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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Jul 05. 2019

자정 무렵의 알리오 올리오


- 11:57 pm.

"왜 지금 파스타를 만드는 거야?"


그녀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그건 이 파스타가 알리오 올리오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알리오 올리오가 뭐 어쨌다는 거지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너도 내 말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 어쩌면 네가 직접 '지금 이 시간에' 마늘을 무쇠 팬 위에 올려보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래, 넌 우선 마늘을 준비하는 거야. 아직 껍질을 까지 않아서 그 안에 자신의 향을 간직하고 있는 마늘이면 돼. 마늘향, 지금은 그 향이 맹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 하지만 무쇠 팬 위에서 달궈지면 훨씬 은은해질 거야. 넌 그걸 믿으면서 마늘 알을 고르고 껍질을 벗기는 거야. 여섯 알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리고 얇게 썬 마늘을 달궈진 무쇠 팬 위에 올려. 그때쯤이면 올리브 오일도 팬 위에서 한껏 뜨거워져 있겠지. 넌 그걸 잊어버리지 않았을 거야."


나는 방에 들어간 그녀가 여전히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해.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들이 네가 궁금해하던 '이유'와 깊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 이때쯤 너는 부엌에 있는 모든 조명을 끄는 거야. 가스레인지 위에 희미한 조명만 남기고 말이지. 생각해 봐. 이제 너는 어둠 속에서 서 있고 그 앞에는 검은 무쇠 팬이 있고 가열된 올리브 오일이 있고 익어가는 마늘이 있어. 넌 정적 속에서 뜨거운 오일에 마늘이 그을리는 소리만 듣게 될 거야. 넌 한동안 거기 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게 될 거라고. 그리고 눈을 감아. 타닥타닥 소리 속에서 넌 오후의 너를 떠올려. 해치웠어야 했던 일을 오늘도 처리하지 못한 너를 떠올리게 되는 거지. 그래서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해. 마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를 잠시 경멸하게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아주 잠깐일 뿐이야. 경멸의 감정은 곧 사라지고 말 거야.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젯밤의 감정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이제 너는 마늘의 향을 음미하기 시작해. 마늘 향은 분명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을 거야.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조금 전과 지금의 마늘 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확신을 넌 갖게 될 거야. 그렇게 넌 이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된 거야. 생각이 거기까지 이를 때쯤 넌 페페론치노를 뿌려. 오일과 마늘과 페페론치노 이게 전부야.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 이게 전부라고. 나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누군가는 네가 어떤 면을 써야 하는지, 면을 삶는 물에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그 면을 알 덴테까지 삶아야 하는지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겠지만 그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야.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네가 너를 용서한 후에는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거야. 스파게티를 넣으려면 스파게티를 넣고 링귀니를 넣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아. 네가 페투치니를 넣겠다고 우긴다면 몇몇 사람들은 널 말리겠지. 하지만 뭐 어때. 결국 네가 먹게 될 파스타잖아. 원한다면 나도 같이 먹어줄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내 부탁이니까 긍정적으로 고려해 줬으면 좋겠어. 부탁이라기보다 하나의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치즈는 불을 끄기 일분 전에 넣어줬으면 해. 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선호하지만 꼭 그게 아니라도 좋아. 어떤 치즈가 됐든 파스타 면에 아주 살짝 엉길 수 있을 정도면 좋겠어. 그가 내가 바라는 전부야. 넌 파슬리로 알리오 올리오를 마무리하는 것 정도는 훌륭히 해낼 거니깐 더 길게 얘기하진 않을게."


여기까지 내가 말을 했을 때 나는 방 안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녀가 있는 방에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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