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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Mar 19. 2017

15. 박사과정과 지도교수님

학문 인생의 멘토

"항상 기대보다 잘 해주고,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다. 다 너희들 덕분이다. "


항상 교수님께서 나에게 해주시던 말이다. 처음 뵀을 때부터 교수님은 항상 학생들이 열심히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은 항상 학생들 보고, 너희들 덕분에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이렇게 학생들을 신경 써주시는 교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우리가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힘들었고, 오랜 시간이었지만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지도교수님의 지도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15-1. 디펜스 때 함께 찍힌 나(왼쪽 위)와 지도교수님 (왼쪽 중간)


처음 지도교수님(임 교수님)을 만난 건 2008년 학부 수업시간 때였다. '디자인 방법론' 수업시간이었다. 첫 수업시간부터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터에 영어 논문을 띄워두고 읽어주셨어서 아직도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 기억이 남는다. 수업을 듣는 대부분은 학생들은 아직 논문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두 번째 수업시간에는 수강 학생들 중 절반이 드롭을 했없다. 나도 드롭을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두 번째 수업부터는 논문을 읽지 않으셔서(...) 다행히 계속 수업을 들었었다.


교수님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2008년도에 임 교수님과 개별 연구를 진행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임 교수님께 개별 연구를 신청한 것이 정말 인생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2008년에는 임 교수님도 신임 교수님이라서 연구실도 없없고, 대학원생도 없었다. 그 시절에 나는 교수님에게 직접 케어를 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다른 교수님께 개별 연구를 신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교수님 보다는 석사, 박사 조교님들만 주로 만날 것 같았다. 그래서 교수님께 직접 지도를 받고 싶어서, 아직 연구실이 없던 임 교수님께 찾아갔었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흔쾌히 수락하셔서 학부시절부터 내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때 시작했던 연구가 내 졸업연구로 이어지고, 학부생으로 해외학회에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학부생 때 운이 좋게 해외학회에서 발표하게 되어서, 그 학회에 참석했던 다른 연구자 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교수님이 해외에서 가르치던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 학생들은 임 교수님에 대해서 하나같이 'Great supervisor'라고 칭찬을 하며, 임 교수님이 한국으로 떠난 것을 너무 아쉬워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수님은 국내보다는 해외 학계에서 더 잘 알려져 있으셨다. 아직 학계는 전혀 모르고 있던 학부생이라서 임 교수님이 유명한지 모르고 있었지만, 운이 좋게 임 교수님께 개별 연구를 신청했고, 그리고 운이 좋게 해외학회로 가게 되어서 유명한 멘토와 함께 작업을 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해외 학회에서 임 교수님의 예전 학생들, 그리고 다른 해외 연구자들과 이야기해 본 다음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라 다를까, 시간이 조금 지나고, 교수님의 명성이 알려져 학과 내에서도 인기 있는 연구실이 되었다. 내가 해외학회에서 들었더너 소문만큼 성심성의껏 학생들의 연구 지도도 잘 해주셨다. 정말 논문의 단어까지도 신중하게 케어를 해 주셨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지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학부 때 이런 가르침을 받으며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수님과의 여정이 항상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교수님이 해외에서 저명한 학자이신 만큼 그만큼 학문적인 요구사항이 높았다. 나도 성장하고 있지만, 교수님이 기대하시는 기준을 절대 못 넘을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건 내가 성장을 못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한계로 느껴졌고, 넘기 불가능한 벽으로 느껴졌었다. 그 시절이 박사과정 중에서 가장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고, 박사과정을 중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교수님께서는 불가능한 벽으로 내 졸업을 막고 있었기보다는, 그런 벽을 어떻게 같이 넘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벽들 중에서 가장 낮은 부분을 함께 찾았고, 디펜스를 하며 그 벽을 넘을 수 있었다. 


교수님도 디펜스를 통과하고서도 정말 함께 기뻐해 주셨다. 디펜스 통과 사실을 안 직후에 (내가 눈문을 흘리기 전에) 허그를 해주시면서  "내가 많이 도와준 것도 없는데 너무 알아서 잘해줘서 고맙다."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알아서 잘한 게 아니라 교수님께서 나를 믿어주시고, 오랜 시간 성장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사과정 중에는 교수님이 제시한 기준들을 넘어가려면 완벽한 연구를 해야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다섯 명의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연구를 비판하시기 때문에 그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금 시선을 바꿔 생각해 보면 문제가 달라졌다. 과연 완벽한 연구가 세상에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 다시 내 연구를 바라보니, 이 세상에 완벽한 연구는 없어 보였다. 각 연구마다 한계점들이 있고, 그래서 논문 뒷부분에 연구의 한계점과 추후 연구들을 제안하게 되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완벽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연구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내가 다른 연구들보다 잘한 부분들을 더 강조하고, 불완전한 부분을 드러내고, 보완할 줄 아는 연구를 해야 되는 것이었다. 내 논문이 왜 다른 논문들보다 다른지, 그 장점을 잘 설명하고, 내 연구의 부족한 부분을 미리 인정을 하며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추후에 어떤 연구가 있어야 되는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된다. 즉 나 스스로 내 연구의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숙지해야 되었다.  한 동안 완벽한 연구를 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교수님이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런 산은 나의 오해에서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분명 7년간의 긴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졸업 후 사회에서도 교수님께 배웠던 것들을 잊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박사과정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이제 사회에 나가면서 더 느끼겠지만, 내가 앞으로 하는 모든 행동들이 내가 평생을 감사해야 될 나의 스승님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교육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몇 마디의 말로 교수님께 감사의 말을 다 전할 수는 없지만, 짧은 글로써 교수님께 감사의 글을 전달하고자 한다.  


"교수님. 교수님께 지도 받지 않았으면 저는 아마 박사과정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계속 믿어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것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도 차분히 저희를 기다려주시는 교수님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나아가는 모습으로 교수님의 가르침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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