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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Aug 30. 2020

소소하고 쓸모없는 일에도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영화 <69세>를 보기 전, 격한 관심부터 가지며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으면서 나는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순간이 많아졌다. 몇 달 전 독서모임에서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 결론은 '여전히 소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당시 예를 든 것도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거리의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고 그런 별 것 아닌 얘기들을 친구와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였는데. 예수정 배우의 인터뷰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 게 재밌었다. 삶이 되게 별 거기도 하고 별 게 아니기도 하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했다. 그러고 보니 난 요즘 이 생각을 꽤 자주 한다.

요즘의 '60대'를 '노인'의 범주로 포함시키는 게 맞을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이나 산책도 하고, 정원도 고생스럽지만 아름답게 잘 가꾸어 나가고, 새로운 공부에의 도전이나 요리나 취미를 배우는 일에도 과감하고, 예쁜 공간에 가거나 여행 가는 일들을 즐기고, 친구나 이웃과 다정한 안부를 나누고, 사회적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퀘스쳔 마크를 띄울 줄 알고, 그러고도 에너지가 넘쳐 나와 잘 싸우기도(!) 하는 엄마를 보면, 60대는 노인으로 보기 힘들지 않나 싶다. 여전히 어떤 순간엔 청춘의 느낌이 묻어나는, 나이답지 않은 엄마를 보면 노인이나 할머니라는 단어가 매칭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노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내 부정적 인식이 크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했다. 그리고 내가 보고 겪은 60대가 너무 적다는 생각 또한 한다. 엄마, 그리고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할 때 만난 문숙 배우님 정도. 문숙 배우님 또한, 머리카락은 백발이었지만 여전히 삶에 열정적이고 배울 것 많은, 그저 '인생 선배'같은 느낌이었다.

내 인생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다양한 케이스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 때쯤 영화 <69세>의 홍보기사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몇 개의 기사를 읽어보니, 영화 <69세>는 노년 여성의 섹슈얼리티나 성폭력 문제를 이슈 삼아 홍보하고 있었지만, 그건 단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셀링포인트 중 하나고, 하나의 소재에 지나지 않을 거란 예상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도 컸던 것 같다. 주연배우 예수정 님의 이 인터뷰를 보니 역시나 예상대로인 것 같아 다행이다. 사회에서 너무도 소외되어왔던 '노년의 여성'으로서의 삶 그 자체, 그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들을 심도 있게 다뤄준 것 같아 더 기대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홍보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이 영화를 너무 보고 싶어서, 이런 쪽에 나보다 훨씬 관심 많은 애인에게 "이번 주에 (사람 더 없을만한 시간 대에) 보러 가자!"라고 했다가 (당시 기준으로) 아직 개봉 날짜가 한참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엔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급증해 영화관에 가는 일은 얼마 전보다 더 두려운 일이 되었다. IPTV나 왓챠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너무 힘들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듯하다. 방송 영화 쪽에서 일했던 시간이 짧지 않은 만큼, 이런 좋은(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는 극장에 가서 유료관객이 되어줘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크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인터뷰 중에 특히 좋았던 부분을 발췌해 남겨둔다. 예수정 배우의 열정이 느껴져서 좋았고, 영화 자체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서도 담담하게 느껴져 더 좋았다.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기까지 쉽지 않았을 이 작품을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 감독의 입봉작, 톱배우의 부재 등) 만든 제작사와 과감히 투자한 배급사, 감독, 배우, 스탭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빨리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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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은 '69세'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소재 부담은 없었고 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좋았다. 남들이 하던 이야기를 또 똑같이 하는 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로 받아들여졌다. 극 중 노인의 성폭행은 수백 개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작품은 노년의 여성이 젊은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주제가 아니라 소재다. 더 눈에 보이는 건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자기 삶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모습과 사회의 여러 가지 시선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재밌었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69세> 스틸컷


"햇살, 커피가 있다면 괴로움도 좋아" 예수정이 말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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