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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r 12. 2021

애인의 쓸데없는 말

#즉떡집


내 애인은 꽤나 스마트한 편이다. 남들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학창 시절 성적이나 학벌로도 그렇고, 자신의 전문 분야로 그럭저럭 잘 먹고사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내용을 접했을 때 빠르고 정확하게 소화해서 내게 얘기해주는 걸 봐도, 생활 속 스치듯 하는 행동들에서의 간결함도, 그가 똑똑함을 문득문득 그렇지만 꽤 자주 느끼게 해 준다.


그런 그가 가끔 쓸데없는 말을 할 때, 난 그게 너무 귀엽다. 이를테면.


어느 주말 나는 즉석떡볶이가 엄청 먹고 싶었고, 평소 눈여겨봤던 즉떡집에 갔다. 들어가 보니 즉떡집이라기보다는 넓고 깔끔하고 카페 같은 분위기라  맘에 들었다. 떡볶이도, 밑반찬도 무척 맛있었다. 햇살이 드리운 창가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중간에 서빙하는 분의 태도가 불친절해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좋았던 분위기에서 생긴 에너지를 컴플레인하는데 쓰고 싶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다는  넘겼다.


그리고 저녁에 블로그에 맛집 포스팅을 간단히 마치고 다른 리뷰들도 살펴봤다. 근데 이게 웬일? 즉떡을 다 먹은 뒤 나왔어야 하는(세트에 포함된) 후식이 나오지도 않은 것이다. 거기는 그 후식이 메인이라는데! 메뉴판에 쓰여 있었는데 나도 (당연히 애인도) 놓쳤고, 서빙하는 분도 주지 않은 걸 잊었던 것이다. 해당 음식을 다 받지도 않은 채 모든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니. 맹추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나빴다. 이게 뭐라고. 그치만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꽤나 여러 번이었다. 불친절했던 직원도 계속 떠올랐다. 이런 걸 난 왜 참는 걸까. 정당하게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건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는 버릇이 내재화되어버려서, 바보 같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기분이 별로인 채로 계속 다른 일들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뭐야... 즉떡에 계란이 없었어!!" 앞서 내가 기분 나쁜 건 모르고 단지 이 얘기만 들은 애인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와, 난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리 애인 진짜 꼼꼼하다"


그 순간 나는 애인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직까지도) 말은 안 했지만 자기야. 우리 후식도, 계란도, 제대로 된 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돈 다 지불하고 나왔어. 이렇게나 허당인데 뭘 꼼꼼해 ㅋㅋㅋㅋ (놀랍게도 업무 할 때만 꼼꼼하다. 실생활은 대부분 이런 지경 ㅋㅋㅋㅋㅋ)


이렇게 허당인 나에게 꼼꼼하다고 칭찬해주는 애인이, 이렇게나 별 거 아닌 포인트에 놀라워하는 애인이, 그렇게나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과일집


애인의 동네 어느 골목에 조금 규모가 있는 과일집이 생겼다고 한다. 애인이 왠지 조금 들뜬 목소리로 그 얘길 했다.


그 당시엔 별생각 없이 듣고 별다른 반응도 안 했다.


근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생각이 난다. 앞으로 여기 같이 와서 과일 사자는 얘기였을까? 그동안 애인 집 가까이에 있는 두 곳의 마트 모두 과일이 신선하지 못하거나, 종류가 다양하지 않거나, 내가 좋아하는 딸기는 빨리 품절되거나, 그래서 과일에 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걸까? 다음에 여기에서 과일을 좀 사가 볼까?


아니 나도 참 나지. 애인의 그 별 거 없는 한마디에 뭐 이리 별별 생각들을 다 하고 있는 거야 ㅋㅋㅋ 나 애인을 진짜 많이 사랑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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