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른쪽으로 돌아 그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어둠 속을 비추고 있는 것은 우리 차에서 새어 나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뿐이었다. 길가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좁은 길 양쪽으로 줄지어 들어선 집들에 나 있는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저 집은 제라늄을 키우고 있네."
나는 속도를 줄이고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타고 있는 토니를 힐끔 바라보았다. 토니가 차창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한 발코니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가 나에게 그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을 웅얼거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라늄을 키우고 있어. 제라늄을 키우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나는 잠자코 계속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하려 했지만 토니가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니 토니? 골목이 이렇게 어두운데 말이야. 넌 그 꽃 색깔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 같은데. 난 사실 이렇게 캄캄한 곳에서 발견한 어떤 식물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지금 생각하면 토니에게 내가 그렇게 쏘아붙이는 것처럼 들리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때 내가 줄곧 우리가 차를 타기 전 아드리안 씨 집에서 그가 우리에게 했던 말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곱씹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말이 토니와 내가 함께 보내게 될 며칠 간의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따져 보면서 말이다. 아드리안 씨는 우리가 그의 현관문을 나와 몸을 돌려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할 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이만하면 충분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엘리자베스 부인은 내일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 더군다나 두 분이 여기까지 직접 차를 몰고 그걸 가져오셨다는 걸 알면 더욱 기뻐하실 겁니다. 부인은 틈만 나면 소피와 토니 두 분 커플에 대한 얘기를 하셨어요. 언젠가 때가 되면 그 물건을 반드시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나는 그때 아드리안 씨의 그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토니를 쳐다보았다. 토니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채 신발을 고쳐 신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이 신고 있는 스니커즈의 앞코를 바닥에 찧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드리안 씨에게 웃어 보이고는 모든 게 감사하다고 중얼거리고 얼른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