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shin Mar 21. 2017

my own Saskatchewan

나만의 사스카추완 @ the land of living skies

경제와 교역, 그리고 정치의 중심인 캐나다 동부의 여러 도시들에 비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중원의 사스카추완 주는 모든 환경이 완벽히 다르다. 전통적인 농경, 목축업이 주 산업을 이루고 엄청난 매장량의 오일과 가스의 에너지 산업, 그리고 친환경 비료의 원료가 되는 포타쉬 채굴 산업 등으로 이루어진 이곳 주의 중남부는 북미 대륙의 거대한 초원 지역을 형성하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만 보이는 곳이다.

대륙의 동서를 관통하는 철길 역시 끝없는 평행선을 이어간다.


또 어느 정도의 위도를 넘어가는 북쪽 지대에서는 forest line(수목선)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그 모든 북쪽은 빽빽한 전나무와 침엽수림을 이루게 되는데 이 역시 사방을 둘러보아도 숲밖에 보이지 않는 장관을 이루게 된다.

그 안에는 십여만 개의 보석 같은 호수들과 늪지, 그리고 강들이 완벽한 생태계를 형성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인 수많은 종류의 사슴들, 곰들, 버펄로, 늑대와 여우, 각종 조류, 그리고 거대한 크기의 어류들이 간혹 우리 인간의 눈에  띄게 된다. 겨울에는 영하 사십 도를 오르내리는 거의 북극 정도의 강추위와 대단한 강설량을 자랑하며 여름엔 삼십 도를 웃도는 맹렬한 여름이 유지되는 이곳은 그러한 혹독한 기후로 인해 오히려 지극히 건강한 생태계를 이룬다.

가족여행을 하며 만나는 동물들은 우리 인간들과 매우 친하기도 하다.

Already 8+ years in here. And I have an another winter season now but I never get used to cold. However though, the vivid memories of hot season as well as some extreme fun in winter time motivate me keep living in here.

You start seeing these happy guys on top of their flying machines out of nowhere in this white world.

Snow shoeing or country skiiing with a half-full bottle of whiskey is for the delight of slow walkers.

Yes now you see we are in the different season.

Fishing is a good excuse for reading and drinking a properly named energy drink gives you a bit more chance to catch monsters.

Paddling around on the mirror surface of the lake gives you some comfort of course. So peaceful.


캐나다의 하이웨이에서 차가 서는 일은 주로 두 가지밖에 없다. 차가 고장 나거나 큰 동물이 도로를 건너고 있거나 인데 차가 고장 나 퍼져 있는 건 보기가 여간해선 힘들다. 오늘 역시 몬스터 피쉬를 낚는 유쾌한 상상을 하며 시속 120km로 달리던 하이웨이에서 앞서가던 소형 트레일러 트럭의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더니 급기야 도로 가운데서 멈춰 섰다. 아! 뭐가 지나가는군 하며 나도 급히 속도를 줄이며 바라 보니 새끼 곰 두 마리 뒤를 어미가 허둥지둥 쫓아가며 고속도로를 건너는 장면이 펼쳐졌다. 곰돌이 패밀리들이 무사히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편 숲으로 살아질 때까지 우리 두대의 차 속 인간들은 즐겁고 따뜻한 심정과 함께 이들 야생 동물의 행적을 눈에 담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도착한 뒤따르던 한 대의 차량 속 인간은 이 장면을 놓친 아쉬움을 달래야 했을 것이다.

오리 새끼들은 앞서가는 엄마의 발자국까지 따라 찍으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렬로 따라간다. 마치 열차가 철로를 지나는 듯. 오리나 기러기들의 양육 방식은 철저히 애지중지, 노심초사가 함께하는 top-down, just-follow-me 방식이다. 반면 learn-by-mistake 방식의 훨씬 sophisticated 한 육아 방식을 추구하는 곰돌이 패밀리의 경우, 어린 곰들은 천방지축 제 가고 싶은 곳으로 내 달리는데 어미는 허겁지겁 주변을 경계하며 새끼들 뒤를 따른다. 무슨 일이 닥칠지는 새끼들 손에 달려 있으며 어미 곰은 잠시 후 해결사로 나타나 자유방임으로 키우는 새끼들이 벌려놓은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그 상황의 경중에 따라 새끼들의 학습효과는 치솟게 된다. 강자의 전형적인 양육 방식인 셈이다. 성숙한 인간 부모들인 경우 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금수저를 자식들에게 물려준 부모들의 경우, 종종 자식들의 갑질 논란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좌간 당신이 캐나다 에서건 어디에서건 새끼 곰과 조우할 경우 녀석이 귀엽다고 다가가 쓰다듬거나 허그를 한다면 낭패를 당할 것이다. 십여 초가 정도가 지난 후 그 어미의 분노에 찬 으르렁 소리를 직면하게 될 테니..

Ice fishing without a shack is not my style but sometimes you could befriend with the cuties.

I love the sound of burning birches.

The frozen minnows are a good tribute to grey jay sometimes. Feeding and watching ash-colored jay is a really fun thing to do.


And I learned how to dye the breached moose trophy with coffee.

짐의 농장엔 그의 선조 할아버지 때 지어진 barn이 있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원형을 제대로 유지한 채 아직도 늠름하게 서있는 이 멋진 건축물은 옆에 들어서 있는 차갑고도 기능적인 현대식 곡물 저장고 bin 들에 비해 높은 기상과 함께 거대한 대지를 일구며 살아온 일가의 스토리가 있었다.


Yeah, we have angry cows here as well. The cows were lined up for vaccinations and stamping process. This is a real ranch stuff.

