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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Jul 31. 2024

부모는 해롭다.

단족(가족을 끊다.) 기행문

5학년이 되고 여름이 시작되어 온 동네에 하수구 냄새가 옅게 깔려 지선이 코를 잡고 하교한 날이다. 엄마는 안방에서 트렁크 두 개에 옷을 정신없이 구겨 넣고 있었다. 지선은 가방을 그대로 어깨에 메고 트렁크를 잡았다. 눈물이 흘러 선명하게 긴 줄을 남겼다. 손이 빨게 지도록 버텼다. 지선을 향한 엄마 눈은 흔들렸지만 차분했으며 캄캄했다. 힘을 주어 지퍼를 돌리자 지선의 심장에 지익 그어지며 선을 남긴다. 트렁크 안 옷소매들이 걸려 아우성을 쳤다. 엄마는 블라우스 소매를 트렁크 속으로 연신 끌어 넣으며 끝을 놓았다.

-동생들 잘 봐. 니가 엄마 대신이야. 넌 다 잘하니까. 엄마가 곧 데리러 올게.

트렁크를 잡은 손가락은 엄마가 일어나며 트렁크를 들자 힘도 없이 슥 미끄러졌다. 그 순간 지선은 나락으로 흘러가 다른 차원으로 걸어들어갔다. 엄마가 집을 나가려는 순간 자신은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지선은 엄마가 멀어지는 골목 끝을 바라보며 이 순간이 어디일지 아득했다. 엄마 말한 곧은 며칠인지 몇 달인지 생각했다. 

엄마가 사라진 그날. 지선은 꿈을 꾸었다. 골목길 하수구에서 스멀 스멀 검은 손들이 올라와 지선 발목에 감겼다. 끈적이고 엉겨서 발을 뗄 수 없었다. 마침내 검은 액체들이 지선 목을 감았다. 숨이 막히고 콧물과 눈물이 엉키고 죄다 검은색으로 흘러내렸다.

- 엄마. 엄마

지선은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안방 문을 열었다. 침대는 비어있었다.

아빠는 어디로 간걸까. 순간 바지 아래쪽에서 검은 손들이 휘감았던 느낌이 생생했다. 지선은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내렸다. 팬티에 검붉은 것이 찐득거렸다. 배도 아릿하게 아팠다. 훗날 정은이 진통제를 건네던 그날까지 지선은 아팠다. 그날부터 단약을 시작한 마약 중독자처럼 금단 증상에 시달렸다. 

엄마가 그 골목 끝에서 지선을 돌아보았다면 지선은 달려 가서 다시 엄마를 붙잡았을 것이다.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선은 며칠을 학교에 다녀오면 몸 속 수분이 모두 나올 때까지 대문 앞에서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울었다. 문득 '슥슥' 무언가 갈리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은수가 보였다. 은수는 운동화로 잡초를 뽑을 듯 발로 차고 있었다. 은수 운동화에 구멍이 날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눈물을 닦았다. 

- 너 다 봤어? 너 어디가서 말하면 죽어. 괜찮냐고 묻지마. 아무말도 하지마 

- 그냥 이거 줄려고 기다렸는데....

지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뚝뚝 떨어지고 있다.

- 그걸 어떻게 먹어..

- 어어...내가 다시 얼려서 내일 줄께. 내일 학교 가기전에

- 안 먹어..저리 가..

뚝뚝 떨어진 아이스크림이 골목에 하얀 자국을 남긴다. 지선은 자신을 본 사람이 은수라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 너 뭐했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어? 

거칠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의 첫마디였다. 현관문 쿵하는 진동이 발로 전해질 때 지선은 재빨리 동생 손을 끌고 제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빠가 바닥으로 무엇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 김지선. 너 나와 봐 

이 날 이후 지선은 아빠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짜증이 나거나 심장이 두근 두근 거렸다. 아빠가 부르면 수치스러웠으며 눈을 늘 피곤해보이고 허무해보여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돈을 달라고할 때 만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나온 지선은 안방 옷장에 걸렸던 몇 가지 엄마 옷들이 문 앞에 버려진 걸 본다. 거실 바닥 옷들이 엄마인듯 밟지 않으려 애를 쓴다. 지선을 보고 있는 아빠 시선이 느껴지지만 지선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져 묻고 싶지만 두렵다. 엄마를 붙잡았다고.. 최선을 다했다고..아무것도 안하게 아니라고... 

지선은 지키려 한 것은 자신인데 큰 소리를 치는 아빠가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배웅인지 이별인지를 정하지 못하고 집에 들어온 지선은 안방을 흘깃보고 옷장을 정리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와 엉망이 된 안방을 고스란히 보게 두었다. 아빠가 자신처럼 충격을 받아 한편으로 엄마를 수소문해서 얼른 데려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빠의 첫마디는 놀랍게 뻔뻔했다. 늘 어른들은 자기가 잘못하고도 자식에게 잘못을 떠넘긴다.  

역시 부모는 해롭다. 지선은 국어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린다.  ~~~롭다. 신비롭다, 정의롭다, 흥미롭다, 향기롭다 ....롭다로 끝나는 말들은 저마다 멋지구나 생각했었다.

해롭다는 말도 아까워. 아빠의 태도에 억울하고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지 않았다. 

대신 ' 해롭다'는 말 대신 '부모는 나를 해친다.' 로 고쳐 생각한다.

-일단 밥 먹자.  

아빠는 냉장고를 뒤지더니 저녁을 했고 지선과 동생들은 꾸역 꾸역 먹었다. 콩나물 무침 비릿함에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아빠가 콩나물을 데치다가 뚜껑을 열었나보다. 엄마가 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지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을 모두 토해 버렸다. 

콩나물을 먹나 봐라. 콩나물이 변기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는데 또 눈물이 흐른다. 

아빠는 자기전에 지선과 동생들을 식탁 앞에 불러 모았다. 지선은 아빠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식탁 나무결을 계속 바라본다. 식탁 나무결이 엄마 얼굴로 보였다가 개로 보였다가 새로 보였다가 곧 흐려진다. 

동생들이 묻는다.

- 아빠. 엄마는 언제와? 엄마 보고 싶은데. 전화해보면 안돼?

- 이제 엄마 없어. 그렇게 알아. 

동생들이 울기 시작했지만 끝내 엄마를 데려오겠다는 말은 없다. 지선의 질문들은 식탁 나무결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지선은 문득 은수가 내일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나올지가 궁금해진다. 아빠 말이 끝나기전에 일어나 방으로 들어와 공책에 힘주어 글을 쓴다. 본인의 잘못을 자식에게 떠넘기는 부모가 있다면 정말 해롭다. 해로운 건 버리자. 부모가 가끔 잘해주면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절대 용서하지말고 버텨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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