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앨버타주
피터의 하루
캐나다 록키산맥을 넘었다. 밴프에서 재스퍼까지, 그 누구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느린 우리. 남들은 일주일이면 충분히 넘고도 남는다는 록키산맥을 우리는 무려 2주일이나 걸려서 해냈다. 느리기야 했지만, 어쨌든 록키산맥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우리 자신이 그렇게도 대견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재스퍼에서 자신감을 빠방하게 충전한 뒤, 우리는 다음 마을인 에드먼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360km로, 오르막도 심하지 않았으므로 5일쯤 달리면 에드먼턴에 도착하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과연 그랬다. 4일 차가 되던 날까지 우리는 290km를 달렸으니, 5일째 되는 날, 이제 에드먼턴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미리 웜샤워 호스트와도 연락이 되어 있었으니 정말 에드먼턴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2016년 6월 12일이었다. 전날에는 온몸이 아플 정도로 세고 따가운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행히 이 날은 아침부터 매우 화창했다. 게다가 길도 얼마나 좋은지! 작은 언덕들이 몇 개 있었지만 내리막에서 쌩 달리면 그 힘만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작은 언덕들이었다. 바람도 내 뒤에서 불어주지, 해는 따스하지, 갓길도 넓지, 그 어떤 것 하나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캐나다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자전거 여행을 선택한 내 결정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
그렇게 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참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퍽' 소리가 나서 자전거를 세워보니 타이어가 제대로 찢어져 있었다. 아니, 그 흔한 튜브 펑크도 아니고, 타이어가 찢어지다니! 이렇게 깔끔하게 포장된 매끈한 고속도로에서!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얼른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물결이를 불러 세우려는데, 도대체 얼마나 달리는 데 집중한 건지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앞으로 쭉쭉 나간다. 아휴, 얼른 고치고 따라잡아야겠다.
다행히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준비해온 것이 있었다. 바로, 타이어 패치. 패치 뒤의 접착면을 드러나게 한 후, 타이어에 탄탄하게 붙여주기만 하면 끝이었다. 타이어가 찢어진 건 아깝지만, 우선 이렇게 패치로 버티고 도시에 들어가면 새 타이어를 사면 되는 일이니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패치가 충분히 튼튼하게 붙었다고 생각한 후, 다시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타이어 패치를 열심히 붙인 보람도 없이 다시 ‘퍽’ 소리가 나며 터져버렸다. 아놔... 패치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걷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렇게 매끈한 평지에서 자전거를 끌고 걷고 있으려니 분명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차 한 대가 슬그머니 옆에 와서 멈추더니 창문을 내렸다.
"무슨 문제 있는 거야?? 자전거 문제 있으면 내가 태워줄게! 자전거 뒤에 실어!"
내가 어려움에 처하자 달리던 차를 멈추고 도와주려는 캐네디언 할아버지 부부였다. 이 고속도로를 언제까지고 걸을 수만은 없었기에, 고맙다고 말하며 차에 타려고 보니 앉을 좌석이 없었다. 어디에 앉아야 하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조수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내렸다. 그러더니, 트렁크에 있던 할머니의 자전거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전거 타고 가면 돼! 얼른 자전거 싣고 앉아!” 란다. 아니, 생판 처음 보는, 그것도 외국에서 온 게 분명한 이 동양인을 도와주려고 본인은 자전거를 타겠다니. 정말 캐나다인들의 친절함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렐라가 그리 많이 달려갔을 리 없으니, 몇 키로만 신세를 지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 차에 올라탔다.
뜻밖의 친절에 신이 났다. 캐나다 사람들이 착한 거야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으니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에 한계가 있었다. 얼른 가서 물결이한테 이 얘기도 해주고, 할아버지 부부께 고맙다고 제대로 인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를 타고 물결이를 찾았다.
렐라의 하루
록키를 넘었다는 자신감과, 이 좋은 날씨와 매끈한 도로의 행복감에 젖어 달린 지 2시간쯤 되었을까. 이미 70km 중 30km를 달려와 있었다. 잠시 쉬어갈까 싶어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언제나처럼 내 뒤에 바싹 붙어 달려오고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남편은 자전거를 타다가도 멋진 풍경이 나오면 종종 멈춰서 사진을 찍고 다시 나를 쫓아오느라 잠깐씩 늦을 때가 있었다. 아마 지금도 사진을 찍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남편이 도착하면 간식 먹고 쉬다 갈 요량으로, 내 자전거를 고속도로 한쪽에 서 있던 표지판 기둥에 기대 놓은 채 자전거 옆에 털썩 앉았다.
아무리 늦어도, 5분쯤이면 금세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남편이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보니, 기다리기 시작한 지 이미 20분도 더 지나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 보기에는 방금 내려온 내리막이, 다시 말하면 돌아가기엔 엄청난 오르막이 날 마주하고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그렇다고 이렇게 속수무책 기다리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전화 개통이라도 해 둘 것을, 몇 푼 아끼겠다고 우리는 그 흔한 유심칩 하나 껴 넣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됐다.
온갖 생각을 다 하며 앉아있다 보니 어느새 또 10분이 훌쩍 지나갔다. 한참 지도를 쳐다봐도 아까 마지막으로 봤던 지점부터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닌데 이 정도로 안 오는 건 분명 뭔가 무슨 일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냥 자전거 앞에 마냥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분명 지나가는 차들은 남편을 봤을 테니 어느 차라도 세워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지나가는 차 한 대를 세웠다.
"혹시 오는 길에 자전거 타는 남자 못 보셨나요? 아니면 지나오던 길에 사고 현장이라도 있나요?”
"아니, 아무도 못 봤어, 사고도 못 봤는데? 누구 기다리니?”
아니, 내 뒤에 분명 따라오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아무도 없다는 걸까. 참다못한 나는 자전거를 뒤로 하고 몇 발자국 걸어가 목을 빼고 내가 지나온 길을 쳐다보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언제쯤 올까. 무슨 일일까. 몇 분쯤인가가 지나고, 남편이 달려와야 할 길을 쳐다만 보다 지쳐버린 나는 결국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 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까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속도제한 표지판 아래에 내 자전거를 세워놨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자전거가 안 보인다. 아까 잘 기대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전거가 넘어진 모양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 봤다. 아직 다듬지 않은 잔디밭에 자전거가 넘어졌을 테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열 발자국쯤 걸었나, 분명 자전거를 세워둔 곳에 왔는데, 자전거가 없었다.
‘꿈인가?'하고 생각했다. 자전거가 없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