백수십 년 전부터 우크라이나계, 독일계, 영국계, 프랑스계, 그리고 러시아계 개척민들이 모여 농사와 목축을 하며 이곳에서의 삶을 형성해 왔다. 이들은 부모가 살아왔던 데로, 또 그 조부모들이 그렇게 살았듯 열심히 일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삶을 살아간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즉 지독하게 보수적으로 살아간다. 변함이 없음이 이들의 바람이다. 변함없이 계절이 돌아오면 씨를 뿌리고,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한참 비추고 나면 추수를 하고, 지독한 겨울이 오면 계속 쉰다. 이곳의 농부나 목장주들은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누리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게 별로 없다. 돈은 그저 열심히 일하니 자연스레 쌓여가는 거다. 그러다 시간이 나면 여름엔 낚시를 하고 보트도 타고 겨울엔 사냥도 하면서, 또 아주 추운 겨울에는 텍사스나 애리조나의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 몇 달을 지내다 봄이 올 때쯤 돌아온다. 이제 다들 나이가 예순을 넘고, 칠순을 넘어가는 세대들은 특별히 돈을 쓸데도 없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가치를 물려받지 않지만 도시에 나가 제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열심히 뛰며 제 몫들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케빈과 같은 젊은이들이 남아 있다는 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른 새벽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세차게 내렸고 날씨가 흐려 오늘 필드엔 플레이어들이 거의 없었다. 사슴 가족도 보이지 않았고 새들도 별로 없었지만 숲 속엔 많은 야생화들과 버섯들, 그리고 꽃같이 어여쁜 수많은 가을 잎새들이 가득했다. 낮게 내려앉은 가득한 회색 구름은 장중하고 느린 클래식이었다. 미국에 머물며 작곡했다는 드보르작의 그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 2악장 라르고가 떠오르는 가을이랄까. 꿈속에 그리는 그리운 고향. going home..


그리움을 배운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이제야 난 그리움을 배우고 있는 거다.

공간을 향한 그리움, 거대한 움직임의 다이내믹스에 대한 그리움, 색과 향기에 관한 그리움, 관계에 대한 그리움, 맛에 대한 그리움, 봄 여름 가을겨울의 산과 바다, 하늘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들에 익숙했었음에 대한 그리움.. 세월의 필터에 걸러지기를 반복하며 실제적 경험과 그에 따르는 팩트들의 연상 집합체인 기억은 그리움이라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내게 그리움을 배우게 해주는 세월이 고맙다.

무심한 녀석들. 한참 날 바라보다, 약간의 동요와 함께 자기들끼리 중얼거린다. 쟤는 위로 기네.. 측은한 돌연변이군. 인간들보다 동물들이 훨씬 더 많은 이곳은 종 생태계적 안정성을 이룬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들인 인간들만 주로 거주하는 대도시는 얼마나 살벌한 공간 인지.

지난 수년간 이곳 사스카츄완에서 살면서 찍어본 사진들을 포토샵을 이용해 펜화처럼 아웃라인 추출 프로세싱을 한 후 내 맘 데로 색상을 입혀 봤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내가 이곳에 대한 애정이 참 깊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어느 길을 나서며 얼마나 드라이브를 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열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빨간 엔진이 우두커니 혼자 놓여 있었고 화물차들 역시 무심히 서 있었다. 움직임이 멈춘 열차들은 잠시 쉬고 있다기보다는 어서 덜컹거리며 달리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드라이브 이기도 하다. 수백 수천 킬로 미터의 거리를 왕복하는 건 그저 일상이다.

북극에서 몰아쳐 내리는 블리져드는 겨울이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지만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눈 때문에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white-out 상태에서 헤드라이트에 반사되는 눈은 몽환적이고 미학적이다. 캄캄한 밤 눈 폭풍 속의 드라이브는 두려움 80, 흥미진진함 20이다.

대 평원에서의 삶은 구름과 벗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름에 달이 가고 해가 가는 모습을 보며 하루가 간다. 자연 현상과 인공 조형물의 기하학적 어울림은 종종 짙은 페이소스에 잠기게 한다.

이렇게 하이웨이 옆의 늘어선 전신주들 역시 나와 함께 달린다.

대지에 홀로 서있던 오버 사이즈 저장고가 보였다. 그 어울리지 않음과 아랑곳하지 않음이 마음에 들었다. 싱거운 농담처럼.

흰머리 독수리가 사는 이곳에 나 역시 산다. 세상 경험이 많지 않아 보이는 어린 사슴은 이렇게 날 빤히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건초더미 위에서 쉬고 있는 페레그린 펠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다. 그에게서 읽는 고고함과 고독함, 그리고 늠름함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멋지다.



사스카츄완주의 주립공원 중 하나인 Duck Mountain Park는 사스카츄완 주의 동쪽과 마니토바주의 서쪽이 만나는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거대한 호수인 Make Lake를 비롯한 수많은 호수들과 야트막한 산과 구릉, 그리고 자작나무와 각종 침엽수가 가득한 숲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흰 꼬리 사슴들을 비롯한 무스, 흑곰, 카요리, 팀버 울프, 비버등을 비롯해 흰머리 독수리, 페레그린 펠콘, 각종 기러기들과 오리 등이 날아다니고, 호수들에는 노던 파이크, 월아이, 메기,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송어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슴이든 사람이든 그 가족들은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다.

내가 호텔을 운영하고 살아가고 있는 Kamsack이라는 타운이서 이곳 공원까지는 차로 십오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사는 마을과 이곳 공원은 거의 마을의 확장된 공간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내가 자주 드라이브 삼아, 또 차에서 내려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기 위해 찾는 숲이 있었다. 사계절을 지나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찾는 곳이지만 그때마다 사슴들이 도로를 가로지르곤 했는데 이번엔 그들의 가족 전체와 조우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그저 물끄러미 날 멀치감치서 바라볼 뿐이었지만 사슴 가족과 마주하게 된 내 심장은 꽁닥 꽁닥 뛰었다.

이 멋진 사슴 가족의 사진을 어떻게든 잘 담아 이들의 우아한 모습을 사진을 통해 계속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바람이 운 좋게 내 카메라 앵글에 오롯이 담겼다. 영하 십 도가 넘는 한겨울, 가득한 눈 속에 사슴 가족은 그렇게 날 바라보며 서있었다.



