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면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겠니?"
그녀의 물음에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너도 나처럼 눈을 감아. 그리고 잠에 빠져 드는 거야.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고 생각해. 너는 그때 잠이 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무슨 이유에서 네가 잠을 자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너는 잠이 든 거야. 네가 그때 잠이 든 건 네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였을지도 몰라. 그 많은 생각이 널 잠식하기 전에 네 무의식이 너를 쉬게 한 것일지도 모르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아. 하지만 넌 그걸 받아들여야 해. 원치 않는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는 걸, 그럴 수도 있다는 걸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네가 될 수 없어."
내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말했다.
"이제 넌 잠을 자고 있어. 다시 말하지만 네가 이 상황을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네가 이제 자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네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넌 처음에는 그 사실이 편하게 느껴졌을 거야. 생각해봐. 널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가 자고 있는 그 방안에는 너 혼자 뿐인 거야. 네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어둠 속에서 네가 호흡하는 소리는 너만 들을 수 있는 거야.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나지 않아. 물론 자고 있는 동안 너는 그걸 의식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 이제 널 깨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야. 아무도."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너는 꿈속에서 너를 만나.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너는 교실에 앉아 있어. 그리고 네 책상에는 시험지가 놓여있어. 어려운 문제들은 아니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오지선다형 질문 들일뿐이지. 네가 의미만 잘 파악하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야. 문제는 시간이야. 이미 시간이 다 된 거야. 네 주위에 학생들도 선생님도 네가 시험지를 제출하기만 기다리고 있어. 모두 너를 바라보고 있지. 그들이 뭐라 네게 말을 하며 보채는 건 아니야. 그냥 너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야. 순간 너는 시험지에 네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게 돼. 그리고 연필로 시험지 위에 있는 빈칸에 네 이름을 적으려고 해. 하지만 네 이름을 쓸 수가 없어. 네가 네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런데 아무리 네 이름을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어. 넌 네 이름을 생각해. 네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안간힘을 써. 당장 그 빈 시험지에 네 이름을 써야 하니까 말이야. 모두들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깐 말이야. 그때 너는 눈을 떠. 새벽 4시가 되었거든. 그래 너는 새벽 4시에 일어난 거야. 그 순간에는 너는 그걸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서히 알게 되지. 주위에 어둠이 남아 있으니까. 그대로 아무도 없으니까. 들리는 건 여전히 네 숨소리 뿐이니까."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네가 나를 이해하는 방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