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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Jan 05. 2021

#10 주도성의 진실

빼앗긴 아이들

  앞으로 미래는 어떨까요?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세상일 겁니다. 예전의 부모 세대처럼 무조건 ‘열심히’만 해서는 살기 힘든 게 요즘이니까요. 그러나 부모는 여전히 아이에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물려주려고 합니다. 이때껏 자신이 꽤 유능하게 대처했고, 그 성공경험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거죠. 자신이 잘 아는 분야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기존의 체계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판 자체가 바뀌었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삶의 패턴의 수정 및 변경의 기로에 놓인 것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교육환경 역시 화상수업이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앞으로 수행 평가 역시 다른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던 입시 방법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더 이상 이전 방법을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가 어떤 걸까요? 바로 사교육 현장일 것입니다. 


  인공지능, 미래사회, 4차 산업 혁명 등이 거론될 때에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고, 명문대 성공신화는 불변이라는 굳건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온 세계가 코로나로 모두 멈추어야 했던 그 시간에도 우리나라만 사교육 현장은 매우 활발했습니다. 거대 학원가는 국가에서 통제했지만 동네 사교육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했으니까요. 


  변화의 의지도 마음도 없던 교육현장도 강력히 반발을 하고 저항하지만 그럼에도 변화의 압박을 피할 순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이전과 같은 방법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역행한다고 해도 너무 역행하는 거 아닌가요? 입시의 여파가 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의 유아들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걸, 우린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구 놀이라는 이름으로 선행학습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삶도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는 이때, 앞으로 아이들이 어떤 세상을 살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걸 부모는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조언조차 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부모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요. 


  그렇기에 부모는 알 수 없는 미래 세계에 잘 적응하고, 급격한 변화에 대처가 용이해지도록 아이를 양육해야 합니다. 변화에 빠른 스위치 전환이 가능하고 새로움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며 자신의 대처 능력에 신뢰를 갖는 아이로 말이죠. 그것이 지금 부모님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가장 필요한 핵심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자신의 삶을 호기롭게 앞장서서 용기 있는 발걸음으로 대차게 행동하는 아이가 성공하는 삶을 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신뢰, 자기 확신, 자아효능감, 자아존중감이 기본 재료가 될 겁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주도성’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아이, 탐구하는 자세를 취하며 관심과 흥미를 유지하는 아이, 자체적으로 동기를 유발해서 행동하는 아이, 그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지며 수정과 변경을 끊임없이 하는 아이, 그 끝의 결과에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아이, 언제든 어디에서든 예상을 뛰어넘어 좌절에 굴하지 않는 아이, 이 모든 것이 전혀 이상할 것 없이 잘 대처하는 아이가 바로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아이’ 일 겁니다. 


  어릴수록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해 주세요. 어린아이일수록 선택은 크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어린이집에 어떤 리본핀을 하고 갈지, 어떤 옷을 입고 갈지, 혹은 킥보드를 탈지 아니면 자전거를 탈지 정도입니다. 이런 작은 선택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말이죠. 부담 없이 선택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선택은 아무런 위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가 크면 클수록 위험성은 점점 커집니다. 선택의 범위가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러니 부모도 선택권을 주는데 망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린아이들에게 학습을 빨리 시키는 게 시급할까요? 아니면 어서 빨리 아무 선택이든 해보게 하는 게 시급할까요?


  충분히 안전하게 마음껏 선택해서 주도적인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세요. 안전한 어린 시절을 놓치고 아이가 커서 위험이 가중되고, 실패의 아픔이 트라우마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기에 억지로 떠밀려서 주시지 말고요. 그건 아이도 부모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커서 하는 선택은 부모가 보기에 너무 위험해 보이고, 결과가 두려워서 아이에게 쉽사리 선택권을 주기 어려우니까요. 


  평생 아이를 품에 안고 키울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세요. 아이가 커서 “다 큰 애가 언제까지 엄마한테 다 해달라고 할래?”라는 핀잔을 주지 않도록 말이죠. 그건 아이의 책임이 아닙니다. 어쩌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부모인 우리가 빼앗아 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 마세요. 아이는 기회조차 없었던 일로 인해 부모에게 비난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부모를 가해자로 보고 아이를 피해자같이 보는 거라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과격한 표현이지만 정도가 심할 경우, 아니라고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아이를 무능하게 만들지 않도록 부모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며 아이를 양육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 결정은 아이의 인생에 큰 축을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지금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이와 씨름하며 점점 성숙하게 성장하는 아이를 지켜보고 싶으시다면, 지금 당장 아이에게 주도성을 키울 수 있도록 부모는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부모의 개입이 아이를 방해하는 것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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