따스한 저녁노을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말의 아름다운 꼬리털에 잔뜩 그 햇살을 머물게 했다.



지구가 그 지질학적 안정성을 찾기 오래전 이곳은 거대한 바다 밑바닥이었다. 그리곤 빙하기가 끝나 녹았던지 지각이 솟아올라 융기되었던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대평원, 대초원 지대를 이루었다. 일견 황량함으로 가득한 곳 같지만 이곳 대평원은 비옥하기 이를 데 없는 지구를 위한 대 곡창이며 빵 공장이다.

소실점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이어져 늘어서 있는 열차는 열차의 정의가 무엇이지를 보여준다.

언젠가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이곳을 떠나고 나서 한참 동안을 까맣게 잊고 나서야..

새하얀 벌판의 얕은 구릉 위에 눈 맞아 소복하게 된 나무 두 그루가 펜스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이런 실존적 분위기의 공간은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혹한의 겨울이 많은 강설량과 함께 6개월 넘게 지속되는 이곳은 그 겨울 때문에 모든 다른 계절 역시 깨끗하고 강렬하게 이어진다. 겨울 왕국이 펼쳐 보이는 단순하고 광대한 공간미는 우리의 미학적 감수성을 한층 높여준다.

hay roll들이 정성스럽게 말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 한편에 놓여 있는 걸 보는 건 괜한 노스탤지어에 젖게 한다. 이젠 노련한 황금색 건초더미로 화했지만 어린 풀들이었던 시절엔 저렇게 색동색이었을 것을..

마을 Fillmore, 더 가득 채워 주세요 를 지날 즈음에야 이 멋진 곡물 저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평원의 곡창지대 위에 30~50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형성된 타운들이다. 농부의 한해 산물인 각종 곡물들은 농촌 마을의 상징인 엘리베이터에 모두 수거된 후, 곡물 전용 화물 열차에 실려 캐나다 각지의 도시들로, 또 수출을 위해 항구로 나가게 된다. 내가 이곳 대평원지역에 처음 당도 했을 때, 저 거대하고도 우스운 모양의 저장고가 왜 저렇게 서 있는지 잘 알지 못했었다. 끝없는 평원의 하이웨이를 질주하면서 간혹 나타나는 마을을 지날 때면, 마을이 보이기 훨씬 전에 저 키 큰 엘이베이 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곤 했었다. 그리고 이 저장고 앞에는 언제나 철길이 달리고 있었다. Railway Ave, 철길 애비뉴는 이곳의 어느 마을에서나 가장 중심이 되는 길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레일웨이 애비뉴 중심에 이곳 농민들의 자부심이자 희망인 저 거대한 탑이 우뚝 서있었던 거다.

원유 채굴 시설인 펌프잭(pumpjack) 주변엔 가스를 빼내며 태워버리는 굴뚝이 하루 종일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대평원의 들판엔 건초 더미들이 끝없이 널려져 있었다.

대륙에 바람이 분다. 이곳의 바람은 느낌이 다르다. 묵직하다고 할까 우직하다고 할까. 뺨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도 아니고, 계곡에서의 온갖 수목의 향기를 품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아니고, 바닷가 파도를 출렁이며 불어오는 세찬 바람도 아니다. 거대한 평원의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부는 바람은 그 바람이 스쳐 와야 하는 대륙의 무게가 실려있다고나 할까.

어느 날엔 아침에 뜬 보름달이 마치 넘어가는 저녁 해처럼 이렇게 떠 있었다.

펌프잭은 메뚜기처럼 쉴 새 없이 끄덕이고 있었고 들판에 느닷없이 솟아있던 나무 한그루 역시 참 비현실적이었는데, 한편으로는 동화스러웠다.


겨울 들판이 세피아 빛으로 늦은 오후의 기울어진 햇살을 받으며 출렁이고 있었는데,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복슬거리는 강아지의 털, 아님 새 깃털의 느낌이었다. 이곳 부근에서 다리가 늘씬한 사슴 서너 마리가 의젓하게 내 차 앞을 지나 사라졌었다. 부랴 부랴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었었는데 녀석들은 무심히 나무 숲 속으로 가버렸다. 이제 혹심한 북극의 블리져드가 몰아쳐 내려올 테지만 아직도 이곳의 冬心은 따스하기만 하다.

예전에 적어놓은 메모가 생각난다.
삼 년 전 봄에 먼지 만한 아주 작은 민트 씨앗들을 손바닥만 한 정원에 심었었다. 그해 봄에 싹은 나지 않았고 그다음 해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잊고 있었었다. 올봄, 싹이 난 것은 보지도 못했고 어느새 한참 자라난 녀석들이 늘어서 있었고 처음엔 잡초인 줄 만 알고 뽑아 버리려 했지만 잎사귀들에 서 피 오르는 향기가 말했다. 저.. 민트예요. 손가락으로 집을 수도 없이 작았던 그 씨앗들에서 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땅속에서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 제대로 성장하여 향기를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감동이라니.. 그 소박하지만 치열한 생명의 정성스러움이라니.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인공 조형물이라곤 목장의 펜스나 전봇대들, 그리고 오일을 퍼내고 있는 펌프잭 밖에 없는 이곳에서 지평선을 배경으로 뚜렷한 실루엣을 형성하며 서있는 裸木들은 다분히 미학적이다. 이젠 저러한 벌거벗고 초라한 듯한 나무가 노스텔직(nostalgic) 분위기를 자아내며 홀로 서있는 벌판을 바라봐도 황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찬 북극의 바람이 항상 몰아치는 대평원의 겨울이지만 맨눈으로는 너무 밝아 도저히 눈을 바로 뜨기 힘든 햇살이 온 대지를 비추는 가운데 이 깨끗하고 파삭 파삭한 햇살을 오롯이 혼자 누리고 있는 저 나무가 애처롭게 보이기는 쉽지가 않은 것일까.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시계가 멈추고, 그 시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시계가 멈추고, 할아버지의 시계가 멈추고, 이제 아버지의 시계가 멈출 것이고, 언젠가 내 시계 역시 멈춰 설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라는 생명체의 bio clock은 도무지 멈추려 하질 않는다. 필요한 만큼 쉬어 가기도 하면서, 십 년, 백 년.. 천년을 넘어 잘도 간다. 이들의 성장 시계, 삶의 시계가 계절의 혹독함에 잠시 멈춰 있음은 오히려 여유를 느끼게 까지 한다. 생명의 대사를 필요에 따라 잠시 멈출 수 있다면 좋겠다. 한 계절 정도 잠시 멈추다 때가 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도 참 좋겠다. 타 생명 群들에 좋은 일을 너무나 많이 하는 나무들은 그 생명의 연속성 미케니즘 역시 탁월하다. 탁월할만하다. 한 해가 오는 듯싶었는데 벌써 또 다른 한 해가 와 버렸다. 무심하려 노력해 보지만 시계를 자꾸 보게 됨은 어쩔 수 없다. ever since we've just been living in a time in a bottle.

