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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Aug 07. 2024

차라리 죽어 버릴까

- 헤어지자고? 나 너랑 결혼 못하면 죽을 거야. 지선아 조금만 기다려줘. 어떻게든 엄마 설득할게

지선은 낡은 빌라 입구에 들어선 순간 쿡하고 억지 웃음을 지었다. 이 입구에 선 정섭은 세상 편하게 지 엄마 밥을 먹고 부모가 사준 차를 타고 와서 죽겠다는 각오를 한 남자였다. 지선은 그날, 진지한 눈과 다짐하는 입술보다 반짝이던 정섭의 차가 떠올라 웃기를 멈추고 발을 계단으로 옮긴다. 센서등이 요란하게 팍 피어오른다. 불빛은 이내 사라지고 주변은 캄캄하다. 지선은 사랑은 저 불안정하게 사라진 불빛보다 자신을 지키는 빛이 더 약하다고 느낀다. 정섭이 했던 희미한 다짐들은 이혼한 부모 밑에 자란 불쌍한 애는 며느리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결연한 속사포 다짐에 기력을 잃었다.정섭은 이제 지선을 데려다주며 나누었던 다정한 손길을 거두어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여자 애와 결혼을 한다. 지선은 정섭 엄마의 불쌍한 애라는 말보다 정섭의 죽겠다는 말에 기필코 헤어졌다. 내가 써먹던 죽겠다는 말이 나에게 돌고 돌아오는 건가. 지선은 현관문을 당겨 문을 잠그고 외투와 가방을 거실 소파에 던진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그래도 아빠는 반찬을 고모에게 얻어 오기 시작했다. 12살 지선이 한 첫 독립은 아빠가 와서 성질을 내기 전에 쌀을 씻고 밥솥에 밥을 하는 것이었다. 지선은 처음에는 쌀에서 나오는 뽀얀 물이 투명하게 될 때까지 힘을 주어 씻느라 힘들었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쌀뜨물의 적정한 투명도를 알게 되었다. 동생들 밥을 챙기고 동생들 숙제를 봐주는 것 정도는 점점 익숙해져 갔다. 지선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빠의 성질머리뿐이다. 저러니 엄마가 도망을 가지, 아빠가 없었으면, 집을 나간 게 아빠였으면 했다. 엄마가 사라진 뒤 아빠는 기분이 널 뛰기를 했고 술을 마시면 더 무서워져서 지선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아빠가 꼴 보기 싫어서 잠이 들길 기다렸다가 옆집 은수에게 가서 놀다 오곤 했다. 은수는 엄마랑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는 무당이었다. 한쪽 방에 붙은 무서운 그림을 보고 무서워서 울며 집에 왔던 날 엄마가 알려준 말이다. 지선은 처음으로 무당이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 은수 집에 가서 그만 놀아. 은수 엄마 무당인 거 알지? 그래서 아빠가 없잖아.”

- 은수 정말 착한데.. 과일도 주고 과자도 많이 줘.은수가 주는 과일에서 조금 매운 향이 난다는 건 숨긴다. 지선은 엄마가 은수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얄밉고 싫었다.

- 은수 엄마 무당인 거랑 아빠 없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지선은 기분이 나빠져서 물었었다.- 암튼 놀지 마. 엄마 말 들어. 소름 끼쳐.지선은 집을 나간 엄마가 무당 은수 엄마보다 백배는 더 소름 끼치고 밉다는 생각을 한다. 지선은 아빠가 야근을 하는 날이면 고모가 준 반찬을 꺼내고 옆집 은수를 불러 동생들과 저녁을 먹는다. 은수는 사과 몇 알이 담긴 검정 봉지를 들고 온다.    

 

중학교 시절 여중으로 진학한 지선은 은수와 떨어져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늘 은수와 등교를 하고 옆반 남자애가 놀려도 은수에게 뛰어가면 그만이었는데 지선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혼자가 되어버렸다.‘은수가 있을 땐 집에서만 외롭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학교에서도 힘들어’ 그즈음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끊기로 한 마당에 절대 엄마를 그리워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이제 날 버린 부모는 필요 없어. 누구에게든 관심만 받으면 외롭지도 않고 잘 살 수 있어’지선은 관심받고 사랑받을 방법을 열심히 궁리했다. 친구들이 좋아라 하는 가수들을 찬양하기 시작하면 가장 인기 없는 멤버를 골랐고 겹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지식을 떠벌렸다. 지선은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극도로 피곤해지곤 했는데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면 금방 불안이 사그라들었다.‘얼른 누가 제발 나에게 관심 좀...’   어느 날 지선은 친구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효과 만점 방법을 찾아냈다. 은수가 처음으로 자신이 한 말에 울어 버렸다. 속으로 이거다를 외치며 잠이 들었다. 지선은 등교 후 우울하고 슬픈 얼굴로 평소에 친해지고 싶었던 반장에게 점심시간 끝 무렵에 운동장 구석에서 처음 써먹었다.

- 차라리 죽고 싶어.

효과는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실 오래 써먹지 못했다. 부작용도 심했다. 처음 자살을 빌미로 관심을 받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다짐하면서 지선은 점점 더 관심이 받고 싶어졌다. 지선은 가짜로 하는 다짐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밤에 손목을 그어 가기도 했다. 지선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친구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기를 지켜봐 주는 그 눈이 좋았다. 순전히 전부 꾸며낸 말은 아니었다. 자주 죽음을 말하고 친구들에게 다짐할수록 죽고 싶었다. 그러다 죽기 싫기도 했다.‘안돼. 내가 죽으면 엄마 아빠는 너무 홀가분해질 거야. 난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하다 보면 죽고 싶어 진다. 관심을 받고 싶다면 죽겠다는 말이 조금은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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