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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Dec 14. 2020

<미쓰백>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미쓰백> 첫 회를 우연히 보고, 눈물이 났다.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을 일해왔기에 방송엔터산업에 대해 많이 안다면 알고 있어, 나이가 들수록 특히 여성 아이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그들이 여전히 방송에서 소비되고 있는 방식 때문이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갑은 계약서에 명확히 언급되지 않은 억지 상황(특히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의)을  '본전을 뽑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적으로 시키고, 을은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받고 끝나게 되는 계약. 각자의 쓰임을 다한 이후, 수익적인 부분에서 플러스를 찍을 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을은 바로 퇴출되거나 계약 종료되는 세계.


상처 받고 그 세계에서의 삶이 종료된 이후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미쓰백> 1회에서 리얼에 가깝게 보여주자,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들의 삶도, 연예인이 아닌 여성의 삶도 그다지 다를 바 없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들이 지난 상처를 이겨내고 그 무엇도 아닌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내 자신에게도 같은 응원을 해주듯이.



소속사의 합의되지 않은 섹시컨셉이 오히려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가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가영


자유롭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할 때는 진심을 다해 자신감 넘치면서도 진지하게 임하는 나다


여러 히트곡들로 사랑받았지만, 그룹 활동을 마친 후 몇 년째 활발한 솔로 활동을 하지 못해 많은 갈증을 느끼는 레이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마음속 한켠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던 가수로서의 꿈을 지켜냈고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여준 소율


매번 참신하고 파격적인 무대 연출까지 기획해 가수 그 이상의 잠재력을 보여준 수빈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소속사에서 퇴출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가수로서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해왔던 세라


아직 어려서 사회경험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유진


"오르락내리락 해. 자꾸만 오빠땜에. 내 맘은 흔들흔들. 서 있을 수도 없어"


충분히 자신의 삶을,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보고 있자면 응원하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서사를 지닌 그들인데. 그런 그들에게 여전히 구시대적인 가사로 채워진 노래를 선사하다니. 이번 노래가 트로트 형식을 지닌 곡이기에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해도, 이전 경연곡들의 가사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주체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는 그들에게 좀 더 그들만의 스토리가 부여되고, 그들의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낼 수는 없었을까. 그들을 다시금 수동적인 존재로 가둬두고 그들의 존재를 그저 납작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며, 아쉬움이 남는 것을 넘어서 불편했다. 언제까지 그들을 그저, 남성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안달 난 여성들로만 표현해서 대상화하고 싶은 건지. 첫 회에서 그들의 안타까운 상황들과 꿈을 향한 열정들을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오픈해서 보여줬다면, 적어도 결과물에 영향이 미쳤어야 할 텐데. 시청자들도 그런 곡을 기다리는데.


다음 경연곡엔 그들의 서사가 녹아있을까 기대하며 보기를 벌써 몇 주째. 마지막 방송 전에, 그들을 조금 더 그들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곡을, 그로 인해 우리들이 조금 더 위로받고 희망을 품게 되는, 그런 곡들을 들어보게 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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