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 척이 만들어내는 가장 완벽한 방음벽

by 류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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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는 소리가 없는 밤이 있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없고 음악도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손님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솜이 된다.


그 사람은 금요일마다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규칙하게 나타났다.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올 때는 항상 같은 표정이었다. 입술이 닫혀 있고 눈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손이 잔을 감싸는 방식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잡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잔을 채울 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의도였다. 처음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물으려 했다. 괜찮으세요. 오늘 좀 안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 말을 건네려다가 멈췄다. 그의 손가락 끝이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잔을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힘을 주고 있다는 건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는 뜻이다.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괜찮느냐고 묻는 건 그 사람의 둑에 물을 끼얹는 일이다.


나는 돌아섰다.


빈 잔을 닦았다. 이미 깨끗한 잔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닦았다. 잔을 닦는 동작은 바텐더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퇴장이다. 여기 있지만 여기 없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글라스에 린넨을 대고 원을 그리면서 나는 그 사람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등을 보여주는 것은 무례가 아니다.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당신의 눈물을 보지 않겠다는 것. 당신의 떨림을 모른 척하겠다는 것. 당신이 지금 무너져도 나는 아무것도 목격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겠다는 것.


그것이 카운터 너머에서 내가 배운 예의였다.


휴지를 건넨 적이 있다. 아주 초기에. 한 손님이 조용히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깨만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냅킨을 한 장 꺼내서 카운터 위에 밀었다. 선의였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손님이 나를 올려다봤을 때 표정이 굳어 있었다.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어쩌면 분노에 가까웠다. 자기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제삼자가 확인해버린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냅킨은 말이 없었지만 문장이었다. 당신 지금 울고 있죠. 그 문장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냅킨을 먼저 건네지 않는다.


슬픔에는 호흡이 있다.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부풀었다가 가라앉는다. 그 호흡을 끊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방해다. 사람은 자기 안에서 끝낼 수 있는 것을 남이 건드리면 오히려 더 오래 걸린다. 가시를 뽑으려면 조용히 집중해야 하는데 옆에서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손이 떨려서 가시가 더 깊이 들어간다.


모른 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가장 많은 것을 하는 일이다.


소리를 차단하는 방음벽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만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방음벽은 모른 척으로 만든다. 눈을 돌리고 잔을 닦고 음악 볼륨을 한 칸 올린다. 그 사이에 그 사람은 조용히 자기 안의 물을 빼낸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야 사람은 비로소 빠진다.


나는 그 확신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 남자는 한 시간쯤 앉아 있다 갔다. 잔은 두 개를 비웠다. 나는 두 번째 잔을 내려놓을 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가 일어서면서 '감사합니다.'라며 자리를 떴다.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 나는 안다. 묻지 않아줘서. 보지 않아줘서. 투명해져 줘서.


세상에는 말로 위로하는 사람이 있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중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카운터 안쪽이라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림자에는 소리가 없다.


벽에 비치지만 말을 걸지 않는다. 가까이 있지만 접촉하지 않는다. 그냥 따라다닌다. 그 사람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고 그 사람이 멈추면 따라 멈춘다.


나는 그런 그림자가 되기로 했다.


슬픔이 다 빠져나간 사람의 등은 가볍다. 들어올 때와 다른 속도로 걸어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용하다. 잔을 치우면서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공기를 느낀다. 축축하지만 무겁지 않은 공기다. 비 온 뒤의 땅 같다.


위로에는 말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깊은 위로는 침묵이고 가장 완벽한 방음벽은 모른 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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