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무슨 향이 느껴지지 않아?" 얼마 전 낫또를 밥에 비벼 먹던 아내가 물었다. 낫또가 그냥 낫또지 구수한 냄새 말고 뭐 특별한 향이 나겠어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말하지 않고 얼른 한 숟갈 더 먹어 보았다. 낫또를 씹을수록 어떤 희미한 내음이 올라오는 것 같긴 했다. 어릴 때 쓰던 오이 비누가 떠오르기도 하고 비누를 먹으면 이런 향이 나지 않으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대뜸 이게 무슨 향인지 알겠다며 기뻐했다.
이거 깻잎이야 깻잎! 이라고 확신하던 아내는 낫또의 겉 포장에 혹시 깻잎이 그려져 있진 않은지 확인했다. 난 에이 그럴리 없어, 많고 많은 향 중에 누가 하필 깻잎 향을 낫또에 넣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깻잎 향이 좋은 거였다면 깻잎맛 과자, 깻잎맛 빵 같은 게 진작에 나왔어야지 싶었다. 아내는 낫또 포장에서 깻잎은 찾지 못했지만, '향'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써 있는거 같다며 어쨌든 이게 보통 낫또는 아닌게 맞다고 했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그것은 깻잎이었다. 일본 음식이 먹고 싶어서 블로그를 뒤지던 중, 토마토 시소 샐러드를 발견했다. 음 시소가 뭐지 하고 찾아보니 깻잎 같이 생긴 이미지가 검색 되었다. 일본 마트에 가서 깻잎을 찾았다. 한국 마트 같았으면 미나리와 대파 사이 쯤에서 미스트를 맞으며 야생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깻잎이, 일본 마트에선 아주 공손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연두빛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열 장도 채 안 되어 보이는 깻잎 반줌이 하얀 스티로폼 용기 위에서 플라스틱 랩을 단정하게 덮은 채로 빛을 받으며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사가셔도 좋지 않으실까 싶습니다만 정도의 메세지를 주고 있었다. 한국 깻잎보다 두 배 비싼 가격표와 함께.
집에 와서 보니 생김새도 한국 깻잎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국 깻잎이 국방색 바탕에 군인의 팔뚝에 나 있는 핏줄 같은 잎맥을 갖고 있다면, 일본 깻잎은 조금 색이 바랜 할머니의 주름진 손 같아서 더 곱고 연약해 보였다. 먹어보니 낫또에서 느껴졌던 딱 그 향이 났다. 한국 깻잎을 보면 얼른 이걸로 돼지고기 한줌 싸서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일본 깻잎에게선 무엇인가를 덮을만한 그런 기개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잘게 썰어서 토마토에 살짝 얹어 놓아야지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일본 깻잎은 토마토 옆에서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누가 생각 했는지 몰라도 토마토와 깻잎은 정말 좋은 조합이다. 여기에 간장 참기름 식초를 얹으니 일식으로서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 졌다. 덕분에 향긋한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