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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Mar 09. 2017

14. 밥상 뒤엎는 튜브 (카카오 프렌드)

박사과정과 연구실 동료


"아 이거 진짜 발표하려고? 교수님 앞에서?"

"에? 좀 그런가요?:"

"응 이건 빼는 게 좋을 것 같고.. 톤을 좀 순화해.."

"아 그러는 게 좋겠네요.."


2월 2일 나의 마지막 랩 세미나 발표를 앞두고 오랜만에 박사 고년차들이 함께 내 자리에 모여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내가 박사과정에서 느꼈던 점, 혹은 연구실에서 개선되어야 될 점들을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도 혹시나 내가 너무 자극적으로 발표자료를 구성하는 게 아닌지 걱정되어서 함께 '검열' 해 주려고 왔다.


처음 작성하려던 것은 어쩌면 좀 자극적인 말투,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ppt였다. 사실 나는 발표를 끝내고 그냥 훌쩍 학교를 떠나버리면 되지만, 남아있는 학생들은 내 발표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표하는 나 보다는 아직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고 함께 발표자료를 구성하기로 했었다. 


[그림 14-1] 밥상 뒤엎는 튜브... 연구실 후배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 ㅠ


대학원에 에 들어가면 누구나 자신의 새로운 가족들이 생긴다. 나에게도 CIxD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7년 동안 함께 기뻐하고, 슬퍼한 연구실 가족들이 생겼었다. 연구실 식구들은 단순히 친구들 이라고만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힘든 연구실 프로젝트가 있으면 함께 이겨나가야 되고, 서로의 연구를 함께 보조해주는 사수의 역할도 해야 된다. 갈등도 일어나기 때문에 쉽게 애증이 관계가 되기도 한다. 7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힘들어가고, 함께 성장하는 해왔다. 서로의 결혼식이 있으면 축가도 불러주고, 논문이 잘 되었을 때는 함께 축하해주고, 연구 진행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같이 모여서 서로의 연구를 위해서 건설적인 토론을 해 주기도 하였다. 


연구실에서 나의 이미지는 (그림 14-1)과 같다고 했다. 밥상을 뒤엎는 튜브.. 연구실 운영 관련해서 욱 하는 성격도 있고, 연구실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보다 내 연구를 더 중요하게 여겨 냉정하게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미지였기 때문에 박사 마무리 발표를  불평불만이 가득하게 구성했었다. 한편으로는 졸업하고 나갈 사람만이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졸업자가 해주고 나가야만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우리 연구실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들을 지적을 하고 싶었다.


우리 연구실은 졸업을 하지 못한 고년차 박사들이 많이 몰려 있는 편인데, 졸업 요건을 채우고도 아직 디펜스를 못하고 있는 학생이 4명이나 되었다. 나는 현 상황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서 내가 생각했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싶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상적인 '좋은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연구실 친구들과의 '검열'을 거쳐서 박사과정 마무리 발표를 준비하였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연구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상태에서 나의 마지막 랩 세미나를 시작했다. 신중히 준비한 내용이지만, 혹시 교수님께서 너무 상처받지는 않으실까.. 혹은 내가 발표하다가 감정이 격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차근차근 내가 준비한 발표자료들을 발표해나갔다. 처음 박사과정에 들어와서부터, 교수님을 만나고 박사를 졸업하기까지의 여정을 뒤돌아보고, 각 단계에서 내가 힘들었던 점, 그리고 개선되어야 될 점들을 정리하여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전달하였다. 민감할 수 있는 주제라 여자 친구가 발표 때 쓰라고 보내준 짤들을 열심히 사용하면서 최대한 유쾌한 웃음코드를 유지해가려고 노력했다. 가장 큰 쟁점은 '좋은 연구'를 추구하는데, 시간적 금전적 제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제약 상황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검열' 하는 중 영욱 형이 제안한 아이디어였는데, 매우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다행히 발표를 들으시고 교수님도 공감하셨는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박사 연구'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좀 더 논의를 해보자고 하셨다. 모두들 긍정적인 발표였다고 코멘트를 들었다. 다른 연구실 식구들의 도움이 있어서 자극적으로 불평불만을 하는 발표가 아닌 굉장히 긍정적인 설득을 할 수 있는 발표가 되었던 것 같다.



연구실 식구들은 불합리한 상황들에게 함께 분노해주고, 기쁜 일에는 함께 반가워해주던 사람들이다.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이렇게 열정적이고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쁜 시간들이었다. 연구실 가족들이 없었다면 이미 나의 정신은 지쳐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을 것 같다. 이제 곧 졸업할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도 순탄하게 졸업까지 길이 잘 이어졌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사회에서 나가서도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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