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족' 기행의 시작
- ..부모 홀수야.
지선은 회사 네임택을 걸고 휴대폰에 눈을 고정하고 돌진하던 남자를 아슬하게 피했다. 옆으로 살짝 몸이 기운다. 찰나의 순간, 작은 속삭임이 거대한 낚시 바늘이 되어 심장을 낚는다. 버둥이는 생선 머리 마냥 시선이 단발머리 여자아이에게 끌려간다. 짝수로 걷던 단발머리는 저만치 앞서가는 홀수 아이 뒷통수를 턱으로 겨냥한다. 동시에 긴 머리 아이의 한쪽을 파고들며 짝수를 고수한다. 앞서가던 홀수는 고개를 돌려 짝수를 향해 가지런한 미소를 드러낸다. 햇살은 저렇게 부서질 일이 아니다. 지선은 가던 길을 멈춘다. 달려간다. 짝수 중 단발머리의 뒷통수를 힘껏 움켜 잡는다. 머리카락이 당겨지며 눈 두개가 흰자위를 드러낸다.
- 지선. 배고파. 안가고 뭐해? 뭘보는 거야?
팔짱을 끼며 옆구리에 들어온 수연의 관심이 지선의 발걸음보다 빨랐다. 드디어 여자 아이에게 포획되어 굳은 몸과 시선이 온기에 풀려난다. 심장이 낚시 줄에 걸린 생선마냥 팔딱인다.
- '조용히 나가기' 알지? 가족도 그래야하는데..아.진짜
회사 앞 식당이 즐비한 골목 앞에서 수연이 씩씩거린다. 핸드폰 액정 빛 만큼은 노랗고 나머지는 붉다.
- 알지? 나 어제 우리 동기 모임 단톡 나온 거? 너도 조용히 나와. 이 기능 신박한데. 사실 동기 모임이란 게 만나서 하는 얘기는 죄다 지 자랑 아니면 남욕이고"
'조용히 나가기'란 말이 소극적이라 평소 단호박이라 불리는 수연과 어울리지 않아 지선은 픽 웃음이 난다. 그래도 점심 메뉴는 그녀답게 냉정하고 거칠게 단번에 결정한다. 반면 '그러자, 굳이 뭐.'의 대명사 지선은 굳이 어차피 밥은 먹어도 그만이고 아니어도 그만이라 수연을 따라 걷는다. 이미 수연은 매운 낚지 집 앞에서 지선에게 암팡지게 손가락 방아쇠를 당긴다.
이 골목 직장인들이 허기 때문인지 중독 때문인지 모를 초조함이 휴대폰 액정 화면에 반사된다. 그래, 뭐든 중독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나라지.
- 이번 주말에 또 아버지가 오란다. 고생해서 대학 보냈으니 직장 들어갔으면 효도를 하래요. 아니 본인이 해준 게 뭐가 있다고. 확 결혼이나 해버릴까. 아 감자조림 맛있다. 엄마가 해준 거보다 좀 더 달긴하지만 먹을 만해 먹어.
홀수는 싫다. 지선은 홀로 놓인 숟가락과 짝으로 놓인 젓가락을 내려다 본다. 떨어진 홀수를 끌어온다. 감자를 우물거리며 수연은 밑반찬 접시를 중앙으로 끌어온다. 지선은 뭐든 보면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는 아련한 마음은 뭔가 싶다. 지선은 고개를 돌려 식당 앞 골목길을 유심히 본다. 일상에 틈만 보이면 과거로 돌아가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 저기 누워 잘까. 내 방보다 편할 것 같아
지선이 울며 한 말에 은수가 잡았던 손의 따스함을 떠올린다. 은수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은수가 있어서 진작 나올 집을 이제 나온건가. 확실한 건 그날부터 홀수 아버지 삶을 보충하는 첫째 딸이 되었다. 수연은 톡을 보내며 연신 반찬을 집어 먹는다. 지선은 집을 나간 엄마가 몇 년 전에 보내온 톡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톡방을 나가지도 않았다. 그냥 1 그대로 남겨 두었다. 지워지지 않은 1은 복수의 표식이다.
- 야. 내 말 들어? 집에 가기 싫은데 어떡하냐고?
- 가지 마. 무시해. 끊어
-그게 쉽냐? 그래도 부모인데.
지선에게 부모는 마약이였다. 불쾌하지만 계속 생각이 났으며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괴로웠다. 끊으려하면 매번 죄책감이 들어 포기했다. 물이 없어 바닷물을 마시는 꼴이랑 뭐가 다를까. 수연에게 부모는 밑반찬일 것이다. 무해하며 곁에 머물지만 밥을 술술 넘기게 하는 소박한 맛일 것이다. 지선은 맨 밥을 몇 숟가락 먹는다. 수연이 밑반찬을 지선쪽으로 끌어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