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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Oct 22. 2023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읽쓰플로러 1

불완전함이 주는 미소와 아름다움이 주는 미소

지하철의 덜컹거림과 나의 몸을 왔다 갔다 하게 하는 관성이 나쁘지 않다. 어디에도 이 한 몸, 이 한 마음 기댈 곳 없는 현실이어서 그런지 지하철에 내 몸을 맡겨 하나 되는 느낌이 아주 좋다. 더욱이 취기가 오른 텅 빈 머릿속은 그야말로 더할 나위가 없다. 충혈된 눈과 시뻘게진 얼굴, 가시지 않는 술김과 온갖 안주의 향을 머금고 있는 몸냄새는 덤이다.

저녁 10시, 주위를 살펴보니 상태들이 다들 비슷하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술이 떡이 되어 몸을 가누기 힘든 사람(저 사람은 얼마나 힘든 일이 있었길래...), 재잘재잘 떠드는 젊은이들(역시 에너지들이 넘치는구만),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꾸벅꾸벅 조는 직장인(나 같은 사람이구만),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어떤 결핍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바로 맞은편, 사랑을 속삭이다 못해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남녀. 

'? 쟤네들은 뭐야? 여기가 무슨 프랑스야? 공공장소에서 너무하는 거 아니야?'

 바로 맞은편 연인처럼 보이는 젊은 남녀를 보고 불쾌감이 불러일어났다.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욕정에 휩싸여 서로를 갈망하는 눈빛이 술에 취한 텅 빈 머릿속을 불쾌감으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

'요즘애들이란... ㅉㅉㅉ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지 남들 보는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추하다. 추해. 요즘애들은 진정한 사랑을 몰라.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뭘 알겠어?'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다음날 아침해는 어김없이 떠오른. 천근의 머리를 일으켜 세우고, 만근의 몸을 어김없이 지하철로 끌고 간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책장을 펼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 정도의 숙취쯤 가뿐하다. 어제 아내가   그만 마시고 정신 좀 차리라고 추천해 준 <나는 누구인가> 펼쳤다. 책을 읽으면서 어제의 연인들을 보면서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 운운했던 불쾌감은 진정한 불쾌감이었을까?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은 깨달음의 지평이 열리는 소중한 장소 변모한다.

책은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내용을 챕터별로 구성하여 한 권으로 엮어 놓은 책이다. 그중 "태수 교수님""아름다움 추구하 삶이 아름답다" 챕터를 보면서 어제 지하철에서 사랑을 속상이던 연인들이 떠올랐다. 저자는 플라톤의 향연을 소개하면서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정의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태초 사람의 모습에 대해 묘사한다. 남자와 여자가 생기기 전 사람은 동그란 구형태이며, 팔다리도 여러 개가 달린 기괴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힘도 세고 지능도 높 완전체로 신들과 대립하고, 그래서 신들에게 미움을 샀던 모양다. 신들은 완전체의 구형태의 사람에게 벌을 내렸다. 그 벌이란 사람을 반으로 쪼개는 것이었다. 그 이후 한쪽은 자가 되고 한쪽은 자가 되었다. 이후 남자와 여자는 태곳적 모습의  하나의 완전체가 되기 위해 서로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남성과 여성의 육체는 불완전 것이며 육체를 보면서 하나가 되고픈 갈망, 그 자체를 아름다움이란 정의한다. 결국 아름다움 불완전한 것에서부터 완전한 것으로의 열망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사랑 또는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보면 사랑과 욕망의 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을 아주 미세한 틈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은 사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을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첫걸음 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완전함이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2개의 반쪽이들사랑이라는 수단으로 하나의 원으로 합쳐지는 순간이리라. 불완전함이 완전해지는 순간. 이 순간은 더 이상 갈망이 없는 상태, 즉 욕망으로부터 자유상태이다. 마치 불교에서 얘기하는 '무아지경'이나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서 얘기하는 '욕망 없는 평정심'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런 완전함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다.


최상의 아름다움 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부모와 자식사이의 사랑,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전과 노력, 정신적 성숙을 위한 청춘의 노력,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들, 정신적 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배움, 하나가 되기 위한 남녀의 사랑의 삭임. 지하철 안에서 서로를 쓰다듬으며 애정 어리 눈빛으로 사로를 갈망하는 연인들 자체가 아름다움이었다. 불완전한 남녀가 합일을 이루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를 정하거나 비하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지하철에서 본 연인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진정한 사랑을 운운하며 그들 나름의 아름다움을 비하하고 평가한 것에 대한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갈망이열정이, 것들로 넘치는 그들 청춘이, 불혹의 갓 넘긴 나에게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이 나를 불쾌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이제는 나에게는 불타오르는 열정이나 나는 청춘없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 존재한다. 그것은 불꽃처럼 눈부시거나 핑크빛처럼 달콤하지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은  분명히 내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수도권 컴컴한 지하 어디에나 있. 잠이 덜 깨어 병든 닭 마냥 꾸벅 꾸벅 조는 사람들 사이에도, 피곤에 쩔어 내 몸하나 건사할 수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도 있다. 혹여나 지하철 한구석에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 씨익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람이 있다그는 바로 나일 것이. 그 순간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중일 것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내 삶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과 마음부림이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이 주는 미소, 그것은 불완전하기에 웃을 수 있는 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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