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사람들

아름다운 혹성에서, 그 위성인 달과 함께

by Peter Shin Toronto

일 년 3개월 전부터 웨어하우스 일을 시작하면서 난 더욱더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원래부터 아침형 인간이었지만 이곳의 출근 시간이 7시였던지라(내 경우는 7시 반) 난 새벽형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 반이 되기 전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싸미의 털을 빗겨주고, 먹이를 주고, 두 개의 물그릇을 청소한 후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녀석의 전용 화장실 모래를 청소해 주고,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서 5시 50분에 집을 나선다. 토요일에도 2주에 한 번씩은 출근해 일을 하는 조건으로 입사했기에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처럼 이틀을 쉬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나만의 새벽 루틴을 난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루틴을 더 이상 할수 없게 된다면 난 내 인생의 큰 즐거움을 잃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생은 잃고-얻고-또 잃고의 반복이긴 하지만. 내가 사는 다운타운의 home에서 일터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리고, 새벽 첫 지하철을 한번 타고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거나, 두 번의 첫 지하철을 타고 한 번의 버스를 갈아 타거나 해서, 7시 반 출근을 겨우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의 기계적 결함이나 긴급 트랙 보수 상황 등이 발생하거나, 버스의 배차 간격등에 따라 지각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다행히 일 년이 훨씬 넘는 이제까지의 출근길에서 지각은 단 두 번만 했다.

캐나다 육체 노동자들의 출근 시간은 대부분 7시다. 그리고 오후 3시 반에 퇴근을 한다. 일반 사무직들도 통상의 9 to 5 보다는 이른 출근, 이른 퇴근이 많다. 그리고 여름철에 적용되어 가을까지 이어지는서머타임 제도는 퇴근 후 해가 떠있는 시간을 훨씬 길게 한다. Work-Life-Balance를 바람직하게 유지하게 하는 의미도 있고, 필요에 따라 2nd job, 3rd job을 가능케 해서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일을 더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열심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법을 교묘히 해석하거나 노동자들의 형편과 무지를 이용해 착취하고 고혈을 짜내는 업체들이 한둘이 아니다. 가령 이런 거다. 노동 시간을 15분 단위로 계량을 하는데, 일분이라도 지각하면 15분에 해당하는 시간이 일을 안 한 것으로 계산되지만, 야근 등의 overtime은 15분을 넘겨야 15분을 일한 것으로 간주되며, 14분 50초만 일했을 경우 오버타임을 전혀 하지 않은 경우로 처리되는 출퇴근관리 시스템이 운영된다. 원래는 1분 단위로 정확히 노동 시간이 산정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공정하며, 또한 적법한 것이다. 또한 내 경험에 따르면 육체 노동 중심의 조직에서 수퍼바이저 등의 하위 관리직들의 안이함과 무능, 복지부동은 어의를 상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맡은 업무가 명확하고 계량이 쉬운 육체 작업자들의 업무와는 달리 관리자들의 경우 숨을 곳이 많다. 수치화된 KPI/ Key Performance Index는 고사하고 어떤 일을 어떻게, 어떤 책임하에 하느냐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Job Description 혹은 Roles & Responsibilities가 부재하다. 서로 열심히 일하는 작업자들끼리 일을 하다 보면 issues 나 argue가 발생할 경우가 종종 있지만 당사자들 끼리 고성을 주고받으며 알아서 하도록 방치해 두는 경우가 일상적이다. 이때 주로 목소리 큰자들의 고성으로 마감되곤 하는데 결국 유사한 일들은 다른 작업자들 사이에서도 계속해서 발생되는 결과를 낳는다. 관리자들이 개입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관리자가 어떠한 현안에 대해 결정을 내렸을때 그 결과에 책임를 져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책임 자체를 떠안지 않으려는 안이함과 비겁함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관리자도 있가는 하나 대부분의 경우 모른채 한다. 심지어 아랫사람들끼리의 싸움과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이제이(以夷伐夷)라고나 할까. 관리나 통제의 한 방식이긴 하나 그러한 고도의 조직적 맥락에서 행해지는것은 전혀 아니고 그저 책임 회피나 변명의 방식으로 행해진다. 자신들보다 나이나 사회경험이 훨씬 많고, 출신 학교나 학식, 전문 분야 경력 역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즉 한때 잘 나갔던 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이들 관리자들의 전략은 보통 무대응, 무간섭으로 일관하는게 보통이다. 전문성이 전혀 없는 admin 직원 정도가 맡아도 충분한 출퇴근 시간 관리나 단순한 실수 지적, 직원들 사이의 호칭 문제등이 그나마 이들이 적극 나서는 소위 '관리 분야'다. 자주 발생하는 안전사고 등에 대해서도 발생빈도가 높은 사고등을 분류해 원인추적을 통한 문제 식별, 분석, 근원 관리등의 프로세스적 문제 관리는 요원하고, 부서 간 cross-functional issue나 갈등은 각 담당 작업자들이 감정을 섞어 다투는데도 대부분 대응하지 않으며 작업자들끼리의 문제로 넘어가 버린다. 한편 이러한 관리의 부재는 작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소위 작업 강도가 높지 않게 유지되는 측면이 있어 큰 압박 없는 근무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동전엔 양면이 있고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곳의 수많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새벽형 인간으로 살아간다. 최저임금으로 한 사람이 매일 일하며 벌어들이는 년간 액수는 캐나다 일인당 GNP의 반(half)정도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한집에 살며 여러 명의 가족 구성원들로 대가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도나 파키스탄, 혹은 필리핀이나 라틴 국가, 혹은 동구권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은 그 성인 구성원들이 모두 일을 할 경우, 가령 세명의 성인 가족 구성원만 해도, 모두 일을 한다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그 이상의 가족들이 모두 일한다면 넉넉한 삶이 보장된다. 불법 체류자들이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refugee 호소자들, 혹은 노동시장 사정에 따라 캐나다 자국민들이 아닌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필요한 경우 적용되는 LMIA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고용된 경우 등등은 예외다.

