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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Sep 21. 2016

딴 나라 시민 되기

@The True North strong and free

 영주권을 갱신하려다 보니 서류 요구 사항 등이 의외로 많고 귀찮아 미루고 있었는데, 이참에 훨씬 간편한 프로세스로 개편된 시민권을 신청했더니 서류심사를 거쳐 시민권 시험과 인터뷰를 통과한 후 두 달 만에 최종 선서식만 남게 되었다.

이 나이에 IELTS 시험도 이곳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일반 젊은 이민자, 혹은 유학 지망생 들과 함께 잘 치르고 시민권 시험도 100점 받았다.  이미 시민권을 취득했던 아내는 어떻게 그렇게 두 달 만에 시민권이 나왔는지 약 올라했다.

좌간 이제 나의 한국에서의 족적은 민족적 역사로서의 레코드만 남게 될 뿐 국민으로서의 자격이나 권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영국 왕실 문장이 이쁘게 새겨진 캐나다 여권을 가지게 되고 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변화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젠 어디나 맘대로 들락거릴 수가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영주권자로도 얼마든지 여행이야 할 수 있지만 캐나다 거주 기간이 년간 일정 기간 이상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심적으로, 아니 자존심적으로 100% 완벽한 자유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오후 더 이상 화창할 수 없었던 청명한 초가을 날,  난 명목상의 캐나다 통치권자인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 맹세를 하고 이젠 나의 애국가가 되는 Oh, Canada를 부르며 캐나다 시민이 되었다. 시민권 증서와 함께 교부된 저스틴 트뤼도 수상의 환영 메시지 마지막 문구는 Thank you for choosing Canada. Welcome home!이었다. 시민권을 받고 나서 차 안으로 들어서는데 약간의 현기증, 멀미가 느껴졌다. 평생 거의 느껴보지 못했던 멀미 증상이었다. 캐나다의 일원이 되었음과 동시에 한국과는 갑자기 멀어진데 대한 자각적 증세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나 스스로도 내가 캐나다 사람이 다된 걸 느끼곤 한다. 지금 운영 중인 호텔의 유지보수를 위해 직접 전기톱을 이용해 원목을 자르고, 내 차의 부러진 차축을 교환하기 위해 캐나다 친구와 직접 차량 밑으로 들어가 거대한 볼트를 풀고 부품을 직접 채워 넣는 작업을 하고, 푸른 하늘 밑에서 캠핑과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호수에서 아들과 카누와 카약을 타기도 하면서, 또한 이제껏 거의 십 년 동안 캐나다의 국민 연금은 물론 사업과 관련된 각종 세금들을 성실히 납부해 오지 않았던가. 또한 한국을 가끔 방문해서 만나곤 하는 옛 동료들과 대학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생각의 방식이나 어프로치에서 차이가 나는 바람에 속으로 당황할 때가 많다. 에고 난 이제 외쿡 쌀람이구나.

무엇보다 토론토에서 살다 이곳 서스캐처원으로 이사 온 지 벌써 오 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날 아는 모든 주민들에게 내가 캐나다 시민이 아니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약간의 현기증은 유난히 배달민족임을 부각당하며  받아왔던 한국에서의 모든 교육과 한국 사회만의 독특했던 민족우선적 분위기에서 이제 유체 이탈되어 가는 날 스스로 바라보며 느꼈던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탈피는 좋다. 계속해서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 살이 일 테니.

한국에서부터 내가 좋아했던 스포츠 사격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은 캐나다에서 사는 작은 즐거움 중 하나다.

한국의 태능 사격장 정도에서나 즐겨왔던 사격은 이제 내가 보유하고 싶었던 소총들을 하나씩 장만해 가며 새로운 친구들과의 친분도 쌓아가는 즐거운 취미로 자리 잡게 된 거다.

글로벌 회사에 다니던 시절, 캐나다는 내겐 참 변방이었다. 내가 당시 맡았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프로그램 매니저로써 Worldwide meeting에 참석하다 보면 캐나다 Country Manager는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 쭈그리고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비즈니스 넘버가 모든 걸 대표하다 보니 북미 Region 입장에서 미국의 한 주보다 못한 캐나다 전체 Revenue 상황이 말발을 없게 만들었었다. 각 나라에서 참석한 각종 solution 들을 책임지는 WW Pgm director 들이나 각 나라를 담당하는 Country Manager 들 누구도 캐나다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정착하고 내가 나중에 조인하면서도 캐나다는 그저 미국과 비슷한 줄 알고 왔었다. 하지만 이제껏 살다 보니 캐나다가 미국과 전혀 비슷하지 않음이 얼마나 좋은지.. 캐나다적 소박함, 캐나다적 의리, 사람들의 전형적 나이스함, 자연의 깨끗함, 긍정적 의미의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등등.. 결국 난 운이 좋았던 거다. 미국에 비해 돈, 즉 자본에 대한 보수적 입장, 상대적 둔감함, 고지식함,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원칙에 충실한 이민 정책 등이 건강한 캐나다의 시스템을 만들어 오는 것 같다.

아들과 캐나다 록키 등반.

3000m 고지에 가까워지며 약간의 어지러움과 호흡곤란 증세가 동반된 고산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온타리오 알곤킨 주립공원에서의 딸아이와의 카누 트레일.

캐나다라는 나라의 성숙성은 어느 나라에서 왔던 그 민족적 정체성과 언어, 그리고 종교를 유지한 채 캐나다의 일원으로 살아가라는 것을 고무시킨다는 것일 것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모자이크 국가라는 점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미국이나 여타 유럽의 국가들과 많이 다른 것이고 이것이 참 마음에 드는 것이다.


Bye now.



ps: for your bit more taste of living in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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