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상소견이 있어 조직검사까지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주 동안 나는 또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안한 상태가 유지됐다.
작년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때 쯤, 한쪽 가슴에 간헐적인 통증이 있었다. 그런 통증은 처음 느꼈기에 며칠 동안 경과를 지켜보다 바로 직장 근처 산부인과에 들렀다. 근처 모든 산부인과들의 예약이 어찌나 꽉 차 있는지 한 주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바로 검사받고 싶은 마음에 조금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종양이 발견되어 양성인지 악성인지 조직검사를 통해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악성종양임이 판정된다면 유방암...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안 좋은 상상은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려 봤다. 하지만 계속 최악의 경우만 그려졌다. 최악의 경우에 어찌 해야 하나, 여기저기 서칭을 해보며 지식이 쌓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래 차라리 최악을 생각하다가 괜찮은 결과를 받으면 안심하는 편이 낫겠다, 마음을 고쳐 먹었다.
유방암 조직검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의사로부터 사전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검사실로 들어갔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됐던 내게 실로 그 검사는 어마어마했다. (다시 받는 상상만 해도 병원을 못 갈 것 같다.) 30여 분동안 검사는 계속됐고, 바늘의 크기가 확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크고 긴 바늘이 가슴 여기저기를 끊임없이 찌르는 느낌이었다. 찌르르한 전기 자극같은 게 검사내내 느껴졌다. 정말 상상치 못한 정도의 고통이었다. 끝도 없는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드디어 조직검사가 끝난 뒤, 가슴에 멍이 들 수 있다며 의사 선생님께서는 압박붕대를 감아주셨다. 만 하루 동안은 하고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숨쉬기 어려울 지경으로 강한 압박이었다. 그러고 다음 날 출근해서 일도 했다. 지옥 같은 한 주의 시작이었다.
꼬박 하루가 지난 뒤, 압박붕대를 푸르고 한결 호흡하기가 수월해졌지만 가슴에는 바늘을 꽂았던 큰 구멍이 나 있었고 그 주변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며칠간 계속됐고 샤워할 때마다 거울을 통해 보는 내 가슴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큰 불안감이 매 순간 밀려왔다. 유방암이면 어쩌나... 나 아직 너무 젊은데. 만약 초기라면, 한 1년 여 동안 열심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니, 직장을 그만두고 본가로 가서 치료에만 전념해야 할까. 애인과도 헤어질까. 별 생각을 다 하면서 한 주를 보냈다.
한 주 뒤에 받은 결과는 다행히 악성이 아닌 양성 종양이었다. 6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며 추적 관리하라는 권고를 들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1년 만에 또 다른 곳의 조직검사를 받고 또 그렇게나 불안한 마음으로 한 주를 기다리게 되다니. 인생은 왜 이렇게 가혹한가 싶었다. 또 한 주간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지냈다. 암이 아니기만 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만 같은 얄팍한 마음마저 들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암이 아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과를 듣고 진료실을 나와서 바로 집으로 오다가, 진료비를 내지 않고 그냥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이렇게나 정신이 쏙 빠진 상태였음을 깨닫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걱정했던 가족과 애인에게 검사 결과를 전하고, 진료비를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짐을 벗어 마음이 너무도 가벼워졌고 잠이 쏟아졌다. 한밤 중이 아닌 저녁시간인데도 꽤 오랜 시간을 잤다.
환자가 되는 것과 환자가 되지 않는 것은 정말 한 끗 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낮에서 밤이 될 때의 경계가 없듯이. 계절이 흘러가듯이.
암이나 큰 병 진단을 선고처럼 받고, 치료를 하신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반복해서 기도했던 내용 중 하나도 이거였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저는 최악의 결과는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이번에 내가 얼마나 몸도 마음도 나약한 지 다시 한번 깨달았고, 운동으로 조금 더 강해지기로 결심해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은 안 좋은 신호를 보내올 때가 많고, 환자와 비환자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걷고 있는 우리들은 계속해서 위협받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