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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Feb 20. 2018

24. 맛없는 빵을 사는 이유



바게트 빵을 샀다. 자발적으로 구입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무심결에 주문한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가 바게트 빵으로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천장이 맨들맨들 해지는 경험을 하며 먹은 적은 있지만). 딱딱하기만 하고 아무 맛이 나지 않는 이런 빵을 사람들은 도대체 왜 먹는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 바게트 빵이 오늘은 사고 싶었다. 

맛과 질감을 일단 한켠으로 밀어두고 나면, 바게트가 가진 상당한 매력이 보이기 시작한다. 빵에서 맛과 질감을 빼면 뭐가 남는 게 있나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꽤 있다. 딱히 먹고 싶은 욕구는 자극하지 않지만 사고 싶은 욕구는 엄청 자극하는 빵이 바게트다. 이상하게 자주 먹는 빵이 아닌데도 빵 하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하나가 바게트이고, 그 바게트 빵은 주로 퇴근길 트렌치 코트를 입은 커리어 우먼 손에 들려있거나 빈티지 자전거에 달린 철제 바구니에 우아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어쩌다 바게트가 긴 막대기 모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게트 라는 단어 뜻이 막대기 라고 하니 이 질문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 들긴 한다), 그 모양 덕분에 기다란 봉투에 쏙 들어가 바구니에 담겨 진열되곤 한다. 그런 바게트를 바구니에서 꺼내어 살 때의 느낌은 빵을 살 때의 느낌 이라기보다는 꽃 한 다발을 살 때의 뿌듯함에 가깝다. 아무튼 이런 고상한 이유도 있고, 핫도그 해먹으려고 소시지를 샀는데 핫도그 빵이 마침 가게에 다 떨어지기도 해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바게트를 샀다.

바게트가 왜 맛이 없나 찾아보다 보니 바게트를 만들 때는 밀가루, 소금, 물, 효모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빵을 몇번 만들어 보니 보통 버터, 설탕, 계란 이런 것들이 반을 차지하던데, 역시 맛이 없는 게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바게트는 원래 맛이 없는 것, 그야말로 ‘무미’가 정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어느 것과 곁들여 먹어도 어울리는 빵이라고. 처음엔 엥 이게 뭐야 맛 없는 걸 이렇게 미화해도 되는건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보카도 라든가 마카로니 같이 특별한 맛은 없지만 무엇을 먹든 부담없이 함께 찾게 되는 카테고리의 음식이구나 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늘은 글 쓰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 무미를 너무 묵상했나 보다. 바게트나 한 입 베어 물고 잠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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