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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Dec 06. 2020

지하철에서 쓰러질 뻔 한 적 있나요

멀미와 공황장애 사이

2년 전 겨울 이야기



상쾌한 아침이었다. 페북이나 인스타를 켜고 '깜깜한데 포근하다'라고 쓰고픈 출근길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인데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진짜 많긴 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그랬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 생각하며 20여분 쯤 기다려 지하철을 탔다. 팀장회의가 있는 월요일이라 매우 일찍 집을 나섰으니 이 정도 기다려도 사무실에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 열 정거장도 가지 않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지하철 열 정거장이 보통의 출근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몇 년 전, 괜찮은 아파트를 찾아 서울을 벗어난 나는, 지하철 30여개의 역을 거쳐 출근해야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시 서울로 이사해야겠다고 후회하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꼭 맘에 드는 집을 찾는 일,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행정절차와 비용... 이사는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사람 많은 지하철을 오래타면 멀미가 일곤 했는데 요즘은 꽤 괜찮아진 것 같아 방심하고 있던 터였다. 체온이 높지 않으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겨우겨우 목도리와 외투를 벗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철산역에 내렸다, 가디역에 내렸다, 남구로역에 내렸다를 반복하며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시도해보다 의자에 앉아서 숨을 고르다, 겨우겨우 대림역(출근길 환승역)에 내렸을 땐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이러다 마지막 필름이 끊기면서 쓰러지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의 느낌이었다.

처음엔 회의만 참석하고 연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대림역에 내렸을 땐 눈 앞이 하얘지고 쓰러지겠다는 극심한 공포심을 느껴서 119에 전화를 해야하나 망설였다. 우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에 보고를 드리고, 119를 부를까 다시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있어보기로 했다. 사실 나의 119 트라우마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심장마비가 왔던 우리 아빠를 구해주지 못했다는 원망, 수차례 전화를 했음에도 1시간여가량 출동하지 않아 아빠의 골든타임을 놓쳤기에 그에서 오는 불신, 그리고 그 들 것에 실려가는 나를 상상해보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또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알았기에 그들의 도움없이 나혼자 병원에 가고 싶었다. 제발 조금은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언젠가 광고기획사 후배가 출근길에 삼성역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바쁜 출근길이라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고, 한참 뒤에 다행히 혼자 깨어나서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때 상상했던 공포심보다 더 큰 공포가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누군가가 나를 부축해주신 덕분에 대림역 출구근처까지 왔다. 환승역으로 출근길마다 거쳐가지만 출구로 나와보기는 처음이었고, 그야말로 낯선 동네였다. 그 앞에서도 한참을 앉아있다 지도앱에서 해당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찾았다. 9시부터 진료시작이지만 다행히 그 전에 오픈을 했고, 생각보다 큰 규모의 병원이었다. 진료받고 심전도검사 등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수액을 맞으며 잤다. 베드에 누운 상태에서 바로 보이는 창가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어, 깨어날 때쯤 보니 주변에 (동네의 특성 덕분인지) 앓고 계신 어르신분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푹 잘잤다. 진짜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에 잘 가지도 않고 집에서 약먹고 쉬는 걸로 대체하는 난데, 오늘은 병원에 한 4시간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타니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의사가 겨울동안 이런 느낌이 계속될 수 있으니 유의를 당부했는데 대체 어째야하는 것인지. 출퇴근마다 이러면 어쩌지. 발목 수술 후 우리집에 머물고 계셨던 엄마는 퇴근시간이 아닌 때에 나타난 딸을 보고 깜짝 놀라셨고, 안심시키느라 한참을 보냈다. 요즘 자기 간호하느라 딸이 심신이 쇠약해진 것일까봐 자책을 하시는데, 아니라고 말씀드리며 부러 더 괜찮은 척을 했다. 정말 엄마때문이 아니기도 하니까. 요즘 엄마가 아니면 내가 얼마나 더 견디기 힘들텐데, 얼마나 고마운데.

휴우. 이렇게 아프고나니 하루가 다 갔네. 허무해라. 건강합시다 우리 모두.



당시의 나는 그저 멀미였을까. 아니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부터 온 공황장애의 일종이었을까.


그 이후로도 (특히 겨울에는 더더욱), 지하철에서 쓰러져 119 구급대원들에 실려가는 사람들을 여럿 목격했다. 그러느라 10분 이상 지하철이 정차해서 지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나도 언젠가 저런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될까봐 두려울 뿐.


당시에도 무엇으로도 진단받지 못했고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도 1) 지하철을 오래 타거나 2) 사람이 많거나 3) 안좋은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으면 멀미가 시작된다. 물론 저 당시처럼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은 없지만, 세 가지 조건 중 한두가지만 충족하면 멀미지만 세 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할 땐 또 쓰러질 정도의 컨디션이 될까봐 걱정된다. 게다가 요즘은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오랜 시간동안 호흡이 원활하지도 않으니까.


걱정에 머물지 말고 더 신경써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도록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자. 건강 걱정의 끝엔 늘 뻔하지만 기본인 이 세가지 결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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