바람과 기다림의 사이를 이어가는 하루하루의 삶.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며 퍼플 색 봄 꽃이 피기를 바라본다. 격동의 시절을 열심히 보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단어가, 바람이, 또 그 기다림이 모두 순화되고 소박해져 간다. 주먹을 휘두르던 웅변적 몸짓은 이제 네이비블루 하늘에 무심히 떠오르는 달의 빛처럼 움직임이 느려지고 조용해져만 간다. 열망이 바래져서, 기다림이 느긋해져서 만은 아닐 텐데. 이것이 순리라면 좋겠지만 아마도 이전까지의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반동으로 주어지는 침잠의 시절일 것이다. 정반합의 원칙은 항상 정일 때 요란스럽지만 반을 거쳐 이제 합으로의 긴 수렴기를 거치는 고요함에도 익숙할 때가 된 거다.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隊商의 무리들은 신기루를 단지 신기루로 보아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경험과 지혜 그리고 그에 걸맞은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을 겁니다. 오랜 역사와 관습 그리고 유무형의 부족적 교훈들과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집단의식을 비롯해, 먼 조상들로부터 가까운 부모들에게서 물려진 굴하지 않는 dignity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삶의 지혜들은 이들 부족 구성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전달되며, 체화되어 왔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지팡이를 짚고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걸어 들어오곤 했던 목마른 나그네들 대신, 이전엔 전혀 볼 수 없었던 자본과 기술 이란 무기를 든 외부 침략자들로 바뀌기 시작했고 사막이라는 천혜의 요새 속에서 수백, 수천 년을 거쳐 이어왔던 이들의 소박하지만 불굴의 삶의 형태는 더 이상 영속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겠습니다.

부족적 울타리가 사라지고, 기후적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던 지역성이 사라져 가고, 이데올로기가 바래지고, 철학이 가벼워지고, 종교마저 제 갈길을 잃게 되면서 우리는 나날이 즉시적(instant) 삶의 방식으로 치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디지털라이즈 된 지극히 상업적인 글로벌 체계 속에서도 오아시스를 하나씩 지나며 꿋꿋이 우리 만의 삶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일까요. 기술 자본주의 및 극도의 금융 제국주의의 신기루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여정을 아직도 건강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가끔 우리는 생텍쥐뻬리에게서 혹은 코헬료에게서 隊商의 지혜를 엿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지만 지금의 세상에서는 신기루와 오아시스를 제대로 가려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거나 어떤 의미에선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어느 것이 신기루이고 어느 것이 오아시스 인지조차 모호해지면서 구분 자체가 무의미 해 질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요한 달빛아래 이젠 쓰임새를 잃어버린 농장의 헛간은 그 소박한 실루엣을 통해 과거를 정직하게 추억한다.

인디언들의 티피 끝에선 빵 굽고 고기 굽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정겨운 냄새는 부족이 모여 사는 초원 가득히 퍼져갔을 것이고 먹성 좋은 배 높은 곰, 언제나 뭘 먹고 싶은 팀버 울프, 그리고 그저 심심한 무스들이 부락 주변을 어슬렁 거렸을 것이다. 뾰족이 열어젖힌 티피(Teepee) 천장을 통해 가족들은 달빛을 바라보며 별빛을 바라보며, 또 지평선 이끝에서 저 끝까지 흘러가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들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우화 속에서만, 역사 속에서만, 그리고 이러한 이들만의 축제 속에서만 어렴풋이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은 온통 코냑 빛이었다. 할 수 없이 취했다.

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은 묵시록적 계시로 가득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더욱 다짐했다. ㅎ

그러던 어느 아침은 옅은 스카이 블루와 하얀 서리가 가득했다.

Land of the living Skies. 내가 사랑하는 사스카츄완 주의 모토다.



로데오는 캐나다 전국에서 보다는 이곳 사스카추완 주를 비롯한 알버타와 마니토바 주 등 the Prairie,  대초원 지대를 형성하는 지역에서 엄청난 인기인데 아마 하키 다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말을 키우며 직접 승마를 즐기는 이들도 많고, 직업상 카우보이들도 이곳엔 아주 많다. 하이웨이 갓길엔 말을 달리며 산책하는 이들도 자주 보이고 말을 타고 트래일에 나설 수 있도록 말 산책로도 끝없이 확보되어 있기도 하다. 유별난 프렌치 커내디언들이 사는 마을의 최고 속도는 30 km, 말들의 안전을 위해 마을 전체를 스쿨존 스피드로 줄여놓는 것이다. 말 횡단보도도 있다.

