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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Jan 03. 2025

투덜대는 인종차별주의자 마부와 행복한 말들

유럽 렌터카 여행기 27 - 11일 차 11월 8일 ①

  루체른에서 리히텐슈타인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넘어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사고가 있었는지 길이 엄청 밀렸다. 오스트리아는 비넷(https://brunch.co.kr/@pfminji/21 참조)을 사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잠시 지나가더라도 비넷이 필요한 도로인지 아닌지 미리 찾아봐야 한다.


A. A1 Westautobahn (Walserberg에서 Salzburg-Nord까지의 국경)

B. Land Salzburg A12 Inntal 아우토반 (Kiefersfelden에서 Kufstein-Süd까지 국경)

C. Tyrol Hörbranz와 Hohenems 사이의 A14, 남쪽에서 오는 Vorarlberg, Hohenems와 Diepoldsau의 23번 분기점

D. Oberösterreich의 Linzer 아우토반 A26(현재 건설 중이며 A7과 통행이 연결된 이후에는 통행료 부과)


  이 이외의 구간을 운전한다면 오스트리아 비넷을 구매해야 하며 스위스처럼 1년권만 파는 것이 아니라 1일, 10일, 2개월, 1년 단위로 구매가 가능하니 본인의 여행 일정에 맞춰 구입하길 바란다. 나는 C. 에 해당하는 A14 고속도로를 타고 왔는데 밀리는 구간이 시작되니 차들이 구급차량이나 사고수습차량이 없는데도 알아서 가운데를 비우고 양쪽으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운전할 때는 주변 차들을 잘 관찰하고 따라 하면 된다고 해서 나도 같이 오른쪽으로 붙어서 혹시 모를 구급차량의 신속한 운행을 위해 가운데를 비워두었다. 정말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힘든 운전을 하고 깜깜한 밤에 독일의 알고이 Allgäu 지방의 메이어회펜 Maierhöfen에 도착했다. 알고이의 어원은 고대 독일어의 'alb'와 중세 독일어 'goeu'로 물과 초원이 풍부한 전원 풍경이라는 뜻이다. 도착했을 때는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어서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따뜻한 호스트의 환대와 더불어 작은 벽난로가 있는 소박한 에어비앤비는 힘든 여정을 잊고 푹 잠들 수 있는 집이 되어주었다.



https://www.airbnb.co.kr/rooms/980176536117050061



  다음날 아침을 먹고 밖을 나와보니 물과 초원이 풍부한 전원풍경이라는 뜻에 걸맞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넓은 초원이 밤사이 이슬을 맞아 촉촉이 젖어있었고 오래된 나무에는 그네가 매달려 있고 사과나무 아래에는 나중에 주스를 만들려고 모아둔 못난이 사과들이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아침운동으로 승마를 하고 돌아오는 멋진 여성을 만나기도 하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말갈기와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 그리고 승마부츠와 모자를 쓴 우아한 자태란!! 이 숙소에 하루만 머물기엔 아쉬웠지만 오늘은 퓌센 Füssen에 들러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되어 유명해진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 Schloss Neuschwanstein'을 보고 뮌헨으로 이동할 것이다. 사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퓌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엔슈방가우 Hohenschwangau에 위치해 있다. 도시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서였을까? 편의상 그냥 퓌센에 있는 백조의 성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 성은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온라인 티켓 예약 센터 https://shop.ticket-center-hohenschwangau.de/Shop/Index/de/39901



  보고 싶은 성, 원하는 날짜, 시간, 인원, 오디오 가이드 언어를 선택해서 미리 티켓을 구매할 수 있고 만약 노이슈반슈타인 성 외에 독일 바이에른주의 다른 성을 한, 두 개 라도 더 볼 생각이 있다면 2주간 사용할 수 있는 Mehrtagesticket(여러 날 티켓)을 구매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우리는 이후에 뮌헨에 가서 레지덴츠와 님펜부르크성도 볼 계획이었기에 이 멀티데이티켓을 현장에서 구입하고 노이슈반슈타인 성 투어를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했다. 온라인으로는 날짜, 시간, 인원을 선택하여 1인당 2.50유로를 내고 예약을 할 수 있고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아래와 같이 한 사람당 하나씩 QR코드를 보내준다. 입장 시 꼭 필요하니 미리 다운로드하여 준비해 두도록 하자.

1. 예약 QR코드 2. 예약 확인 이메일에 첨부된 약도

  과연 유명한 관광지답게 단체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하나둘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1번 주차장(https://maps.app.goo.gl/NmGJF9xVoPmKeKdW6)에 주차를 한 뒤 티켓센터로 가서 멀티데이티켓 패밀리용을 구입한 뒤 성으로 올라갈 방법을 고민했다. 빨간색 루트를 따라 걸어갈 수도 있고 갈색점으로 표시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셔틀버스를 타도 되는데 티켓센터의 직원은 시간이 아직 넉넉하니 그냥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해 줬다.

시간을 꼭 지키세요!

