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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an 08. 2021

치과 가는 길 #1

"엇?"


애인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생선가시가 잇몸에 박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저녁은 좋아하는 단골집의 쭈꾸미볶음과 코다리구이. 너무 맛있어하며 먹고 있었는데. 밥은 거의 다 먹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 크고도 남은 성인임에도 생선을 잘 발라먹지 못해서 애인이 항상 다 발라주는데, 어쩌다 생선가시가 박힌 걸까.


아- 입을 크게 벌려 입 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생선가시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가느다란 가시가 치아 사이에 끼었나? 치실로 빼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물로 여러 번 헹구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아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체 뭐지.


아픈 느낌이 드는 치아에 치실을 더 여러 번 써봤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 한 귀퉁이가 깨졌다는 사실을.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게 예전에 금으로 인레이했던 모양을 따라 그대로, 아주 깔끔하게 깨져서, 육안으로는 확인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치과의사도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내 입 안을 보고 나서도 한 번에 찾지 못했고,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그제야 그 부분을 건드려보고 "어쩌면 상태가 심각할 수 있겠네요"라고 했다.)


몇 달 전부터 오른쪽으로 뜨거운 음식을 씹을 때 무척 아팠다. 그래서 바로 치과에 갔는데 엑스레이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이런 경우엔 아마도 실금이 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나는 십수 년 전에 인레이했던 치아라 그 안에 염증이 생겼거나 했을까 봐 염려되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딱딱한 것을 깨 먹는 습관을 버리고(몇 년 전까지 얼죽아였는데 늘 얼음을 깨 먹었다...) 오른쪽으로 많이 씹지 않으며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고작 한 두 달 만에 이렇게 치아가 깨진 것이다. 아마 그때도 파손이 시작된 상태였는데 본인도, 의사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급하게 다음 날 오전으로 치과 예약을 하고 밤새 인터넷으로 '깨진 어금니'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찾아봤다. 차라리 육안으로 확인되는, 귀퉁이가 조금 나갔거나 수평으로 갈라진 경우에는 그 부분만 메꾸거나 크라운을 씌우는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내 치아처럼 수직으로 깨진 경우에는 만약 뿌리 부분까지 깨졌으면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치아의 깨진 부분을 흔들어봤다. 윗부분만 나간 게 아니라 끝까지 다 나갔다. 뿌리까지 나갔을 확률이 매우 큰 것이다. 임플란트라니... 비용도 비쌀 것이지만, 나사못을 잇몸에 박는 그 과정과 몇 달 동안을 어금니가 빈 채로 살 것을 생각하면 아득해졌다. 얼마 전까지는 임플란트가 노년기에 많이 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최근에 내 주변에 (애인, 선배, 후배, 동료 등등) 임플란트 한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그 선입견은 사라지긴 했다. 그래서 내 나이에도 임플란트를 하는 게 흔하디 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도 너무 무서웠다. 제발 크라운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애인은 괜찮을 거라고 날 다독였다. 이미 임플란트를 해본 경험이 있는 그이기에, 혹시나 임플라트를 하게 되더라도 해보면 별 거 아니라고도 했다. 그래도 난 무서운 마음에 불안감을 한참 표출하다가 그만뒀다. 생각해보니 그를 만난 이후 내가 다치거나 아픈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만난 첫 해에는 발가락을 다쳐서 깁스를 하고 다녔고, 유방암일까 노심초사하며 조직검사를 했으며,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서 얼굴도 갈고 무릎뼈도 심하게 다쳤다. 그리고 작년에는 천식과 이석증을 앓았으며, 또 다른 조직검사를 하기도 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다치고 아팠으나 결론은 다 괜찮아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별 일 아닐 것, 이라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봤다. 애인은 날 만나고 아픈 적이 없었는데 난 너무 자주 아파서, 그게 큰 병이 아니었더라도 피로감을 느낄 것 같았다. 누구라도 간병인의 입장에 있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 테니.


다음 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치과에 갔다.




치과 가는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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