마을의 연례 로데오 대회에서 멋진 퍼플색 셔츠의 카우보이가 말에서 떨어졌다. 정해진 시간 동안 말등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전형적인 로데오 종목이었다. 마을의 아이스하키 링크에 모래와 흙으로 로데오 경기장을 만들어 매년 경기가 열린다.

사스카츄완을 비롯, 알버타, 마니토바, 그리고 BC 등 각주에서 참가하는 로데오 종목별 캐나다 챔피언들을 비롯해 호주에서도 카우보이가 참여했고 카우걸 부문에서는 학교 선생님도 맹렬히 참여했다. 매년 봐오는 로데오지만 올해는 더 신나고 격정적이었다. 특히 경기 직전 말과 소들의 흥분된 상태와 냄새, 괴성,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카우보이들의 긴장감은 로데오 경기에 대한 관중들의 일체감과 몰입감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위 사진은 내가 수년동안 찍어온 로데오 사진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피사체들의 움직임이 아주 빠르고 경기장 실내의 조도가 낮아 좋은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알버타 주를 비롯한 사스캐츄완, 마니토바 등의 프래리(the Prairies 북미의 대 초원 지대) 주에서는 거대한 목장들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목장들에서 일하는 수많은 카우보이들과 카우걸들이 그들의 가축들과 함께 그들만의 에코시스템을 형성한다. 이제는 말대신 ATV 더트바이크를 모는 카우보이들이 많아지지만 아직도 직접 말을 타고선 로프를 던져가며 마소를 다루는 전형적 카우보이들 역시 많다. 캐나다 역시 점점 도시화되어가긴 하지만 그 속도는 중국이나 한국, 이미 도시화 되어버린 여타 나라들에 비해 그 속도는 다행스럽게도 매우 늦다. 따라서 서부시대부터 이어 내려오는 이러한 가축 몰이를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 목장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로데오는 이들 카우보이와 카우걸들의 커뮤니티 축제인 것인데 요즈음은 로데오의 경기만을 주로 하는 프로 카우보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해 가고 있다.

Bare back Bull Riding. 등에서 떨어져 나동구는 카우보이를 사정없이 뒷발길 하는 검은 황소.. 올해의 황소들이 여느 해보다 더욱 사나웠는지, 아님 카우보이들의 스킬이 좀 모자랐는지 이번엔 여덟 명 정도의 선수들 가운데 오직 두 명만이 규정 시간 이상을 버텼다.

이 경기의 규칙은 간단하다. 안장도 없는 성난 황소 등에 올라타 안 떨어지고 오래 견디면 이긴다. 가장 거칠고 위험한 경기라 선수들은 각종 보호 기어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하게 되며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관중들은 숨을 죽이며 경기를 바라본다. 경기장에는 내가 찍어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 찰칵거렸다. 이번 경기에서 두 번째 출전 선수가 경기하기 직전 황소 한 마리가 좁은 철창 안 이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십분 정도 경기가 지연되는 동안 난 영화 쥬라기 공원이 떠올랐다. 철창에 갇힌 T-Rex 가 울부짖는 것 같아서.

내가 마을의 호텔 비지니스를 하며 이곳을 찾는 카우보이들을 만나보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은, 이들은 아주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이다. 도시 생활 속에서 혹은 거대 조직 속에서 유지해 가야 하는 인간들과의 관계보다는 그들의 가축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서인지 이들에게선 도시 인간들의 찌들음이나 피곤함, 교활함, 건방짐, 혹은 잘난 체 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스카츄완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격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캐나다적 삶 중 하나는 '나이를 잊게 하는 삶' 이다. 나이가 많다고 지레 어른 대접을 한다거나, 나이가 많다고 젊은 친구들이 말을 가려 한다거나 내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나이에 비례해 그 사람이 더 성숙하고 그만큼 현명 할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취미가 통하고 생각이 서로 마음에 들면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나 친구처럼 지낼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친구가 되어 있곤 한다. 사격 클럽 활동을 하며 나이에 관계없이 많은 이들과 어울릴수 있는것도 그런 문화에 기인한다.

오늘은 우리 건클럽이 올해들어 처음으로 주최하는 스키트 슈팅(aka 클레이 사격) 행사가 있었다. 사격 선수권 대회나 올림픽 사격 종목 중 가장 인기있는 종목인 스키트 사격은 진흙으로 구워낸 원반 접시를 날려, 슈터가 날아 오르는 표적을 산탄총으로 맞춰내는 대표적인 스포츠 사격이다. 오늘 행사를 통해 우린 샷건 사격의 즐거움과 함께 멤버들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매우 실속있고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내가 아직 다루지 않았고 보유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샷건을 사격해볼 기회를 가졌고, 샷건의 특성에 따라, 또 샷건 shell(산탄)의 용량과 종류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등등에 대한 유익한 learning opportunity 를 가졌다.

캐나다의 작은 타운에서 사는 놀라운 기쁨 중 하나는 뭐든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골프도 앞뒤로 아무 팀도 없는 황제 골프일 때가 많다. 낚시도 호수나 강을 통째로 전세 낸 듯 오로지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다. Shooting 역시 내가 건 클럽의 회원일 경우 마치 내 전용 사격장인 듯 내 맘 데로 문을 따고 들어와 원하는 만큼 여유 있게 사격하고 즐기면 된다. 혼자 있음이 좋은 이들에겐 천국이다.

