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장례업자 M
(전편에서 이어짐)
우리는 자리에 앉아 차를 주문했다. 차가 나올 때까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신상에 관한 가벼운 질문을 주고받다가 놀랍게도 서로 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같은 구에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다.
한동안 말없이 차를 마시다 이윽고 가방에서 한글 자음과 모음이 가득 담긴 종이 몇 장을 꺼냈다. 고작 A4용지에 인쇄된 것이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배우는 입장에서 보기 좋도록 나름 고민해 만든 자체 교재였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시작은 으레 그렇듯 ‘ㄱ’과 ‘ㅏ’의 결합부터. 이어서 ㄱ이 다른 모음들과 결합하면 어떤 발음이 되는지 알려주고 ㄴ으로 넘어갔다. ㄷ이후의 자음들은 ‘ㅏ’, ‘ㅐ’와 결합했을 때의 발음을 들려주는 정도로만 음가를 확인시켜주고, 다른 모음을 만나면 발음이 어떻게 날지는 ‘ㄱ’과 ‘ㄴ’에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먼저 생각해보게끔 했다. 그런 식으로 ㅎ까지 한 번 훑고 나서 내가 손가락으로 짚는 자음과 모음을 보고 결합해서 소리내보는 일종의 게임을 했다. 예를 들어 ‘ㅁ’과 ‘ㅜ’를 짚으면 ‘무’를 발음하기. M상은 보통의 일본인 학습자가 그렇듯 ‘ㅡ’와 ‘ㅜ’의 소리를 변별해내는 걸 조금 어려워했지만, 다른 건 짚으면 짚는 대로 척척 발음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두 음절까지 짚어보기로 했다. 의미와는 상관없이 소리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내 쪽에서 편하고자 단어 위주로 짚다가 몇 개는 슬쩍 뜻을 말해주기도 했다. ‘나’와 ‘무’를 발음하면, 그게 바로 ‘나무’(き, 木)라고. 지금 한국어로 말한 거라고. 그럴 때면 그는 “우와, 그렇구나!”하면서 마치 아이 같은 모습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첫인상과는 달리.
소리는 크게 내지 않았지만 이웃 테이블에서 안 쳐다볼 수가 없는지라 사실 신경이 쓰였다. 무엇보다 학생이 눈치 보느라 소극적으로 할까 봐. 하지만 M상은 아랑곳 않는 것 같았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된소리와 이중모음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나머지는 다음 시간에 하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입회를 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고, 괜히 영업하는 인상이나 줄까 봐. 계산대에서 M상은 내 몫까지 기어코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 아무리 체험 레슨이라지만 한 시간 무료로 수업을 받은 것도 좀 그런데, 찻값 정도는 내게 해 달라고.
다음 날 사무실로부터 M상이 입회를 하고 수업을 받기로 했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체험 레슨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친근하게 가르쳐주시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학생이 설문 내용에 이렇게 답을 보내왔으니 오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써달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 있었다.
다시 메일을 주고받고, 돌아오는 금요일로 수업 약속을 잡았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첫 수업이었다. 장소는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 '조나단'(Jonathan, 일본식 발음은 조나상). 패밀리 레스토랑이라 해도 차나 음료만 마셔도 되는 곳이라 부담이 없었다.
"선생님,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하는 건, 역시, 좀, 그런가요?"
M상이 내게 물었다.
"네, 아무래도 좀."
이제 와 생각하면 나는 식사를 하는 것이 좋지 않았겠나 싶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팬데믹 상황이 되고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날의 수업 내용은 된소리와 받침 그리고, 이중모음이었다. 많은 일본인 학습자가 그렇듯 M상도 '딸기'라는 지뢰를 만나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였다.
그가 갑자기 "지진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천장을 보니 샹들리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조금 뒤 몸으로 전해진 흔들림. 그대로 잠시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내가 물었다.
"동일본 대지진 때는 어디에 계셨어요?"
