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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Sep 30. 2021

부러움이 재능이라고요?

여우의 신포도


저를 소개하자면 여우같은 사람입니다. 높이 달려있는 포도를 보며 저건 신 포도라고, 어차피 못먹을 거라고 고개를 돌리는 여우 말입니다. 남들이 포도를 먹고 싶어서 열심히 점프할 때도 저는 초연했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책들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습니다. 마침 저의 재능은 욕구를 억제하는 쪽에 있었습니다. 부러움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은 쉬웠습니다.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바보들, 저건 신 포도야. 나처럼 손에 닿는 걸 먹으면 되는데. 왜 스스로를 괴롭히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면서 억눌렀던 욕구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매주 갈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억눌렀던 부러움에 대해서도 말하게 되곤 했습니다.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나는 부러움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심했던 거였습니다. 감당하기 힘드니 느끼고 싶지 않아서,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아 버린거였죠.


부러워요. 근데 부러워하면 뭐해요? 어차피 가질 수 없을텐데.


부러움을 억제한 대가는 컸습니다. 말이야 높은 곳에 있는 포도는 실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그곳에 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평생 지금 이정도 높이에 있을 거라는 거죠.


성장하려면 '잘 못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부러운 마음을 외면할 정도였다는 건, 그만큼 '내가 못한다'는 감정을 절대로 느끼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장하는 게 얼마나 싫었을까요. 지금 이순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못하는 것은 절대 하기 싫고, 쉽게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고싶었습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울 때도, 제가 골랐던 곡은 주로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래들이었습니다. 10년을 배웠지만, 자꾸만 틀리는게 싫어 결국 손대지 않은지가 더 오래되었습니다.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도 쉽게 할 수 있었지만 쓰던 것만 쓰고 그리던 것만 그렸습니다. 결국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건 10년이 넘어버렸고, 괴상한 자의식만 남아버렸습니다. '나는 글과 그림을 오래 전부터 했던 사람이야'. 하지만 10년 전의 실력과 똑같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그런 생각들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왜 내가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쉽사리 인정하지 못할까? 라는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교만하면 안된다고, 들떴다가 실패했을 때 너무 아프게 떨어질까봐 무서우니까 너무 크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발견한 것입니다. 나의 재능을 보아주지 않았듯이, 남들의 재능도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요.


부러움으로 몸서리치다 눈물까지 흘리는 제게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정말 많이 부러운가봐요.

네, 부러워서 죽을 것 같아요.

죽을 정도로 부럽구나.

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근데 무서워요. 저같은 게 어떻게 그래요.


편하게 눈물을 흘리니 차라리 기분은 나았습니다. 네, 정말 부러웠습니다. 너무 배가 아파서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러움을 느끼는 스스로가 싫어서 한번 더 몸을 떨었습니다.


저 지금 너무 별로인 것 같아요.

그런 제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시기심은 재능이에요.


"좋은 걸 알아보는 거니까요. 그러면 나아갈 방향이 생겨요. 시기하는 건 인간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시기심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보는 것과 같은 거죠. 자연스러운 건데 그 때마다 제동을 걸고, 여우의 신포도처럼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라며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 힘들어져요."


듣고보니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무기력에 또 한 몫을 했을 겁니다.


"그냥 느껴주세요. 아, 내가 부럽구나, 하고요. 부러운 건 잘못된 게 아니니까요."


그런 건 머리로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공간에서는 할 수 있었습니다. 부러워하는 나를 굳이 싫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요. 좋은 걸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는 거니까요. 그러면 나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도, 높은 곳의 포도를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사과해봅니다. 부러워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뭐라해서 미안해. 나도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처럼 굴었어. 미안해. 부러워하는 나를 싫어해서 발전하지 못하면, 영원히 그자리 그대로 있겠지. 이제는 나를 위해서 그만 싫어할래. 부러워해도 괜찮아. 그건 재능이야.


그러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습니다.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좋은 것을 보는 눈은 이미 내게 있습니다. 그것과 함께할 때 가장 좋은 무기는 꾸준함일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속담 속의 여우도 언젠가는 인정했을까요? 높은 곳의 포도는 신 포도가 아니라, 좋은 포도라는 걸요. 그리고 깨달았을까요? 그걸 알아본 여우도, 그 포도를 먹을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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