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모든 여행자의 로망,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곳, 우유니 소금사막.
세계여행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던 예전, 세계여행에 관한 책을 통해 실제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조금만 마음먹으면 세계여행이 남의 얘기가 아니게 된다는 것도. 그 달콤함에 감격해 책 모서리가 모두 닳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에서 가장 감동했던 건 우기의 모습을 찍은 ‘우유니 소금사막’의 풍경 사진이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들고 남미에 도착했을 때 반드시 가야만 한다고 마음 먹었던 곳이 바로 우유니였다. 우기에는 소금사막을 자전거로 달리기 힘드니, 건기에 가기위해 앞뒤 일정도 모두 우유니를 중심으로 맞춰두었다. 나의 꿈이자, 이번 장기 여행의 목표였던 우유니 소금사막.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에서 출발해 3개의 도시를 거쳐 마지막으로 도착한 우유니. 이곳에 오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투어를 통해 소금사막을 구경하는데, 욕심 많은 우리는 투어로도 즐기고 자전거로도 직접 달려 우유니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우유니 마을에서 실제 소금사막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까지는 25km 남짓. 1박 2일, 소금사막에서의 캠핑이라는 낭만적인 계획을 세운 우리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우유니 마을을 벗어나 도로에 접어들자마자 양쪽으로 아무것도 없는, 황토색 모래가 펼쳐진 땅이 펼쳐졌다. 저 멀고 먼 지평선의 끝 언저리에 산인지, 언덕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눈에 밟힐 뿐이었다. 바람을 막아주던 집, 건물, 벽 등이 사라지니 이 황량한 곳에 불어닥치는 바람의 무게를 그제야 실감했다. 바람소리, 간간히 지나가는 투어차량, 메마른 황토색 대지가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가는 길을 꽉 채웠다.
푸드덕거리는 바람이 귀를 막아 고요함이 가득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온통 황토색이던 땅의 끝자락에 하얀 구름 같은 것이 일렁거렸다. 하얀 바다인가, 구름인가, 하늘인가. 뭔지 알 수 없어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하얀 것에 초점을 맞추려 한참을 노력했다. 지도를 바라보던 남편은 그 하얀 것이 바로 소금 사막이라고 했다. 소금사막을 보러 가고 있었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내가 그동안 계속해 꿈꿔왔던 그곳이구나.
넓은 하야안 대지가 조금씩 가까워져 왔다. 도로 옆으로 사슴도 아니고, 알파카도 아닌, 둘을 반반 섞은 듯한 ‘비쿠냐(Vicuña)’라는 동물 떼가 우아하게 목을 빼들고 살랑살랑 걸어갔다. 넋을 놓고 한참을 지켜보다 마침내 소금사막의 입구, ‘콜차니(Colchani)’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본격적인 소금사막으로의 길이 시작됐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나타나 우리의 발목을 조금 잡는 듯 하더니, 이내 큼지막한 육각형 소금 결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도 없이 하얀 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우리는 투어차량이 지나간 듯한 새까만 바퀴 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덜덜거리며 달렸다. 사진에서만 보던 소금 호텔과, 각국의 국기가 꽂혀있는 깃발 무덤도 만났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사진으로만 그리던 그곳에 내가 서 있으려니 내가 정말로 우유니에 와 있는건지 현실감이 없었다.
사방이 하얗고 눈부셨다. 8월 말의 우유니는 건기를 맞아 온통 뽀송한 소금의 모습만을 내보였다. 우리가 사진에서만 보던, 보고 싶었던 소금물이 가득한 곳은 - 투어사의 정보에 의하면 - 소금 호텔에서도 5km를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오프라인 지도가 알려주는 방향에 의지해 10km 도 더 달렸지만 물이 가득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오후 5시가 넘었다.
자박자박, 물이 밟히기 시작했다. 물이 가득한 곳 근처에 왔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물이 점점 깊어지며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끌고 걷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한 시간여만 지나면 해가 지니 얼른 텐트를 쳐야 했는데, 남편은 물을 찾아 밤새 달릴 기세였다. 묵묵히 쫓아가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남편을 혼자 보낸 후 내가 왔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했던 우유니 소금사막이었다. 소금 사막에 비가 내려 물이 고이면,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소금물에 그 모습을 반영해 하늘이 땅인지, 땅이 하늘인지, 경계가 어딘지도 알 수 없이 아름다운 그곳.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며 매일같이 가슴 설렜던 그 우유니 소금사막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앞을 봐도 모두 찰박거리는 소금물이 가득했고 어느 방향으로 땅을 밟아도 장화를 신지 않은 나의 발은 얼음장 같은 소금물에 조금씩 젖어들어갔다.
하늘은 속절없이 어둠을 빨아들였다. 얼만큼이나 가야 물이 없는 마른 소금 대지가 나올지 모르는, 사방이 온통 하얗기만 해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소금사막 한가운데 서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여행을 꿈꾸게 했던, 생각만으로도 가슴 콩닥콩닥 설레게 만들었던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서 한 방울, 두 방울 똑똑 눈물을 만들었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당장 닥친 본능을 - 먹고, 자고, 싸고, 눕는 - 안전하게 충족할 방법을 찾지 못해 꿈 한가운데 서서 눈물만 또륵, 또륵 만들어냈다.
물이 가득한 곳을 찾아내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자전거의 모습을 사진에, 영상에 담아낸 남편이 어느샌가 나에게 돌아왔다. 어쩔 줄 몰라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란 토끼눈이 된 남편, 소금물을 이리저리 잘도 피하며 한 시간인가를 이끌었을까. 마침내 물이 없는 마른 소금 대지에 다다라 자전거를 눕혀놓고 재빠르게 텐트를 쳤다. 우리는 능숙하게 하루의 끝을 마무리할 보금자리를 만들고 떡볶이 맛이 나는 부대찌개를 끓였다. 그리고, 부대찌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와인을 그릇에 따랐다. 이가 부딪히는 추위에 있는 옷을 다 껴입고, 털모자를 볼까지 한껏 내리 젖힌 후 둔해진 팔을 움직여 와인 한 모금, 소시지 한 입. 와인 한 모금, 떡볶이 맛 찌개 한 입.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밤이 다가왔다. 반달이 지평선에 걸쳐 겨우 야트막한 빛을 내던 밤, 눈에 담기는 모든 곳이 별빛으로 반짝였다. 이 넓은 곳에서 빛나는 것은 별과 우리 텐트뿐이었다. 내가, 남편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별과 함께 빛을 냈다. 한동안 나의 꿈이 되어 주었던 소금사막 한가운데, 나는 서럽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