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은 핑계고
몇 년 전부터 겨울이 되면 찬바람에 눈물이 계속 난다. 나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이들이 꽤 많았나 보다. 원인을 찾고자 검색을 하니 화면을 가득 채운 '겨울철 눈물이 나는 이유'에 대한 정보가 뜬다. 건조하고 추운 날씨에 각막에 수분이 부족하면 눈물샘에서 눈물을 내보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안구건조증이 원인인 셈이다. 나는 인공눈물을 쟁여놓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엔가 출사를 나갔다가 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인공)눈물을 넣어야 하는 행위가 우습게 느껴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울지 않으려 미리 울어두는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눈이 시려서 흘리던 눈물은 놀랍게도, 인공눈물 몇 방울을 눈에 넣고, 꿈뻑이고, 다시 눈물을 흘리면 금방 그쳤다. 이 모순이 싫지는 않았지만 쉽게 수긍할만한 녀석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슬픔'에 대응한다. 학생 때는 부모님께 혼나면 억울해서 울고, 군대에선 가족이 그리워서 울고, 청춘일 때는 연인과 헤어져서 울었다. 큰 범주에서 보자면 대게 나의 눈물은 슬펐을 때 흘러왔던 것 같다. 서른 살 즈음부터는 슬퍼서 운 적은 없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자 푸석푸석하고 메마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사막 같은 삼십 대의 몇 해가 지나자, 몸에서 경고라도 하듯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뺨과 코 사이의 계곡을 타고 전설로만 내려오던 강물이 흐른다. 울지 않으려 인공눈물을 넣고 또 운다. '내가 지금 슬픈가?'하고 속으로 물어본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내가 왜 우는 걸까?'하고 다시 한번 물어본다.
'결정적인 순간에 울지 않으려고'
슬픔의 순간이 다시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충분히 안다. 그때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무탈히 지나가길 바라는 무의식이, 미리 울어두면 그때는 나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주는 것 아닐까. 슬픔을 눈물로 가리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나는 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에도 별명을 지어줘야지. 아무래도 '안구건조증 환자'보다는 '겨울 동안은 울보'로 지내는 게 덜 푸석푸석하니까,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계절병의 별명은 '울보'인 걸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