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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Jan 06. 2025

동화 속에서 살고 싶었던 어른아이 루드비히 2세

유럽 렌터카 여행기 28 - 11일 차 11월 8일 ②

https://maps.app.goo.gl/4qyKEGdEuikCJbGq6

출처 : https://www.neuschwanstein.de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69년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가 착공하여 17년 동안 건설하였지만 완전히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현재 상태로 남게 되었다. 정력적으로 성의 건축에 매진했었던 왕도 성에서 3개월 정도만 생활하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완성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성인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고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된 이 성은 성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주변 알프스의 절경과 함께 어우러졌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더 보이는 법이다. 까이에 초콜릿 박물관 이후로 두 번째로 만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얼마나 반갑던지. 성은 투어 시간마다 제한된 인원이 순차적으로 들어가서 각자의 언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함께 이동하여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많은 인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성을 보존하는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부는 절대 사진 및 영상 촬영금지이기 때문에 안내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 성을 짓기 시작한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는 1845년 뮌헨의 님펜부르크 성에서 태어나서 1864년부터 1886년까지 바이에른의 왕이었고 1886년 의문에 가득 찬 죽음으로 생을 마쳤다. 1864년 어린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루드비히 2세는 인생이나 정치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스스로 '나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으며 너무 일찍 왕이 되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1866년에 루드비히 2세는 '독일 전쟁'에서 프로이센에 대패하였으며 그 이후로 바이에른은 프로이센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이에른의 왕이었지만 더 이상 루드비히 2세는 군 통수권 및 모든 재량권을 잃고 주권자가 아니게 되었다. 이후 1867년, 그는 자신만의 왕국을 계획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그는 진정한 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동화 속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문화적 소양이 풍부했던 왕에게 바그너와 그의 작품은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노이슈반슈타인 성에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로엔그린, 탄호이저를 모델로 한 그림이 많이 남아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왕은 바그너의 작품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이 오페라 속의 전설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며 자신을 로엔그린의 백조의 기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안에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돌로 인공동굴을 만들고 백조모양의 조각품이나 도자기를 배치해 놓았으며 곳곳에 백조의 문양을 그려 넣고 문손잡이에 까지 백조를 새겨 넣었다. '바이에른의 광인왕'이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출처 : Bayerische Schlösserverwaltung


  전쟁의 패배와 바그너에 대한 지나친 총애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을 건축하고자 하는 집착으로 바이에른의 재정을 파탄에 빠트린 왕은 신하들에 의해 강제퇴위를 당했으며 3일 후 자신을 정신병자라 진단 내린 박사와 함께 호숫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성을 돌아보다 보면 동화 속에서 살고 싶어 했던 어른아이 루드비히 2세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 속 영웅들로 벽을 가득 채우고 본인을 그 영웅과 동일시하며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왕으로 규정하고 살고자 하였다. 키가 190cm에 달하는 이 장신의 미남은 왕이 아닌 다른 운명을 타고났더라면 어땠을까. 



  성의 관람을 마치고 마리엔 다리(https://maps.app.goo.gl/hKyGhT4WfaVtvJBw5)로 걸어갔다. 여우가 시집을 가는 날인지, 호랑이가 장가를 가는 날인지 오락가락한 날씨 속에 무지개가 살짝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다리 위에서 성을 잠시 바라보다 얼른 내려왔다. 역시 나는 사람이 많은 건 별로다. 가족들도 모두 지친 것 같아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어떤 외국인이 경복궁의 입장료가 3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며 놀라는 숏츠를 본 적이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다른 특별한 산업 없이 오로지 관광만으로 경제를 유지하는 도시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는 관광산업이 경제의 생명줄로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나라 전체의 경제가 휘청거리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유럽인들이 과잉 관광에 대해 불평을 하지만 사실 관광객이 없다면 수많은 일자리와 수입이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많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위치적 특성과 문화적 거리감 때문에 유럽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보존하고 효과적으로 선전하여 관광산업이 발전하면 좋겠다. 경복궁 입장료도 좀 올려 받고 말이다. ㅎㅎ


출처 : https://www.neuschwanste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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