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얻어걸린 개똥철학

by 알깨는 아줌마

두바이 여행, 솔직히 계획은 거창했다.

우리 집 Little 작가들의 소설 집필 완료여행.


프라이팬도 들고 오고 블루투스 스피커도 가져왔다.

그런데 있다 보니 집에 있을 때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막내가 매일 아침 만들어주는 브라타치즈토마토 샐러드

사진첩엔 아침에 주로 먹는 브라타 치즈 샐러드, 문 앞에 배달 온 식재료들, 프라이팬 위의 고기와 양파, 식탁 위의 노란 장미 같은 것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봐야 할 것들은 꼭 봐야 하고 한 군데라도 더 도장 깨기를 해야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렇게 지내는 게 늘 즐겁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 밖의 현란하게 빛나고 있는 두바이 관람차를 보면서 ‘이게 뭐지?’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있다.


근데 웃긴 건, 그게 이상하게 좋다는 거다.


낯선 땅에서 평소 하던 루틴을 그대로 돌리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걸 즐길 수 있다는 건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는 얘기 아닐까?

그러니까 일상 속에서 여행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 말이다.


여행지에서 집에 머물며 밥을 하고, 꽃을 꽂고, 글을 쓰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나가기 귀찮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내 일상을 새로운 배경 위에 얹어보는 일이라는 것, 이게 바로 이번 여행에 발견한 “여행 회로 철학”이다.

낯선 곳에서 평소 하던 루틴을 여러 번 돌려놓으면, 집에 돌아가서도 그 회로를 켜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일상에서도 꺼내 쓸 수 있는 “재현 가능한 여행의 기억”이 되는 거다.


이곳에서 매일 아침으로 먹고 있는 브라타 치즈 샐러드는 오늘 아침엔 덜 감동적이었지만 집에 돌아가 동네 마트에서 브라타 치즈를 발견하는 날(우리 동네 마트엔 아주 가끔, 아주 소량 들어오는 아이템이다.)에는 우리는 여행자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그때! 두바이에서 이거 매일 아침 먹었었잖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뇌 속에서 ‘여행=특별한 일정’ 공식이 조금씩 해체되고, 대신 ‘여행=환경이 다른 일상’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자리를 잡는다.

여기서 글 쓰고, 간단히 밥을 해 먹고, 노란 장미 한 다발을 꽂는 건 평소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두바이라는 무대에 놓이니까 전혀 다른 전류가 흐른다. 마치 같은 전구인데 전압이 바뀌어서 불빛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회로는 집에 돌아가서도 작동 가능할 것일 거라 기대가 된다. 일상에 잠시 다른 불빛을 비춰 줄 것이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여행에서만 느끼던 가벼움, 설렘을 평소에도 가끔씩 꺼내 쓸 수 있게 되니까.


다음 여행에서도 난 프라이팬을 챙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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