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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Oct 03. 2020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떡볶이>를 읽으며 어느 떡볶이집을 떠올리다

<아무튼, 떡볶이>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요조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예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맥주가 당기곤 했다. 그의 책을 읽고 도저히 못 참겠는 기분으로 캔맥주를 쩍, 하고 딸 때마다 이것이야말로 참 착실한 리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에게 있어 이 책의 최고의 리뷰는 이 책을 읽고 난 당신의 바로 다음 끼니가 떡볶이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최고의 리뷰어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실제로 3일 연속 떡볶이를 먹기도 했고, 책 속에 언급된 떡볶이집 중 서울 이외의 지역인 몇 군데를 빼곤 모두 내 단골집이기도 한 곳이어서 굉장히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고, 이렇게 브런치에 떡볶이 관련 글도 쓰고 싶어 졌으니까. <아무튼, 떡볶이 2>가 나온다면 (그리고 내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내가 그 책을 쓰고 싶을 정도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꽤 유명한 어떤 분이 떡볶이에 관한 글을 썼다. 그분이 요조도 인정한 떡볶이집이라고 했는지, 그 글의 댓글에 요조가 나타나 그 집을 언급했는지 기억이 정확치가 않다. 암튼 그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그 글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 그 떡볶이집을. (+댓글의 정보를 확인한 후 판단하여, 원글에 쓰여 있던 상호명은 삭제하였습니다.)


남자친구의 집은 연남동이다. 그리고 둘 다 걷기를 좋아한다. 날 좋은 날,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서 그 떡볶이집까지 가서 떡볶이를 먹고 다시 걸어오면 소화도 되고 좋을 것 같았다. 그게, 남자친구가 내게 헤어짐을 고한 다음날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 곳에 가기 전 날, 남자친구는 내게 헤어지자고 얘기했다. 그 당시 우리는 자주 다퉜고 (특히 내가) 애인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즐거움보다 괴로움에 더 큰 부등호가 그려졌던 때. 남자친구는 서로 더 감정이 바닥나기 전에 헤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이었고, 나는 아직 감정이 많이 남아있어 헤어지기 힘드니 어떻게든 더 노력해보겠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우리는 한 달 동안 유예기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하지만 연인 사이에 유예기간을 갖는다는 건 종착역이 결국 이별이라는 얘기였고, 한 달 동안 얼마나 극적인 사건이 벌어져야 하고 서로가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 이 판이 뒤집힐지 난 잘 알지 못했다. 결국 헤어지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결국 한달은 커녕 며칠 뒤에 진짜로 헤어질 때까지 그 며칠 동안, 더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내가 더 많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그 곳에 갔다.


"산책 갈까?"라는 남자친구의 제안에 그럼 마침 가보고 싶었던 떡볶이집도 그 쪽이니까 겸사겸사 가보자고 한 것이었다. 코로나 초반이라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써야만 하나 안 써도 되려나 불안할 때였고, 아직 완연한 봄이 오지 않아 몸도 추웠고, 헤어지자는 얘기가 오고 간 다음 날이라 마음도 추웠다. 산책 삼아 가보자 싶었는데 그러기엔 꽤 먼 거리여서 한참을 걸었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도로가와 큰 건물 사이를 걷느라 전혀 산책 느낌이 나지도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갔다. 지도 어플을 켜고 도착한 그곳에서, 여기가 맞나 잠시 서성였다. 1층이지만 약간 반지하 같고, 언뜻 봤다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


심지어 대표 메뉴들을 써놓은 건물 바깥 창문에 떡볶이는 없다. 모두들 그 곳의 메인 메뉴가 떡볶이인 걸 알고 온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계신 듯이. 그 곳에 가서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을까? 갑자기 너무 궁금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떡볶이 2인분을 주문했다. 조금 젊고, 풍채가 있는 주인 할머니는 둘이 왔냐고 물으시더니, 건조한 표정으로 2인분은 많을 거라고 하셨다. 조금 매울 거라는 얘기도 덧붙이셨다.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1인분만 시켜도 되는 걸까, 민망함을 담은 눈빛을 서로 주고받다가, 사장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니 어쩌겠어 체념하고 1인분을 시켰다. 그 사이에 포장을 하러 온 손님들도 꽤 있었고, 사장님께서는 새로운 판에 떡볶이를 만들고 계셔서, 우리는 주문을 하고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사장님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양이 많다는 얘기와 맵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해주셨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사이가 좀 서먹해서인 것도 있었겠지만 주인 할머니의 엄청난 포스에 눌려 아주 가끔씩만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었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만난 떡볶이. 테이블도, 접시도, 포크도, 떡볶이의 모습마저도 레트로 했다. 떡볶이의 재료는 밀떡, 납작 어묵, 대파뿐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깔끔했고, 맛있게 매웠다. 요리는 잘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후추 맛이 많이 나는 것, 그것도 좋았다.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남자친구도 썩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평소 양이 많은 편은 아닌데,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만큼은 정말 (내 가까운 이들을 놀라게 할 만큼) 많이 먹는다. 떡볶이도 내게는 그런 음식이라, 1인분을 추가로 시켜먹고 싶었다. 하지만, 뭔가 가게에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과 그 당시 남자친구와 아주 편하지는 않았기에 더 먹자는 말을 편하게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남자친구네 집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너무 맛있으니 좀 포장해가서 친구들과 같이 먹으면 어떻겠냐고도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얘기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우리의 분위기는 확실히 평소보다 무거웠으니까. (그 당시에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시 상기해도 나답지 않게 눈치를 진짜 많이 봤네 흑흑... 그 와중에도 체하기는 커녕 떡볶이는 그렇게나 맛있었구나 하하...)


쫑알쫑알 맛있다고 얘기하면서 계란 두 개를 추가하는 날 보며, 그 무뚝뚝한 표정의 주인 할머니께서 아주 찰나의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 순간, 왜 그의 꿈 많고 젊었던 청춘시절이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찰나의 표정을 보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약간 뻐근한 것도 같았다.




요 며칠 느끼한 명절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매콤하고 강렬한 맛의 그 곳 떡볶이가 너무도 먹고 싶다. 한동안의 방황 끝에 다시 만나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는 애인과 조만간 다시 방문해야겠다. 이번엔 주인 할머니께 씩씩하게 인사도 드리고, 자리에 앉아서 맘껏 쫑알쫑알 떠들어야지. 그리고 지난 번처럼 적당히 먹기보다는, 배가 터지도록 많이 먹을테야. 미리 밀폐용기도 챙겨가서 포장도 해와야지. (애인아, 잘 읽고 있니!ㅎㅎ)


오늘은 우선, 양배추가 잔뜩 들어가 자연스럽게 달큰한 엄마표 떡볶이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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