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안한 날이면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 진다. 외곽으로 빠져나가 초록초록한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보다, 시끄러운 자동차 엔진 소리와 차창을 열면 부딪히는 거친 바람소리와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의 재잘거림과 평소보다 조금 크게 틀어둔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속 소란은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지기 때문에.
그날은 걱정하고 있는 검진 결과를 받는 날이라, 어젯밤부터 이렇게 불안하고 답답했던 것인데. 새벽에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아래층에서 큰 음악을 틀어(놓은 것으로 추정) 소리보다 진동이 느껴졌다. 어제 종일 감기몸살처럼 아프다가 겨우 회복을 했는데 층간소음 덕분에 잠을 거의 못 잤더니 오늘은 수면부족으로 몸이 떨렸다. 그리고, 인스타 친구 중에 누군가의 팔로우를 취소했다. (내 인스타가 비공계 계정이라 내가 팔로우를 취소하면, 상대도 자동적으로? 동시에? 내 인스타그램 팔로우 취소가 된다) 내 사생활을 알리고 싶지 않은 누군가와 그분이 절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분이 올린 게시물에 실명까지 언급이 되어 있어서, 전혀 예상도 못했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인스타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참 신기하다는 생각도. 책, 공간, 영화 등등 나랑 취향이 너무 비슷하고, 어린 시절 활동반경도 같아서, 혹시 나중에 우연히 오프라인 친구가 된다면 나눌 얘기가 아주 많을 것 같은 친구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신경이 계속 쓰일 것 같아 미련 없이 팔로우 취소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좀 안 좋았다.
그런 상태로 검진 결과를 받으러 갔다. 늘 불친절한 접수 직원분은 오늘도 세상 불만을 모두 끌어안은 표정과 태도였다. 네거티브한 부분에서 지나치게 일관성이 있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게 된다. 항상 건조하게, 그러나 정확한 결과를 상세히 잘 설명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를 전해주셨다. 한동안은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챙겨 먹어서 잘 유지해야지, 이런 결심을 하며 병원을 나선다.
신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마라탕 집에 간다. 풍요로운 마음으로 재료를 담은 덕분에 가격을 보아하니 2인분은 족히 된다. 역시나 받아보니 거의 한 대접이 나왔다. 반도 못 먹고 나머지는 포장을 해온다.
커피집으로 가는 길, 도를 아십니까를 얘기할 것 같은 이들을 세명이나 마주쳤다. 거주지만 아닐 뿐 내 생의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온 홍대 일대에서는 내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다. 단, 애인과 걸을 때만 아무도 내게 길을 묻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거의 스킨십하느라 바빠서?ㅎㅎ 말을 걸 틈도 없을 것이다. 나 혼자 걸을 때나, 엄마랑 걸을 때는 하루에 2-3명씩은 만난다. 지도 어플도 잘 볼만한 젊은 사람들이 왜 그러지 싶은데, 휴대폰이 방전되었거나 좁은 골목에서는 지도를 봐도 헷갈리겠지 싶어서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다들 내가 홍대 일대를 잘 아는걸 어떻게 알까. 신기해. 내가 이방인 같아 보이지 않나 보다. 그 동네에서는 도를 아십니까를 한 번도 안 만났다. 근데 내 동네에서는 이렇게 잠깐 걷는데도 세명이나 만나다니 ㅋㅋ
좋아하는 커피집에 가서 두유로 교체한 아이스라떼도 마신다. 며칠간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니 너무 잘 읽힌다. 장류진의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고 그만큼 기대하는 작가. 역시나 재밌고 잘 읽힌다.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동안 이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아부었을까. 게다가 친한 선배마저 하나 네가 먼저 선점했어야 할 영역(직장 얘기를 자세하고도 경쾌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스타일의 소설)이라고까지 얘기하니. 좀처럼 남에게 부러움을 잘 느끼지 않는 내가, 요즘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장류진 작가는. 자꾸 후회하지 말자. 열심히, 그리고 내 나름대로 잘 살아왔는데. 그는 썼고 도전했고, 난 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만 너무 열심히 했다. 이건 너무 큰 차이다.
시간은 유한하고, 건강은 예전 같지 않고, 인생의 피크타임은 지난 것만 같은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었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는 대신 오늘을 충실하고 즐겁게 살아가자, 나답게.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4월의 어느 날 다 작성해두고 왜 발행을 안 했었을까. 이유가 있었겠지.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5월 끝자락에서야 뒤늦은 발행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