  이곳은 시간을 엄수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가끔 후기를 찾아보면 너무 촉박하게 왔다가 예약한 투어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절대 환불 불가이기 때문에 예약확인 이메일에는 호엔슈방가우 마을에 적어도 1시간 30분~2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고 성에는 10~15분 전까지, 성의 안뜰에는 5분 전까지 도착하라는 안내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날이 흐렸지만 많이 춥지는 않아서 직원분의 안내처럼 슬슬 걸어가면 되겠다 생각하였으나 아이들의 눈에 마차가 들어오고야 말았다. 아침에 우아한 여성 기수를 봐서 그런가. 아이들은 마차를 타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고 평소에는 아이들이 졸라도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딱 끊어내는 편이었는데 이제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나의 마음도 해이해졌는지 마차를 타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오케이를 해주고야 말았다. 마차는 편도에 8유로였는데 총 4인이니 32유로 거의 5만 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아이고, 아까워라!!! 마차는 옆에서 볼 때나 근사했지 실제 탈 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 재미있으라고 인종차별이 심한 마부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해서 앞에 아이들을 앉혔는데 말의 엉덩이만 보았을 뿐... ㅎㅎ

  마부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불친절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했다. 마차 안의 인원중 우리만 유일하게 동양인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독일인이었다. 마차의 앞자리가 비어있어 내가 독일어로 아이들이 앞에 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조금 놀라더니 아주 쌀쌀맞게 앞자리는 춥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로 인해서 좁게 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종종 발생해서 독일에 대한 인상이 너무 안 좋아졌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유학한 나라이고 내가 사랑하는 나라인데. 우리에게 정말 불친절하고 사람이 있어도 본체만체 무시하다가 내가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놀라거나 멋쩍어하면서 태도를 바꾸는 일이 너무 많았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독일인들과는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서비스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해서 실망이었다. 이래서는 관광으로 돈 벌기는 틀렸다, 너네들! ---


  처음에는 마부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돼서 다시 되물었지만 똑같은 대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앞 좌석이 넓으니 작은 아이들이 뒤에 타고 어른이 앞에 타야 한다는 얘기인가 보다. 정 자리가 좁을 것 같으면 뒷좌석에 인원을 적게 태우면 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앞에 앉지 못하면 우리가 타지 않는다고 할까 봐 그렇게 하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앞에 태워주지 않으면 안 탈 거예요'라고 진상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이들이 앞에 탈 수 있는지 마부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오케이를 했다. 내가 내 기분을 풀려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아이들 기억에 오래 남을 거예요." 웃으며 말했는데도 가는 내내 뒷사람들에게 미안해하라는 둥, 너희 때문에 모두가 고생한다는 둥 계속 투덜대며 말을 했다.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앞 좌석용 담요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먼저 내리고 내가 내릴 차례가 되니 본인이 잘 접어서 나에게 건넸으니 나도 똑같이 잘 접어서 자신에게 건네라고 하는 것이다!! 아, 정말 Scheiße!! 독일어로 욕을 한 바가지 날려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나는 교양인이니까. 똑같은 사람이 없지.


  마차승차체험에서 그래도 좋았던 점은 말들이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털이 윤기가 나고 체구가 건장했으며 고삐도 헐거워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열두어 명을 태운 마차는 사실 말의 힘으로 가는 게 아니었단 것이다. 물론 말도 힘을 쓰지만 타고 보니 전기 모터가 달린 전기마차였다. 생각보다 길이 가팔라서 말의 힘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른다는 건 불가능했을 것 같다.


  잠시 곁다리로 빠지자면 나는 충북국제교육원에서 원어민 선생님들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데 그중 아일랜드 출신의 크리스티나 선생님이 어렸을 때부터 말과 함께 자라고 대학도 말 관련학과를 나와서 평생 말과 함께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인생이 달라져서 한국, 거기서도 충청북도의 진천이라는 곳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는데 나는 말이 지능이 높고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니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자신이 얘기 나눴던 그 어떤 한국인보다 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아마도 대부분 경마공원 얘기를 했을 것 같다. ^^;; 나중에 여행 다녀와서 선생님에게 이 말들의 사진을 보여주니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행복한 말들이라고 얘기해 줬다.


  그리고 '호스 테라피 Horse Therapy'라고 말을 사용하여 장애가 있는 어르신이나 아이들의 재활을 돕는 치료도 있다. 이건 언젠가 운전하며 라디오에서 나와 알게 된 사실인데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말을 이용한 재활치료법이 있었다고 한다. 말을 타기 위해서는 온몸의 감각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이를 통해 좌우균형감과 리듬감, 집중력이 강화되며 예전에는 없었던 자기 통제력이 생기고 사회성이 향상된다고 한다. 또한 본래 말은 자기 등에 태운 사람과 끊임없이 교감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언어적인 치료방법으로도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고 타인과의 심리적 교류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고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생기는 중인 것 같다.


  앞으로 구르면서 봐도, 뒤로 구르면서 봐도 인종차별주의자가 분명했던 투덜대는 마부씨 때문에 기분이 매우 상하였지만 (사실 독일어 가능자는 나뿐이어서 나만 기분이 나빴다. 남편에게 나중에 설명하니 그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분명하다고 한 번 더 재청해 주었다.) 아이들이 행복해했고 더불어 말도 행복하고. 그거면 됐다 싶다.


  어쩌다 보니 곁다리가 너무 길어졌는데 다음 편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주인 루드비히 2세 이야기와 함께 돌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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