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운 Oct 15. 2015

여행을 왜 하는가

#내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

#내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

왜 돈을 여행에 낭비하는가?


 남미에서 모든 여행자가 한 번쯤은 거쳐가는 도시인, 쿠스코에서 머무는 동안 진짜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이전 도시에서 만났던, 보고 싶은 사람들도 다시 만났다. 그러다 보니 문득 지금까지 여행에서 스쳐지간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더라. 호스텔에서 한번 보고 지나가는 사람, 밥을 한번 같이 먹은 사람, 버스를 같이 탄 사람, 투어를 같이 간 사람, 같은 호스텔에 머문 사람, 한 도시를 내내 같이 여행한 사람, 어제까지 같이 여행한 사람 등등.. 생각난 김에 이 사람 저 사람의 페북을 뒤적뒤적하다가 각양각색의 여행 스타일들을 훔쳐보게 됐다.

 남미를 해외여행의 첫 시작으로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행자들과 얘기해보면 대부분이 유럽 그리고 인도를 다녀오고 그다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더라. 그만큼 정말 대단한 여행 베테랑들이 진짜 많았다. 여행자로서 인생선배로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진짜 진짜 진짜 많다. 어제 잠깐 스쳐지나 간 사람이 페북에선 팔로우 몇십만이 넘는 사람이었고, 우연히 방에서 만난 팀이 내가 여행하면서 의미 있다 생각한 일을 했던 팀이었고, 내가 지금 글을 끄적이고 있는 이 호스텔이 내가 언젠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곳이었다. 멀다고 느꼈던 사람과 장소에 내가 직접 만나고 와있다는 걸 알고 나니 꿈꾸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여러모로 자극도 굉장히 많이 받는다. 동시에 열등감 섞인 자괴감도 든다.

 그러면서 내게 여행이란 무슨 의민지, 왜 여행을 시작했는지, 잘 다니고 있는지, 그렇다면 왜 열등감 섞인 자괴감을 느끼는지, 아니라면 왜 아닌지.. 쿠스코의 호스텔에서 새벽까지 고민하다 예전 글들을 뒤적이며 정리를 했었다.    


 내게 여행이란,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여행의 목적을 고민하고 일정을 계획하고 사진으로 미리 한바퀴 여행하고 그리고 여행지에 가서 실제로 걷거나 타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그 모든 행위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행위 하나하나는 여행을 삶의 '소비수단'이 아닌 '생산수단'으로 규정짓기 위한 행위들이었다.

 단순히 놀고 먹고 즐기며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버리고 재충전하는 소비수단이 아니라,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해야만 하는) 일과 생존투쟁의 삶에서 벗어난 삶'을 경험하고 실제 생활에 그 요령을 적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고 싶었다. '일과 생존투쟁'에 매몰된 삶을 경계하는 지표나, 여행 후에 돌아간 일상에서 '왜 아직 더 살아봐야 하는지' 또는 '왜 더 열심히 살아봐야 하는지', 그 이유를 통해 삶을 좀 더 발전적으로 생각하도록 하거나, 하다못해 또 다시 여행하고 싶은 갈망과 절박감을 만드는 그런 수단으로 쓰고 싶었다.     


 남미에 오기 전까진 한국인 여행객들은 여행을 '소비수단'으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네 시간 넘게 남들의 페북을 훔쳐보면서 실제로 소수일지언정 여행을 제대로 된 '생산수단'으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열등감 아닌 열등감이 들었다. 그들이 거쳐간 곳을 나도 지나면서 그들처럼 효과적으로 혹은 잘 여행하고 있는지보다 (어차피 각자 목적도 다르고 능력도 다를 테니 여행에서 얻어가는 절대적인 경험치도 다를 거다. 다만 내 여행의 목적과 내 능력의 한계 안에서) 그들만큼 절박하게 열심히 여행하고 있는지 따져 봤을 때 부끄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은 특히 '부모나 사회, 인맥의 울타리와 체면, 생존과 같은 의무아닌 의무에서 벗어난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가 가진 사상과 신념이 저런 울타리에서 벗어났을 때 실체가 드러나고, 내 성격과 사람됨이 저런 의무에서 벗어났을 때 가면을 벗는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신념과 사상이 잘못되었다거나 허세라는 게 아니라, 얼마나 확고하고 명확한 것인지, 얼마나 내 것이라고 강하게 얘기할 수 있을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순수하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이 어떤 선결조건이나 지지기반 위의 것들인지 그리고 얼마나 남을 의식한 것들이었는지 알려준다.