 캐나다도 도시와 시골은 너무나 다르다. 일요일 대도시의 사격장이었다면 아마도 디즈니랜드에서보다 더 긴 줄을 서서 수시간을 기다렸을지 모른다. 그러다 기다림에 지쳐 포기할 때도 많을 것이다. 대도시에서의 골프 역시 아무리 아침 일찍 가도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고 모든 예약이 꽉 차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때는 아름다웠을 나무 집이다. 그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바로 앞 저 두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고 집을 빙둘러 피어나던 꽃들은 계절 내내 나비와 벌들을 초대했을 것이다. 대초원의 얕은 구릉위에 지어져, 동서남북 가릴 게 없었을 저 집엔 바람과 햇살이 언제나 자유롭게 드나들었을 것이다. 혹심한 추위와 함께 끊임없이 눈이 나리며 쌓여가는 계절에도 이제는 사그라져 버린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연기로 주변은 하루, 이틀, 사흘.. 겨울 내내 은은한 나무향 속에서 조용히 저 집과 함께 겨울을 감내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때는 아름다웠을, 그리고 앞으로 아름다울 모든 것들을 위해..




이 호젓하도고 클래식하며 나무들로 둘러쌓인 완벽한 캠프 사이트에서의 삼시세끼는 통나무 장작을 패서 불을 지펴 해먹어야 되는데, 아들은 도끼로 장작 뽀개기에 심취하여 삼일밤낮을 틈만 나면 도끼질을 해댔다. 대학 시절 오대산이나 지리산등지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하던 시절, 겨울 아침에 텐트에서 밖으로 얼굴을 내미면 그 깐깐한 겨울의 냉기가 확 느껴지곤 했고 밤에 해먹었던 물 누릉지는 꽁꽁 얼어있곤 했었다. 아마 당시 부터 나중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아들과 꼭 캠핑을 다닐것이라는 마음 속 다짐을 한 것 같다. 이제 그 꿈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아들과 함께 했던 자연은 주로 혼자만 즐겨 왔던 그것과는 너무도 많이 달랐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었으며 아름다웠다. 천지에 가득찬 검은 구름과 천둥 소리, 그리고 가득한 폭우와 우박, 그리고 한밤중 텐트가 날아가라 불어댔던 검은 탬페스트는 장중하고 근엄한 서사곡이었고 세상의 모든 디테일들을 일깨우며 우리 부자를 흥분하게 했던 한낮의 태양와 소나기, 그리고 고요히 내려 앉던 노을은 천상의 서사시 였다. 찬란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하기도 했던 어머니 자연은 우리 부자를 더욱 결속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아들 아이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졌던 거대한 잠자리를 바라보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빨간 머리의 튼튼한 부리와 다리를 가진 딱다구리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 바로 앞 나무에서 머리를 끄덕이는 나무를 쪼는 모습을 바라 보기도 하며 우리 부자는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바라보며 낄낄 거리거나 모닥불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느끼며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찬 맥주를 나눠 마실 뿐이었다.




작은 마을 알라메다(Alameda)의 마을 묘지. 어느 망자의 비석 바로 앞에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자라 나 있었습니다. 마치 노을 바라기를 위해 발돋움이라도 한듯 커다랗게 자라난 나무 였습니다. 아마도 그 비석의 주인과 함께 묘목으로 심어졌을 텐데요,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나무의 실루엣을 한참 바라보다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에 우리의 귀에 익은 곡이 생각나기도 하고 모짜르트의 레퀴엠도 떠오르고.. 하지만 제가 본 묘지와 큰 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석양의 모습은 그리 쓸쓸한 것도, 아님 너무 무겁고 어두운 것도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맑고, 깨끗한 작은 묘원을 바라보던 제 마음은 산뜻하기까지 했는데요. 그래서 생각난 곡이 슈베르트의 '숭어' 였습니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함께하는 피아노 5중주는 제가 담아본 광경과 너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길은 시작되고.. 제가 한참 지프에 빠져 한국의 산을 오르고  들을 가로 지르며, 또 강을 건너며 돌아 다닐때 제가 가진 모토 였답니다. 우리는 언젠가 영원한 끝에서 더 이상 갈 곳을 찾을 수 없겠지만 이제까지의 길에서는 언제나 그 끝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곤 했지요.




 언젠가 마니토바라는 인근 주(Province)에 다녀 왔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거대한 목장을 가지고 있는 친구의 사무실이었는데 그 넓은 곳은 주소조차 없어 GPS 에 의지할 수도 없는 곳이었지요. 지형 지물과 주변의 형세등을 통해 찾아 가는 곳이었고 물론 비포장 길이었답니다. 두어시간을 헤매었지만 그 거대한 벌판에 바둑판 처럼 나있는 길들은 곧 저를 길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전 제 애마를 마치 말인양 달리며 그 넓디 넓은 주변을 돌고 돌았었지요.

강을 건너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급경사 길도 오르락 거리고, 비포장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결국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돌아나오기도 하고 차가 온통 머드 팩을 뒤집어 쓰기도 하고 말입니다. 전 길을 찾지 못해 초조한 마음과 함께 그 거친길을 시속 90 km 가 넘는 속도로 좌충우돌 헤메고 돌아다녔답니다. 결국은 포기하고 제가 찾아가는 주인공인 Albert 에게 연락, 그가 자신의 트럭을 몰고 절 마중을 나오며 상황이 종료 되었답니다. 이미 그는 제가 길을 잃을 걸 예상하고 몇통의 voicemail 을 남겼더군요. 목장에서 절 데리러 나온 알버트는 그의 트럭을 제 지프 옆에 바싹 대면서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제게 소리쳤습니다. 피터! 이곳 주변 투어링 잘했지! ㅎ oh, yeah.. 전 머쓱하게 인정할수 밖에요. 우린 그의 목장 오피스에 당도했고 그는 그가 제대로 담근 정말 맛있는 보드카, 혹은 안동 소주 같은 향을 가진 밀주를 내놓아 서로 맛있게 마셨답니다. 대형 목장과 함께 엄청난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있는 알버트지만 그는 이제 그의 취미를 살려 home made sausage 와 hamburger patty, 그리고 그가 사냥하거나 낚아올린 각종 육류와 어류의 훈제 제품들을 그의 농장에서 만들어 냅니다.

