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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Aug 23. 2019

프리랜서


내가 프리랜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순전히 토마스 장 때문이다. 그는 포틀랜드 공항에서 입국 심사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웃을 때와 정색을 했을 때 그의 눈꼬리의 위치가 심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인물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자초지종을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사건의 정황을 에둘러 설명하려 하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여 핵심을 찌르는 얘기만 나눠야 한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왜 내가 그토록 오래도록 증오했던 내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프리랜서가 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11년째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세요 라고 물으면 나는 보통 과학자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대개의 경우 상대방은 흠칫 놀라며 이전보다 호의가 담긴 목소리로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군요 라고 말하곤 한다. 이럴 때면 나는 2-3초 정도 호탕하지는 않지만 유쾌하게 소리 내어 웃다가 저는 신경생물학자예요 파킨슨병에 관련한 연구를 하지요 라고 대답한다. 만약 상대방이 포틀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럼 선생님은 '오레곤 보건과학 대학'에서 연구하시는 박사님이신 게 분명하군요 라며 존경을 품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나의 어깨를 기분 좋게 손으로 쥐었다 놓을 테고, 나보다 어린 사람은 허리를 살짝 숙여 악수를 청할 것이므로 나는 그 동작들에 맞는 행동을 취하려고 준비한다. 그리고는 태연한 태도로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실상을 알고 나면 다른 일과 별반 다를 게 없지요 하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일련의 의식을 마무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날 토마스 장과 입국 심사대에서 나눈 대화는 이런 지극히 평범한 패턴의 대화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에서 토마스 장과 내가 감지한 뉘앙스는 방금 내가 설명한 대화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는 내 여권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국 밖에서 얼마나 체류했느냐 포틀랜드에 살고 있냐 와 같은 형식적인 질문을 던진 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그의 눈에는 여느 입국 심사관에게서나 느껴지는 약간의 권태로움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포틀랜드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가 물었을 때 나는 어제 외운 성경 구절을 암송하듯 '오레곤 보건과학 대학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순간 토마스 장의 동공이 확장되었다가 이내 그의 눈꼬리가 쳐지면서 마치 충견이 그 주인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는 듯한 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 내재된 직업의식으로 인해 이내 그는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감추었지만, 나는 짧은 찰나에 그의 눈에 드러난 분명한 변화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내 직업을 말하고 나서는 토마스 장은 내게 더 이상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포틀랜드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이게 그날 토마스 장이 내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와 짐 찾는 곳으로 향하면서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피로감을 느꼈다. 입국 심사가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입국 심사대 앞에서 긴장했었다. 모든 게 아무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입국 심사대에 설 때마다 긴장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입국 심사대는 그런 곳이다. 죄를 짓지 않고도 스스로를 죄인으로 잠시 착각할 수 있는 곳이다. 토마스 장이 내게 당신은 복도 끝에 있는 저 대기실로 가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나는 당장 한마디도 반박할 수가 없는 곳이 입국 심사대다. 그런 곳을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입국 심사대에 있어서 만큼은 나의 공포를 인정하는 것에 털끝만큼의 부끄러움이 없다.


내가 내 등 뒤에서 나는 한바탕의 소란을 듣게 된 건 짐 찾는 곳에 채 다다르지도 못한 때였다. 아시안 엑센트를 가진 남성의 권위적인 목소리가 입국 심사대에서 들렸고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토마스 장의 목소리였다. 고성을 내지를수록 그의 엑센트가 강해지는 바람에 정확히 뭐라 소리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셀프-임플로이드'라는 단어만큼은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었다. 토마스 장의 얼굴에 나타난 무표정은 멀리서 보니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것은 내가 오레곤 보건과학 대학의 과학자라고 대답했을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과 정반대에 있는 종류의 표정이었다. 토마스 장의 고함을 듣고 있는 사람은 중년 남성으로 보였는데 잠시 뭐라 항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몇 마디 중얼거리고 본인 옆 바닥에 놓인 짐 쪽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관찰할 수 있는 정황은 그것이 전부였지만 대략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셀프-임플로이드, 즉 자영업자는 결코 드문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포틀랜드 사람들 중 다수가 어떤 형태로든 프리랜서나 스몰 비즈니스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포틀랜드를 형성하는 어떠한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이 자영업자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몹시 동경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 탈권위, 도전의 가치를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매일 나를 속박하는 이 지긋지긋한 실험실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고상한 가치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장이 문제다. 과학자와 자영업자를 서로 다른 표정으로 대하는 토마스 장이 정말 문제다. 내가 만약 그날 입국 심사대에서 내 직업을 자영업자라고 얘기했다면 토마스 장은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그의 무표정한 눈빛을 나는 견딜 수 있었을까. 그다음 이어지는 그의 말들을 나는 다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이런 사고 실험을 하면 할수록 결론은 분명해진다. 나는 프리랜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토마스 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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