 여행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여행에서 얻은 경험들이 그 이후에 그다음 스텝을 밟아나가는데 있어서 어떤 발판들이 되고, 여행을 통해 생긴 자기반성과 문제의식, 그리고 또 다른 경험에 대한 갈망이 여행 후에 어떤 식으로 실현되느냐가 여행의 완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여행은 어떨지 몰라도 내게 여행의 의미는 그렇다. 아무리 많이 경험하고 아무리 많이 느끼는 게 있어도 단 하나도 머릿속에 가슴속에 남겨두지 않고 떠나기 이전과 다를바 없는 삶을 자연스럽게 산다면, 결국 돌아와서 할 말은 '먹는 게 남는 거' 혹은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여행자들은 내 이런 여행에 대한 갈망, 역마살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로컬들은, 특히나 경제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은 나라들;모로코, 중국, 볼리비아에서 만난 로컬들 그리고 몇몇 한국인 친구들은,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씁쓸하게 웃으며  'You're  rich..'라는 말을 하곤 했다.

 솔직히 이런 말을 들으면 꽤나 불편하다. 첫째는 내가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 했던 노력과 간절함이 단순히 돈이 많다는 말로 대체돼버리는 거 같아 그렇고, 둘째는 여행을 경험이나 고생이라는 의미보다 당연하게 관광으로 치부하는 것 같이 들려서 그렇고, 셋째는 돈만 있으면 여행할 수 있다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 때문에 그렇다.

 부끄럽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 예전엔 혼자 괜히 짜증내거나 토론을 하려 들려고 했었다.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여행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가 잘못됐다는 걸 증명하거나, 내가 당신보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거나, 혹은 여행을 직접 해보지도 않아놓고 뭔 잘난 척, 아는 척을 그렇게 하느냐 고 빈정거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공격받거나 깎아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그게 나 자신이 형편없어지고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걸로 이어졌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리고 여전히 이런 얘기들을 들어오면서 한 가지 '인정'하게 된 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리고(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상식적으로 단순히 생각한다면 당연히 저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그 가운데는 빈정대거나 공격적인 말로 무례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 더더욱 신경 쓸 필요 없는 거고..) 여행에 대한 관념과 생각은 (정작 직접 여행하는) 여행자들만의 소유물도 아니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관심이 있든 없든 의견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고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게 진지하든 아니든, 하지 말라(ㄹ수 도 없지만)ㄴ 다고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의견은 분명 내가 인정하든 안 하든 존재한다.

 문제는 '내게 중요한, 여행이라는 그 가치가 정말 얼마나 내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그래서 '그들의 비아냥과 쓴웃음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 건지' 이다. 이건 여행뿐만 아니라 삶의 어떤 가치관에도 같은 문제일 수 있는데, 어쭙잖은 우월감과 자만심에 빠져서 그 '일반적인' 상식에 맞서 불뚝성을 내거나 한심하다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것인지, 아니면 '당신 의견은 그렇군요'라고 가볍게 인정하고 흘려들을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단지 전자로 살면 사람들의 안주거리로 자주 오를 수 있다는 것과 그래서 욕먹는 일(이 부당하든 어쩌든지 간에)이 생각보다 자주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 고생을 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왜 이런 식으로 '낭비' 하는지, 별거 아닌 일을 왜 별일인 것처럼 '포장' 하는지, 혹은 고생하면서 왜 행복한 것처럼 '허세'부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들에 대해서, 여행에 대한 내 가치가 확실해 지기 전에는 부들부들 거리는 때가 많았었다. 그리고 여전히 '종종' 그럴 때가 있다.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달은 건, 모든 사람의 의견이 내 가치에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 사람 의견은 그런 거구나'라고 인정하는 거다. 그런 '의견'에 내가 꼭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더라도, 내가 믿는 그 가치가 깎아지거나 작아져 버리거나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둘은 전혀 관계가 없더라. 맞다고 믿는 건 나고, 정작 행동하는 것도 나고, 그 결과를 받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결과를 공유할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그 훈수에 휘둘릴 필요가 없더라.

 남의 일이니까 이러쿵 저러쿵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말들에 흔들려서,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건 멍청한 짓이고, 신뢰할만한 경험자이거나 정말 내게 중요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면 그걸 진지하게 여기면서 괜한 에너지 시간 감정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행동해서 원하는 결과나 행복을 얻으면 그걸로 된 거다. 굳이 증명할 이유도 없고 그걸로 우월감을 느낄 필요는 더더군다나 없다. 남의 충고나 (심지어는) 빈정거림이나 흰소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여러 마디 말로 시비 걸고 떠들어봐야 한번 제대로 행동한 것만 못하고, 한번 제대로 행동했다 하더라도 그다음에 떠드는 우쭐대는 말들은 볼만한 그림에 자꾸 덧대는 붓질처럼 점점 가치를 깎아 내릴 뿐이라는 걸 많은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앞으로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여행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3 적응, 세계일주를 꿈꾸다. (14042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