"그때 절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지진이 나서 흔들리는 와중에도 장례식을 도중에 관둘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마치고 나왔는데... 선생님은 혹시 도로가 반죽처럼 보이는 거, 겪어보신 적 있으세요?"
"저야 없죠."
"밖으로 나와 보니 도로가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마치 누가 넓게 펴서 치대고 있는 반죽처럼 느껴졌어요."
"무서웠겠어요."
"무서웠죠."
이렇게 말하고 그는 먼 곳으로 멍하니 시선을 옮겼다.
"제가 괜한 얘기를 꺼냈네요. 우울하게 만들려던 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M상과 다시 만난 건 2주가 지난 뒤였다. 두 번째 수업은 갑자기 일이 들어와서 수업을 할 수가 없다고 하루 전날 취소를 했었다. 갑자기 일이 들어왔다는 건 갑자기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 된다.
"못 만난 동안 복습은 좀 하셨어요?"
"그게... 좀처럼 시간이 없어서."
"그럼 복습 삼아서 읽기 연습 한 번 해볼까요? 된소리가 들어간 단어부터 한 번 읽어볼게요."
공간을 가득 채운 일본어의 공기 방울 사이로 조금 도드라지는 한국어 된소리가 끼어들어 공기 방울을 터뜨리고 있을 때였다. 그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진동을 해댔다. “여보세요.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짧은 몇 마디가 모든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이 들어왔네요.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얼른 먼저 가보세요. 저는 여기 자리 정리하고 조금 있다 일어날게요.”
그는 “제 일이 이렇다니까요.”라고 하며 지갑에서 삼천 엔과 찻값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돈을 받아야 하나 잠시 머뭇거릴 사이도 없이 그가 가방을 챙겨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창가 자리라 밖을 내다보니 밤하늘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고,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M상의 검은 코트 위에도 흰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으로 본 M상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수업 도중 전화를 받고 나간 뒤로 매주 목요일 밤이면 메일이 왔다. "일 때문에 내일 수업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나는 차라리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거짓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주 정기적으로 누군가가 또 떠났구나 하고 알게 되는 일이 기분을 좀 가라앉게 만들었달까. 사실 한글은 다 뗐으니 앞으로 회화 교재가 필요할 듯하여 수업 도중에 나갔던 날 받은 수업료로 그에게 줄 교재를 사 두었었다. 선물로 주려고. 책은 진작 도착해 있었는데 주인에게 가지 못한 채 내 책상 위에 계속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보는 것도 참 딱했다.
그렇게 목요일 밤이면 오던 메일이 3주간 계속되었고, 그 뒤로는 아예 연락이 없었다. 3월 중순쯤 되었을 때 나는 사무실에 더는 수업이 어려울 것 같으므로 학생에게 연락을 취해서 다른 강사와 연결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매주 목요일이면 내일 수업을 하게 될지 어떨지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하는 사실도 약간 짜증이 났지만, 어차피 얼마 안 있어 귀국도 할 텐데 차라리 길게 보고 맡아줄 강사를 일찌감치 만나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했고.
그런데 사무실에 메일을 보낸 다음 날, M상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아무렇지 않게. 금요일에 수업할 수 있느냐고. 나는 사무실에 그만둔다는 메일을 보낸 사실, 2~3개월 안에 귀국을 할 거라는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선물로 책을 사두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셰어하우스에서 스웨덴 출신의 하우스메이트 K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업이 흐지부지된 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의기소침해 있던 내게 K가 그런 말을 했다.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 가슴속에서 싹이 돋아 나는 것 같았다고. 일본에 와서 공부를 하는 요즘은 꽃봉오리가 맺힌 것 같은 기분이라고. 안에서 무언가 새로이 태어나는듯한 그 기분이 좋아서 곧 한국어도 시작해보려고 하는데, 네가 만난 M상 역시 아마 무언가 꿈틀대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겠느냐고.
그랬을까. 모르겠다. 그에게 주려고 샀던 책은 지금도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는데, 그의 한국어가 저 책 속에 담긴 말들보다 더 많은 꽃잎을 달고 있으면 좋을 텐데 싶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