀 전에 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식료품점을 운영하시는 한국인 부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우리에게 도난사건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 에드먼턴이 아님을 설명하자 사장님은 마을과 우리가 묵는 모텔의 이름을 물었다. 본인이 아는 동생에게 부탁해서 데리러 갈 테니, 오늘 저녁은 걱정 말고 푹 쉬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불행 중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한참을 울다 지쳐 침대에 누운 나는, 전 재산 중 겨우 하나 남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에드먼턴에 가면 뭘 해야 하지? 여행을 계속 하기는 해도 되는 걸까? 한국으로 돌아가버릴까? 뭐부터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하나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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