나를 포함한 이 새벽형 노동자들의 모습은 일견 떳떳하고 말끔하며 긍정적으로 보이며, 밝고 유쾌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까지 보인다. 하지만 against all odds 어떡하든 씩씩하게 살아가려 노력한다고 보는게 맞을것이다. 온갖 위험이 도사라고 있고 그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하더라도, 위험요소를 제거하거나 피해가며, 이렇게 신나게 하루를 열며 보람차게 일을 마치고선, 퇴근 후엔 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캐나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석유, 가스, 목재, 천연비료, 곡물, 수자원 등등 전적으로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경제이다 보니 변변한 제조업이 없고 석탄채굴은 오래전부터 이미 중단했으며, 중공업이나 화학공업등의 환경오염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공해의 원천이 없고 마치 온 나라가 국립공원인 듯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아침의 이른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나처럼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달을 대한다. 벌써 11도까지 떨어지는 토론토의 아침기온이지만 아침의 상쾌함과 청량감은 충분히 감사한 마음으로 일터로의 마지막 여정을 이어가게 한다.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은 모른다. 우리 프로레탈리안 육체 노동자들의 삶이 조마조마하긴 하지만 얼마나 건강하고, 단순하며 정직한 것인지. 또 인더스트리 각 분야의 모세혈관적 혈류를 보장하며 우리의 노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스템들의 단말들이 제대로 작동하게 담보하는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만 내일 역시 보장되는 하루살이적 삶이지만, 또 우리가 아무리 묵묵히 열심히 일을 잘해도, 당신은 우리와 '코드'가 안 맞는 것 같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쇼, 하면 바로 직장을 잃어버리는 그런 불안정속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지만, 그 하루하루는 적어도 본인 자신에겐 떳떳하고 보람차다. 우리들의 정직한 노동으로 제 배를 채워가는 비루하고 비겁한 관리자들을 보면, 우리는 심지어 고결하기까지 하다.



I am a proud proletar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