 길이 아니었던 길, 전혀 익숙치 않았던 길, 끝까지 달렸더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길이 나타났던 길, 가다 보니 유실되어 없어져 버렸던 길, 가치관이 바뀜과 동시에 이제껏 길이라고 생각해왔던 길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수 밖에 없었던 길들.. 우린 정말 많은 길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램프의 요정을 따라서건, 무지개 저편 너머의 파랑새를 쫒아서건, 우린 또 다시 우리의 길을 떠나겠지요.

겨울이 오면 마니토바로 가는 길은 이렇게 변한답니다. 캐나다 버전의 삼포로 가는 길이라고나 할까요. 북미의 도시들을 온통 마비 상태로 빠지게 하는 혹한과 폭설에도 이곳은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눈이 아무리 많이 내린다 한들, 이 너른 들판은 희고 고운 이불을 자꾸 덮는 것일 뿐이지요. 겨우 살이 준비를 단단히 끝낸 숲과 구릉의 나무들에게 영하 40도 건, 50도 건 아무런 대수가 아닙니다. 철새들은 이미 추위를 피해 다 남쪽으로 내렸갔고 날개가 하얀 멧새들은 떼를 지어 하얀 추위를 즐기기 까지 하지요. 너무 추워 보여 삭막하지만 한편으로 평화로워 보이진 않습니까? 이쁘고 따뜻하고 편리한 도시적인 것에만 너무 익숙해져버린 우리는 이러한 광경을 대하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꼽는 가장 큰 한국스러움은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나 오르내리고 손발 담글 수 있는 아름다운 산과 강, 그리고 바다가 어디에나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담스럽고 이웃 같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정겨운 동식물들을 통해 우리는 한국인만의 한국스러움의 색동 정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깊고도 맑은 계곡과 하천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그 크기나 모양새, 그리고 이름조차도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럽다.

나이 사십 중반 넘게 그런 아름다운 산하에서 살던 내가 이곳 캐나다로 와 살아가고 있는지 어언 12년이 넘어간다. 그런데 이곳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스케일과 함께 해오는 동식물들 중 물고기들은 유독 내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민물 물고기들에 대한 이미지들을 모조리 바꿔 놓는 것들이다. 이곳 강이나 호수에서 살아가는 소위 캐나다스러운 물고기들은 한국에서 나와 함께 자라왔던 알록달록하고 작고 어여쁜 물고기들이 전혀 아니었다. 이곳의 주민들과 처음 낚시를 했을 때 그들이 이 물고기들을 낚은 다음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고는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물에서 끌어올리자마자 머리를 발로 밟아 퍼덕이지 못하게 하고, 낚시 바늘을 뺄 때는 미리 준비한 뻰찌를 이용했으며 녀석들의 이빨에 손가락을 물리지 않기 위해 두꺼운 가죽 장갑까지 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물고기들의 크기는 작게는 사오십 센티, 크게는 일 미터가 족히 넘는 것들이었다. 전투적이고 위협적인 짙은 갈색 색상에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거대한 입을 가진 대형 육식성 어류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인데 내가 캐나다인으로 이곳에서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바에는 이런 몬스터 급 녀석들과 빨리 안면을 트고 서로 잘 지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하늘에 드리운 낚시에 송어는 그저 핑계였다. 녀석들이 미끼를 물거나 말거나, 원구형의 통통한 찌가 이리 저리 움직이거나 물속으로 쑥 들어가거나 말거나, 하늘의 떠가는 구름을 낚으려는 내게 송어는 그저 조심스러운 장난꾼들이었다.

내 친구이자 사부인 글렌에게 운없게 잡혀 미끼로 쓰임을 당한 개구리나, 멸치만한 냉동 미끼들을 hook에 꿰 달때도 눈과 마음은 온통 깊어가는 가을 속, 더 깊어가는 세월 속을 헤매고 있었다. 가을에 드리운 낚시에 송어는 그저 핑계였을 따름이었다.

속절없이 세월에 낚여버린 난, 개구리 뒷다리 한 입 덥썩 물어 버린 후 그 고소한 맛 제데로 느낄새도 없이 뭍으로 끌어올려진 채 퍼덕이던 바로 그 송어였다.




곳곳에서 생명의 찬가가 넘쳐났다. 소리와 함께, 혹은 소리가 전혀 없이도 생명의 거룩하고 신비한 송가는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 물결 소리, 물 잠자리, 밀 잠자리 나르는 소리, 호수 곳곳에서 물고기 튀어 오르는 첨벙 소리와 함께, 햇살 내려 쪼이는 소리, 구름 떠가는 소리, 나무 자라나는 소리, 작은 야생 연꽃 피어나는 소리 까지.. 도시 갤러리의 수채화 전시회들에서 느끼던 petite 감상은 오늘 내게 Mother Nature 갤러리 도처에 산재한 각양 각색의 enormous & sophisticated canvas 들을 바라보며 벅차게 이어졌다. 하늘과 호수, 떠가는 구름과 대낮의 맑은 달, 아련한 수생화와 싱그러운 수초,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힘차고 아름다운 물고기들을 오브제와 모티프 삼은 어머니 자연의 전시회는 시간의 단호한 직진성에서 날 잠시 해방시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도 하고 추억의 달콤함에 소름 돋게도 했다.




