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떡집
내 애인은 꽤나 스마트한 편이다. 남들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학창 시절 성적이나 학벌로도 그렇고, 자신의 전문 분야로 그럭저럭 잘 먹고사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내용을 접했을 때 빠르고 정확하게 소화해서 내게 얘기해주는 걸 봐도, 생활 속 스치듯 하는 행동들에서의 간결함도, 그가 똑똑함을 문득문득 그렇지만 꽤 자주 느끼게 해 준다.
그런 그가 가끔 쓸데없는 말을 할 때, 난 그게 너무 귀엽다. 이를테면.
어느 주말 나는 즉석떡볶이가 엄청 먹고 싶었고, 평소 눈여겨봤던 즉떡집에 갔다. 들어가 보니 즉떡집이라기보다는 넓고 깔끔하고 카페 같은 분위기라 더 맘에 들었다. 떡볶이도, 밑반찬도 무척 맛있었다. 햇살이 드리운 창가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중간에 서빙하는 분의 태도가 불친절해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좋았던 분위기에서 생긴 에너지를 컴플레인하는데 쓰고 싶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겼다.
그리고 저녁에 블로그에 맛집 포스팅을 간단히 마치고 다른 리뷰들도 살펴봤다. 근데 이게 웬일? 즉떡을 다 먹은 뒤 나왔어야 하는(세트에 포함된) 후식이 나오지도 않은 것이다. 거기는 그 후식이 메인이라는데! 메뉴판에 쓰여 있었는데 나도 (당연히 애인도) 놓쳤고, 서빙하는 분도 주지 않은 걸 잊었던 것이다. 해당 음식을 다 받지도 않은 채 모든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니. 맹추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나빴다. 이게 뭐라고. 그치만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꽤나 여러 번이었다. 불친절했던 직원도 계속 떠올랐다. 이런 걸 난 왜 참는 걸까. 정당하게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건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는 버릇이 내재화되어버려서, 바보 같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기분이 별로인 채로 계속 다른 일들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뭐야... 즉떡에 계란이 없었어!!" 앞서 내가 기분 나쁜 건 모르고 단지 이 얘기만 들은 애인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와, 난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리 애인 진짜 꼼꼼하다"
그 순간 나는 애인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직까지도) 말은 안 했지만 자기야. 우리 후식도, 계란도, 제대로 된 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돈 다 지불하고 나왔어. 이렇게나 허당인데 뭘 꼼꼼해 ㅋㅋㅋㅋ (놀랍게도 업무 할 때만 꼼꼼하다. 실생활은 대부분 이런 지경 ㅋㅋㅋㅋㅋ)
이렇게 허당인 나에게 꼼꼼하다고 칭찬해주는 애인이, 이렇게나 별 거 아닌 포인트에 놀라워하는 애인이, 그렇게나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과일집
애인의 동네 어느 골목에 조금 규모가 있는 과일집이 생겼다고 한다. 애인이 왠지 조금 들뜬 목소리로 그 얘길 했다.
그 당시엔 별생각 없이 듣고 별다른 반응도 안 했다.
근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생각이 난다. 앞으로 여기 같이 와서 과일 사자는 얘기였을까? 그동안 애인 집 가까이에 있는 두 곳의 마트 모두 과일이 신선하지 못하거나, 종류가 다양하지 않거나, 내가 좋아하는 딸기는 빨리 품절되거나, 그래서 과일에 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걸까? 다음에 여기에서 과일을 좀 사가 볼까?
아니 나도 참 나지. 애인의 그 별 거 없는 한마디에 뭐 이리 별별 생각들을 다 하고 있는 거야 ㅋㅋㅋ 나 애인을 진짜 많이 사랑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