바람을 막아주거나 잠시 쉬어가게 하는 산이나 계곡이 전혀 없이 completely flat한 이곳의 바람은 제 불고 싶은데로 분다. 그래서 이곳의 바람은 더이상 자유로울수 없는 순도 100의 바람이다. 후드득 세차게 떨어지는 빗속을 달리는 기분은 너무 좋다. 지구 상에서 가장 광대한 대평원(the Prairie)을 이루는 이곳에서의 비는 여느 곳과는 다른 호쾌함이 있고 주로 강한 바람을 동반하며, 국지성 폭풍우와 토네이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해엔가는 서울서 날라온 절친 조박사와 극기 훈련 수준의 다운 스트림 카누 트레일에 나서기도 했다. 다운 스트림 카누는 다분히 모험적인데 오늘의 전과는 큼지막한 물고기 네마리 낚고 두마리의 가재를 건져 올리고 두개의 낚시대를 부러뜨렸다. 홍수에 쓰러진 나무들과의 충돌에 낚시대들이 차례로 부서져 나갔지만 강을 따라 내려오는 카누 트레일은 정말 황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연 탐사 여행은 once in a life time 급이 될것이다. 비버들이나 거대한 까마귀, 새끼들을 졸졸 데리고 다니며 훈련 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기러기 부모, 독야청청 독수리, 우아한 페레그린 팰컨, 그리고 내가 낚아낸 월아이(walleye) 물고기 등등, 사방엔 인간에 의한 소음은 전혀 없었고 바람은 강 좌우의 나무와 숲들을 강력하게 움직이게 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알렸다. 매우 구불 거려 뱀이 이동하는 모습이었던 사행천 구간이었던 이곳에선 강한 바람이 우리의 등을 밀어주어 쾌속질주를 가능하게도 했고 바로 다음 턴부터는 맞바람 때문에 벤허의 노젖는 노예 모드에 돌입하곤 했다.

강을 따라내려 가면서 봄에 알을 부화해 어느 정도 자라난 새끼들을 데리고 노닐던 기러기 가족들이 계속해서 우리 눈에 들어 왔는데, 우리의 카누가 이들에게 접근 하면서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기러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모 기러기들은 어쩔줄 모르며 꽥꽥 거렸다. 결국 빠르지 못해 뒤쳐지게 된 이산 가족 새끼들이 자맥질로 겨우 몸을 숨기게 되는데 우린 이렇게  피신하는 새끼 기러기들을 차례로 한마리씩 지나치게 되고 어미들은 어쩔수없이 우리 앞에서 계속 진행할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새끼 기러기들을 우리가 다 지나치고 나서야 어미 기러기들은 뒤쳐진 새끼들을 수습하기 위해 강 상류 쪽으로 날아갈수 있었다. 새끼 기러기들이 이렇게 잠수에 능한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의 한곳인 이곳의 강물은 진흙 퇴적물이 풍부해 탁하게 흐른다. 한때 거대한 바다의 얕은 해저를 이루었던 북미 대륙의 정 중앙인 이곳에 쌓인 퇴적물에는 온갖 종류의 고생물 화석들이 발견되곤 한다. 얼마나 오랜동안 이 강은 생명의 수액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일까. 일류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한곳인 중국의 황하보다도 훨씬 오랜 세월동안 생물의 원천인 바닷물과 민물을 품어오고 있다.

장장 1,000 km 가 넘는 길이의 아시니보인 강은 캐나다의 대초원 프레리 주인 사스캐추완과 마니토바주를 굽이 굽이 흐른다. 지구의 빵공장인 기름진 대곡창을 흐르는 만큼 그 물길은 황토색 대지의 색을 띈다. 그리고 이 강물속엔 거대한 노던 파이크(northern pike)와 월아이 (wall eye)를 비롯 잉어, 송어, 그리고 메기들이 가득 서식한다. 반년이 넘는 겨울동안 대지에 쌓였던 눈은 사월이나 되어서야 녹기 시작하는데 마치 고산지대의 만년설이 녹아 강물이 불어나듯 이곳 대평원에서도 비가 전혀 오지 않음에도 강물이 넘쳐 홍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글렌은 강에서 우리 카누를 꺼내준 다음, 누군가의 밭 한가운데를 거쳐 내 호텔까지 카누와 우리를 날라 주었다.


사방이 지평선이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곳, 오로지 짐과 나 둘이서만 질주하면서 난 영화 매드 맥스가 떠오르지 않을수 없었다.

마구 달리며 힐끗 힐끗 내려 보는 내 머신의 속도계는 60마일, 즉 거의 시속 100km를 오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호주 사막의 황토 모래 먼지 대신 청정 겨울의 새하얀 설원위를 폭풍같이 눈발을 헤치고 날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고작 500 파운드도 채 안되지만 160 마력을 자랑하는 이 몬스터 스노우 모빌은 거의 날라 다녔다. 스노우모빌의 독특한 소음과 거친 주행감, 그리고 온몸으로 맞는 강력한 바람은 영화 Fast & Furious 의 Vin Diesel 역시 떠오르게 했다.

라이딩은 너무 신났는데, 고속으로 달리며 헬멧 아래 목과 턱으로 마구 들이치는 겨울 바람은 수염을 얼게 만들 정도였다. 요즘은 heating이 되는 헬멧이 대세라는! 돌아 오는길엔 해가 거의 기울어져 버려서 내 헬멧의 visor에 김이 서리는 바람에 자주 visor를 열어 얼굴을 노출시켜야 했다. 엄동설한 시속 100km로 맞이하는 그 바람의 폭력성 이라니!! 사실은 그래도 너무 상쾌하기만~~





Bonfire fun.

아들과 난 카약을 즐긴 후 모닥불을 피워 바나나를 구워 먹었고 날이 어두어질때 까지 책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다 인기척에 돌아 보니 Park Ranger (주립공원 경찰로 이곳에서는 Conservation Officer 라 불림) 두명이 주립공원 순찰을 나온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이라 실컷 수다를 떨었다. 지난 며칠은 엄청 더웠어! 우린 바트카 호수에 닷새 내내 왔었지. 내 아들이 토론토에서 왔걸랑. 오늘은 물고기 한마리도 못 낚았네..

이들이 돌아 가고, 우린 활활 타는 모닥불을 끄기 아까워 모닥불 사진을 찍어 보기로 했다. 아들이 장작을 헤집어 불꽃이 맹렬히 날아 올렸고 난 플라즈마의 그 멋진 춤을 폰에 담았다.

In homage to Vincent Van Gogh..


I love saskatchewan..


매거진의 이전글 향기에 관한 아주 짧은 歷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